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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미 May 01. 2024

모태 통통이의 기쁨과 슬픔

모태 통통이는 다이어트를 모태


각자 떠오르는 생애 첫 기억은 어떤 장면일까?


내 최초의 기억은 7살 경, 다이빙대 위에서 발 아래 푸르게 반짝거리는 그러나 매우 커다랗고 깊은 수영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다이빙 대 위의 7살이라니. 너무 비현실적이라 꿈을 착각한건가 싶기도 하지만 그 당시 수영이 끝나면 꼭 먹었던 엄마와의 컵라면 덕분에 생생히 기억하고 심지어 나에게 꽤 좋은 추억 중 하나다.

그치만 그날 다이빙대 위에서 뛰기 전 느꼈던 두려움과 크게 심호흡한 뒤 아래로 몸을 던졌을때 물을 후두려맞아 온몸으로 퍼지던 찌릿한 통증이 아련하지만 매우 생생해 그 이후로 20년 넘게 수영을 피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7살 생에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듯한데, 같은 장면을 옆에서 지켜본 엄마는 배부터 떨어져 아프다고 울어댄 통통이가 무척 귀여웠다고 회상하고 있다. 오리발도 끝내고 다이빙만 하면 수영마스터였는데 그 이후로 가기 싫다고 하는 통에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근데 진짜 웃기고 귀여웠다고.

그치만 모태 통통이의 슬픔은 이제 시작이었다.


통통배야.. 물에 떨어지느라 많이 아팠지..?


초등학교때는 남자애들과 같이 생활하다보니 통통하다는 이유로 놀림을 자주 받았다. 저학년때는 나름 조폭마누라로서 불주먹 맛을 보여주곤 했는데 사춘기가 시작되는 고학년이 되니 무지성 인신공격에 그저 눈물만 뚝뚝 흘릴 뿐이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여중여고를 가면서 상황은 매우 달라졌다. 살? 다이어트? 뭔지 모르겠고 오늘 밥 뭔데. 

갱지에 인쇄된 이달의 식단표를 소책자로 만들어 형광펜을 그어가며 열공하는 동지들과 생활하니 초딩 때 그 멸치놈들을 줘패지 못했다는 분함만 남은 전사가 되었다. 하루 중 내가 가장 재빠른 때는 지각한 교문 앞도, 야자 끝난 하교 길도 아닌 4교시 후 점심시간 종 울리기 1초 전이었다. 59분쯤 되면 발을 책상 밖으로 쓰윽 빼놓고 종소리의 기미가 시작될때 이미 귀보다 몸이 먼저 반응해서 튀어나간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여기서 살아남는다함은 1초라도 급식을 빨리, 많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땐 친구들과 시내에서 만나 가장 자주 가는 곳도 고기뷔페였다. 중학생때는 옥상에서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는 우리집이 친구들 사이에서 최고 핫플레이스였다. 고등학생때는 독서실 건물 1층에 있던 분식집에서 야무지게 1차 야식 먹고 집에 가서 다시 엄마가 차려준 2차 야식을 먹느라 위가 쉴 틈이 없었다.(물론 0차로 석식도 먹었다.) 저번 달리기 글에서 적었던 것처럼 우리집은 '눈 뜨기 전에 먹고, 먹었으면 무조건 자라.'가 암묵적 가훈으로써 철저한 조기교육을 받은 덕에 이렇게 과식 후 곧장 자도 역류성식도염 그 근처도 가본 적이 없었다. 나처럼 본능에 충실한 친구들로 널린 환경과 타고난 내장기관 능력 덕에 모태 통통이는 전성기를 맞이했다.


대학에 가니 상황은 달라졌다. 각지에서 올라온 다양한 친구들과 친해지기 어려워 나는 내가 낯가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6년만에 다시 깨달았다. 대학교도 여초과라 곧 편해지긴 했지만 미팅도 해보고 학창시절 그토록 갈망하던 연애를 꿈꾸다보니 진지하게 다이어트라는 것을 해봐야겠다는 압박이 생겼다.


