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미 May 18. 2024

아이가 아플 때 용한 병원보다 더 필요했던 것

놓지마 정신줄!


[평범하다는 착각]

최근 한달간, 빵떡이는 매우 평범한 아기라고 했던 시건방진 소리의 댓가*를 치렀다.

*이전글: 아이가 우는 걸 모른척하며 등을 돌린 날 (brunch.co.kr)

회사 언니들과 홍콩여행을 다녀온 날 저녁, 4일만에 본 아이는 얼굴에 오돌토돌 두드러기가 올라와 있었고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 감기는 한번씩 왔다 가는 것이고 피부 또한 크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내다가 주말까지도 계속 가라앉지 않아 월요일에 병원에 갔더니 피부염이라며, 더 오래 가지고 있었던 이마의 상처도 단순 상처가 아니라고 약한 단계의 스테로이드 연고를 처방해주셨다.

소량이지만 스테로이드가 들어간 연고를 바르는 것이 마음 아팠지만 빵떡이는 그 전부터 오금쪽이 자주 벌게져 종종 발랐기에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처방받은 약을 다 먹어가는데도 피부는 점점 더 간지러워하고 콧물도 심해졌다. 다른 병원을 찾았더니 이는 단순 땀띠이며 감기도 크게 심각치 않다며 또 다른 약을 받았다. 심하게 간지러워하는 곳은 기존 연고를 바르고 평소 보습을 잘해주라는 통상적인 답변이 반복되었다. 그치만 시간이 지날수록 간지러움과 기침, 콧물로 점점 잠들기 어려워하고 간지러워하는 부위는 넓어졌다. 점점 내가 외면하고 싶은 의심이 떠올랐다. 아니겠지.. 하면서도 당장 힘들어하는 아이를 위해 연고와 로션을 번갈아가며 발라주고 간지러워하는 곳에 선풍기 바람을 쐬어주며 붙이는 패치를 주문했다.

왠지 아토피인 것 같다.

원래 피부가 건조한 편이라 돌때부터 받았던 화장품과 연고들




[부끄러운 담당자]

이쯤에서 다소 부끄럽고 황당한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현재 회사에서 아토피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

작년에는 취약계층을 위한 홍보물도 제작했으며 그만큼 전문가도 많이 만났고 관련 콘텐츠 또한 많이 보고 듣고 읽었다. 그런데 막상 나에게 닥치니까 뭘 어떻게해야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원인, 관리 및 치료방법에 대해 공인된 정보를 다 알고 있는데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냥 병원에 가서 주사 한번 맞고 약 며칠 먹어서 요인을 말끔하게 제거했으면 좋겠는데 원인은 특정할 수 없고 치료 또한 단기간이 아니라 다소 두루뭉술하게 느껴지는 생활습관 개선으로 계속 지켜봐야한다는 점이 너무 막막했다. 관련 자료를 찾아볼수록 아토피와 비염 증상이라는 것에 점점 확신이 들었지만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한달간 병원만 6곳]

피부염, 상처, 아토피 의심, 단순 감기, 비염 등등 가는 병원마다 진단도 약도 조금씩 달랐다.

3주 넘게 병원을 다녀도 개선은 안되고 심지어 어린이날이 포함된 3일 연휴에는 고열로 내내 아팠다. 남편 생일겸 야심차게 놀러가려고 했던 계획은 완전 어긋나고 그냥 보내기 아쉬워 오전에 잠깐 공원에 다녀온 뒤에는 열이 오르며 축 쳐지기 시작하는 열경련 초기 증상을 보였다. 빵떡이는 작년 2번 열경련을 겪었는데, 부모가 각각 한번씩 눈앞에서 겪고 구급차까지 타본 뒤 작은 트라우마가 생겨 외출 필수품으로 체온계와 해열제를 챙긴다. 돌아가는 길에 컨디션이 안좋아진 걸 눈치채고는 길에 멈춰 해열제를 먹이며 집에 도착할때까지만 제발제발 무사하길 빌며 뛰어갔다. 

