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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미 Apr 08. 2024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는 일이란

브런치 네가 뭔데? ..아~주 훌륭하신 분들이지!

당신에게 매일 창작작업을 시키고 괜찮은 금전적 대가를 지불하는 고용인이 있다.
그런데 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받아간 결과물을 아무 곳에도 발표하지 않고 매번 폐기처분한다.
당신의 작품들은 줄곧 무의미하게 파괴되지만, 임금은 따박따박 주어진다.
고용인은 자기가 비용을 지불한 이상 그 작업물을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당신이라면 이 일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 같은가.

- 제목: 사고실험1(이적의단어들) / 출처: 이적 인스타(@jucklee)




브런치 작가 응모에 벌써 두번째 탈락이다.


스스로 글을 잘 쓴다라고까지 할 순 없지만 

4세에 한글을 떼고* 그 후 쭉 글을 가까이하며**

수능날까지 언어영역을 별도로 공부해 본 적이 없었으며***

8년째 독서모임 참여 중인 모임장이라는 화려한 스펙에**** 

육아휴직 중에도 블로그를 운영하며 수많은 협찬도 받았기에***** 

(*엄마 피셜. 비슷한 영웅 설화로는 '불만 끄면 자서 키울때 하나도 안힘들었다.'가 있음)

(**주로 도서관에서 페이지가 닳고 닳아진 야시시한 책이나 몰래 전자사전에 넣어야하는 울 오빠들 나오는 글)

(***수능에서 평소보다 -2등급이라는 처절한 응징을 받음)

(****그나저나 8년을 해도 독서 습관이 안잡히는 건 모임이 문제인가, 내가 문제인가... 모임장이 문제인가?)

(*****돌도 안지난 아기를 앉혀놓고 마감 맞춰 후기쓰기 바쁜 모습에 현타와서 한달만에 그만 둠)


브런치 작가 선정도 큰 과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첫번째 신청했던 글은 n년전 나의 새해 다짐 계획이었는데, 매우 가벼운 다짐선포글이라 지금 다시 보는 나에게도 다소 부끄러움을 안겨주기에 완성도가 떨어지는 글임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당시 같이 신청하고 탈락하여 낄낄거렸던 친구가 최근 진지하게 파워블로거를 꿈꾸며 글 실력을 쌓던 중 다시금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작가 선정이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나에게도 글을 써볼 것을 추천해주어서 이번엔 전보다 조금 진지하게 신청해보았다.

그 사이 나는 독서모임의 장이 되었고, 결혼을 했고, 아이가 있고… 브런치 작가의 조건으로 따져보았을 때 의외로 글감이 많은 사람이었기에 조금 더 자신이 생겼다.


두번째 신청했던 글은 독서모임 미션으로 썼던 글로, 책「인생의 역사(신형철)」를 읽고 그 서술방식을 빌려 내가 좋아하는 시와 그에 대한 시화(詩話)를 적어본 것이었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시를 꺼내어 읽어보고 그 당시 내가 두근거렸던 이유를 돌아보며 이제는 달라진 시선으로 고심해서 글을 쓰는 것은 오랜만에 과정 그 자체로 행복감을 주었다. 글은 모임원들끼리 모여 익명으로 돌려보며 무조건 칭찬감옥에 가두고 좋은 피드백만 주기로 약속하였기에 더욱 즐거운 마음으로 쓸 수 있었다. 회원들 덕에 난생 처음 보는 시와 그에 얽힌 마음 담은 글을 보는 것도, 나의 마음을 수줍게 내어보인뒤 기대 이상의 칭찬을 받는 것도 모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 경험 이후, 나라는 사람에 대한 양질의 글을 작성해서 단순히 '등록'말고 '발행'에 가까운 생산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 하며 소개글도, 다짐도, 브런치 글도 꽤나 정성을 들였다.

그러나 결과는 또 탈락이었다.


꿈이겠지?


공손하게 다음을 기약하면서도 결정적인 이유는 알려주지않는 기업 인사담당자 같은 브런치의 탈락 알림은 나에게 꽤나 충격이었다.


탈락 후 심리반응
(부정) 엥 이거 첫번째 탈락한 거 말하는 거겠지? 이번건 아직 심사가 안된거겠지?
(분노) 브런치 니가 뭔데!! 니네가 그러니까 카카오 주식이 그모양이지!!!! 뭐라도 내놔!!!!!!
(타협) 이유가 있겠지.. 구성이 좀 정신없긴 했다.. 브런치스러운 글은 따로 있는건데..
(절망) 지금까지 책 읽은거 다 뱉어라.. 뇌로 안가고 살로 갔냐.. 쪽팔려서 어디 말도 못한다 진짜
(수용) 당신이 뭐라하든 나는 나의 갈길을 간다.


수용 단계에 온 지금 -사실 종종 분노로 다시 돌아가긴 하지만- 나는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련다.

풀고싶은 나의 에피소드는 시간과 함께 쌓여가는데 어떤 형식과 기준으로 써야 발행에 어울리는 글인지 괜히 조바심만 났었다. 이왕 브런치 승인이 미뤄진(이라고 믿고있다) 김에 어떠한 지시나 제한도 없이 글을 작성해 볼 수 있는 기회다. 그러다보면 먼저 스스로 승인하고 다시 브런치에 도전할 날이 자연스레 오리라 믿는다.

책을 읽다보면 나는 이번 생에서 절대 도달하지 못할 것 같은 표현력, 상상력, 통찰력, 사고력 등을 지닌 넘사벽 글들도 많이 접하지만, 반대로 요즘같은 기후위기 시대에 출판행위 그 자체가 환경오염으로 느껴지는 글도 종종 있다.

나는 계속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작게는 브런치 작가, 크게는 종이책 작가까지 되어 나무에게 미안하지 않을 글을 수련한다는 생각으로 묵묵히 나아갈 것이다.


브런치 탈락이 다행인 또 다른점은 글쓰기가 나에게 아직 레벨 1 수준의 취미임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취미에서 가장 힘든 것은 조팝인 자신을 이해하고 참고 용서하는 일이라 했다. 나는 비록 브런치를 처음엔 원망하고 미워했지만 이제는 나 자신과 함께 이해하기로 했다. 내가 나중에 유우명한 작가가 되면 이 에피소드를 꼭 넣을테니까 영광으로 알도록!


사과 스티커가 다 채워지는 날, 다시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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