사실 타고난 통통이들은 오히려 다이어트에 큰 뜻이 없다. 일반인(?)들이 2~3키로 찐 것에 위기감을 느끼거나, 여름이 다가온다는 이유로 다이어트에 돌입하는 것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나에게 2~3키로란 밥 많이 먹으면 그럴 수도 있는 허용범위이고, 여름은... 너 뭐 돼..? 그냥 땀쟁이라서 반갑지 않은 계절 그 뿐이었다. 

그치만 대학가면 쌍수해준다는 고모의 말은 허공에 사라졌고, 이거 다 젖살이라며 쏙 빠진다는 누군가의 말도 대공갈로 밝혀졌으며, 동지들이 살빼고 안경벗고 머리하며 짐승에서 사람으로 변해가던데 나도 뭐라도 해야겠다는 위기감이 든 것이다.


그때부터 안해본 다이어트가 없었다. 운동의 입문인 헬스장은 저렴하다는 이유로 1년 끊었다가 의지박약을 깨닫고 1개월 단위로도 끊어보고(1일이어도 결과는 같았다.), 위치는 집 들어가기 전에 가자며 집앞을 했다가 회사 끝나고 바로 가는게 낫겠다싶어 회사앞도 해보고(위치는 상관없었다.), 새로 오픈한 곳, 오래된 곳, 규모가 큰 곳, 엄마가 다니는 곳(그 어떤 조건도.. 똑같았다.) 등 '헬스장먹여살리기협회'가 있다면 아기공로상 정도는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곳들에 기부했다. 가져다놓은 신발과 샤워용품을 다시 가지러가기도 싫어 그냥 두고 온 물품기부까지 하면 규모는 더 커진다. 여기에 요가 두달, 스피닝 세달, 권투 세달, 점핑 한달, 방송댄스 한달 등을 합치면 아니 내가 알고보니 운동인..?! 여기저기 무지하게 추근거린 역사가 있다.

운동은 도저히 하기 싫고 다이어트는 식이가 90%라던데 하면서 저녁 굶기, 밀프렙, 닭가슴살, 샐러드 배달, 도시락 정기구독 등 이쪽도 만만찮게 손을 뻗어봤으며 심지어 병원에 다니던 친구에게 다이어트약을 얻어 먹은 적도 있었다. 

이 모든 방법들을 실패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 주변에는 초등학생 이후로 살로 지적하는 무례한 인간이 없었고(엄마는 한번씩 타박을 하다가도 내가 진짜 다이어트에 돌입하면 갑자기 사육을 시작했다.) 20대에게는 건강때문에 어쩌구 소리는 먹히지도 않거니와 사실 이정도 먹는데 이정도 몸무게면 오히려 안찌는 편이라는 자기위안도 있었다.

그냥 남들이 하니까, 가끔씩 어디서 왔는지 모를 위기감에, 전혀 의미없는 누군가와의 비교로 인해… 작심했다가 길면 2주 안에 끝나는 실패의 반복이었다. 나의 최대강점인 회복탄력성을 발휘해 실패의 여운은 하루 이상 가질 않았다. 심지어 결혼식 때도 못 아니 안 아니 못뺐으니 말 다했다. 그때도 웨딩드레스와 사진보정이 다 해결해준다고 위로를 해주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말해도 안들을걸 알기에 듣기 좋은말을 해주는 걸지도.. 모태 통통이가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주변에서 우쭈쭈해주는 사람들이 참 많다. 고마울 뿐이다.


한결같은 나의 과체중 성적표. 22년은 출산 해니까 좀 봐주기 ;)


그렇게 그냥 모태통통이는 다이어트 모태! 하고 살려고 했는데 이제는 정말 피할 수 없겠다는 몇가지 사건이 생겼다. 충격, 공포, 다짐, 실천, 절망, 그래도 다시, 성취까지.

통통이의 다이어트 도전기는 다음 이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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