다행히 열경련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그 후 3일간 계속 이어지는 고열과 컨디션 난조에 목에 두르는 아이스팩, 마시는 수액, 물수건, 열패치, 해열제 등 온갖 아이템을 동원하여 겨우 버텨냈다. 열이 떨어져 보낸 어린이집 생활은 컨디션 난조로 여전히 불안불안했고 3일째에는 결국 소환되어 출근 2시간만에 조퇴하고 하원시켜야 했다.

소아과만 3곳을 다니며 계속 약을 먹는데도 나을 기미가 없어 병원급 의료기관에 가서 알러지검사도 했다. 특별한 알러지는 없었지만 비타민D가 부족하다는 유의미한 정보는 얻었고 약은 여전히 큰 효과가 없었다.

결국 이비인후과와 피부과까지 갔고 이비인후과 항생제는 3일만에, 피부과 조언은 하루만에 효과를 봤다. 속이 후련, 까진 아니다. 말했듯 완치의 개념이 아니고 언제 또 일어날지 모르며 피부는 여전히 밤마다 간지러워하기에. 그래도 우선 장장 한달간의 병원 투어는 마무리됐다.





[가장 필요했던 건, 그리고 앞으로도 중요한 건 마음]

두드러기, 콧물, 붓기, 열, 피부 벗겨짐, 간지러움, 피부염 등등 온갖 고난을 겪은 빵떡이가 제일 고생했다.

그치만 나도 고생 많이 했다. 

우선 신체적으로는 항상 밤에 가려워하며 긁는 아이를 제지하고 시원하게 해줬다가 따뜻하게 해줬다가를 반복하느라 자는둥 마는둥 했으며, 루틴이 되었던 아침 달리기도 잠정중단하여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또 평소에는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 좋다더니 아플땐 엄마만 찾으며 무조건 안아달라 조르는 덕에 2년만에 배에 올려 재우는 등 단단한 얽혀있는 껌딱지를 달고 살았다. 

정신적으로도 너무 혼란스러웠다. 아토피 피부염, 알레르기성 비염은 대표적인 환경성질환이라 위에 말했듯 뚜렷한 원인을 찾을 수 없고 한큐에 통하는 치료법도 없어 기본적인 환경개선으로 꾸준히 매일 관리하며 점차 나아지길 바라야하는 마라톤과 같은 관리다. 이렇게 스스로 정리하기까지 병원 6군데를 다니고 수많은 정보를 접하면서 희망을 가졌다가도 절망에 빠져 우울해지길 반복했다. 그러다 지푸라기잡는 심정으로 또래를 키우고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해봤다. 각자 아이 키우느라 바빠서 한동안 비활성화 되었던 방인데 내가 질문을 가장한 푸념을 늘어놓으며 이런 상황이라 힘든데 너희의 찐팁을 들려달라고 했다. 실은 나도 내가 무슨말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아무말이나 했던 터라 그저 털어놓은것 만으로도 약간의 위로가 되었는데, 친구들은 각각의 경험을 토대로 카톡방 스크롤을 쭉쭉 내려야 될 정도로 정성스러운 대답을 해주었다. 각종 아이템들도 많이 알려주고 병원의 방향성도 제안해주어서 새로운 것들도 많이 시도해봤고 망설이던 병원도 바로 바꿔봤다. 솔직히 말하면 아이템의 유용성은 케바케였지만 그저 빵떡이가 낫길 바라는 마음으로 추천해준 것들이기에 앞으로 더 유용하리라 생각하며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백번 절 할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자극적인 유투브 썸네일에 상처받고 실망하던 도중 오히려 심심하리만큼 건조한 구성의 삼성서울병원의 김지현교수님 영상을 만났다. 또 무슨 뻔한 이야기를 하려나, 알면서도 낚이려고 2배속으로 틀어놓았는데 아토피에 대한 기본 상식과 오해부터 하나씩 차분히 짚어가는 구성이 좋아 다음 편도 보게 됐다. 거기서 교수님 본인도 아이가 아토피를 겪었던 터라 아이 부모님들께서 많이 힘드신 것을 알고 있다며 진료실에서 '많이 힘드시죠?'라는 말을 건넸을 때 우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나도 같이 찡해져 갑자기 구독좋아요알림설정을 할 뻔했다. 그리고 아토피는 만성일뿐 불치병이 아니니 절대 포기하지말고 꾸준히 해나가는 말에 크게 위로받았다.


나는 너무도 막막했던 빵떡이의 만성질환 주간동안 그저 빠른 회복방법만을 계속 찾아다녔지만 머릿속으로는 그런건 없다는 걸 알고 있었고, 사실은 '지금 너무 잘하고 있다, 나도 네 맘을 안다, 앞으로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하면 좋아질거다.' 라는 뻔한 공감과 위로를 듣고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가족들의 돌봄 도움, 친구들의 팁과 안부연락, 전문의의 위로 메세지 등이 나에게 종합적으로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며 고된 한 때를 지나가게 해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내게 소원을 빌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항상 염불처럼 외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건강과 나의 부'에 '나도 누군가에게 필요할 때 떠올라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을 추가하고 싶다. 

더 심각한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이 본다면 어이없을 정도로 이런 사소한 일에 멘탈이 흔들리나 싶겠지만, 실은 나도 복기하다보니 너무 거창했어서 조금 웃기긴 하지만, 누구보다 내가 심각성을 잘 알고 있는 질환인데 나도 아닌 내 아이가 걸렸다는 것이 꽤나 큰 충격이었다. 다양한 사례를 듣고 접한 뒤 마음을 다잡은 지금은 어쩌다 빵떡이가 뽑기 운이 안좋았는데 이또한 같이 잘 헤쳐나가면 된다고 덤덤해졌다. 


내게 이번 일은 앞으로 이렇게 혼란스럽고 마음 무거운 일이 예고도 없이 무수히 많이 닥칠 수 있다는 예고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때마다 또 가족, 친구, 그리고 내 마음을 알아봐주는 사람들을 통해 위로받아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것도 안다. 구만리같은 육아 인생에서 삐끗할 일들이 매우 많겠지만 얕게 좌절하고 얼른 지름길로 들어서 극복한다음 나도 뒷사람들을 위해 등불을 켜주어야겠다.



[에필로그: 환경성질환 관리수칙]

환경성질환은 끝날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유전, 계절, 환경 등 원인이 다양한만큼 차단에 한계도 있고 전문의에 따르면 몇개월을 노력해도 몇시간만에 다시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이번일을 겪고 주변 얘기를 들어보니 아토피 자녀를 키우신 분들이나 비염으로 고생하는 어른들이 정말 많았다. 한약을 먹고 나았다, 어떤 로션크림이 좋았다, 어떤 환경이 중요하다 등 도움이 되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빵떡이도 이렇게 어른이 되어서까지 계속 고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그치만 내가 보호자로서 관리의 의무가 있을 때까지는 지치지않고 할 수 있는 선에서 꾸준히 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최근 내가 개선한 부분은 대강이라도 매일 청소기 돌리기, 아침저녁 맞환기, 주 1회 침구류 일광소독 및 세탁, 듀라론 소재와 미니선풍기로 시원한 수면 환경 조성, 보습에 비판텐 섞어 바르기, 목욕 시간 5분 이내, 비타민D와 멀티비타민 섭취, 가공식품 자제 등이다.


아래는 이외에도 내가 적용하려고 정리한 환경성질환 생활환경 개선 수칙이다. 대충 살아온 삶을 갑자기 교과서적으로 꾸려나가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천천히 포기하지않고 해나가면 빵떡이의 환경성질환은 '혹시 나때문'에서 '그래도 나 덕분'으로 바뀔 수도 있다.


환경성질환 기본정보



환경성질환 생활환경 관리1



환경성질환 생활환경 관리2


작가의 이전글 모태 통통이의 기쁨과 슬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