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기념일이다.
오늘은 아이들이 등교하지 않는다.
평상시 같으면 벌써 일어나 아침밥 차리고
출근 준비까지 마쳤을 시간이지만
이불속에서 여유를 부려본다.
띠리링~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간다.
'어머님(장모님)이 벌써 오셨나?'
이불속에서 번데기처럼 자고 있어야 하는 아이.
혼자 옷까지 갈아입고 마당에서 한바탕 놀고 들어왔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얀 세상
눈 눈 눈이다!
반갑다.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한다.
욕실에서 샤워를 하는데 옥상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박자와 리듬을 분석하면,
안 봐도 안다. 발소리의 임자를.
아빠~ 아빠~ 아~ 빠~
이번엔 마당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홍길동처럼 옥상에서 번쩍 마당에서 번쩍
커다란 눈덩이를 두 손으로 들고 서 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아들.
눈부시다.
너란, 녀석.
부지런한 아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만 그렇다.
차까지 따라 나와 인사를 해 준다.
"야~ 우리 아들 철들었네."
"이게 뭐야?"
알고 보니 자동차에 쌓인 눈까지 긁어모아 눈덩이를 만들었다.
"아빠, 눈이 더 필요한데요, 저기는 손이 안 닿아요. 아빠가 좀 긁어서 주세요."
'그럼 그렇지, 이상하다 생각했다.'
'어디 흠집 난 곳은 없겠지?'
의심 가득한 눈으로 자동차 곳곳을 스캔하며 아들에게 눈을 모아 건넨다.
"오늘 할머니께서 오실 거야.
책도 읽고 간식도 먹고 리코더도 불고 혼자서도 놀고 누나랑도 놀고."
생각난 대로 이야기하고 꼭 껴안아 준다.
이상한 자세 ⓒ어른왕자
퇴근하고 집으로 왔다. 아들이 이상한 자세로 인사를 한다.
"아빠 제가 만들었어요. 한 번 보세요."
한쪽 눈을 감고 고무줄과 나무젓가락으로 만든 총으로 과녁을 향해 쏜다.
완전 비켜나간다.
"정확성이 놀랍도록 부족한데... 좀 고쳐서 저녁때 다시 보여줘."
이상한 과녘판 ⓒ어른왕자
과녘판을 살펴본다.
종합장에 점수를 표시하고 가위로 자른 후 딱풀과 테이프로 연결했다.
그런데 점수 배치가 특이하다.
100, 99, 80, 10, 1,
일정하지 않다.
내 생각을 완전 비켜나간다.
방으로 들어갔던 아들이 다시 나온다.
이번엔 완벽하다며 내 앞에서 다시 시연을 한다.
99점을 명중시킨다.
엄지 척을 해 준다.
씨익- 웃더니 나도 한 번 해보라고 한다.
아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일부러 허공에 쏠 것이다.
눈치채지 못하게 나름 진지하고 신중하게 쏘는 척을 한다.
비켜나간다.
아들이 씨익- 웃더니
"어렵죠? 자꾸 하다 보면 실력이 늘어요."
오늘 오후 내내 연습했다고 한다.
부지런한 아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만 그렇다.
발명가가 되고 싶어 하는 아들.
틈만 있으면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아이. 그런데 그것들이 심상치 않다.
혼자 책상에 앉아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아이.
그러다 후다닥 생각을 실행하고 있는 아이.
아들의 책상은 언제나 잡동사니들로 가득하다.
아들의 방은 고물상 같다.
수상한 고물상.
아들에겐 정리란 없다. 오로지 만들어 낼 뿐이다.
생각해 보니 아들이 날 많이 닮았다.
나도 틈만 있으면 무언가를 만들려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쓸데없는 것들.
돈도 안 되고 별로 유익하지도 않은 것들.
그런데 그것들이 나에게 기쁨을 준다.
창고에 쌓인 공구와 철물들.
아내는 동의하기 힘든 아들과 나의 놀잇감이다.
놀잇감을 통해 우리는 소통하고 협력하고
도전하고 성취한다.
그리고 감격하고 감동한다.
아들의 끊임없는 시도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런데 아들, 정리는 좀 하자!
책상이 이게 뭐냐! 방이 이게 뭐냐!
너무 하잖아!
아이들의 미래는 아이들의 것이다.
자연스럽게 생각이 커나갈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마음이 커나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조작하고 싶지 않다.
미래를 위해서 꼭 필요해
너를 위해서 꼭 필요해
단지 몇 십 년 더 많이 살았다는 얼토당토아니한 논리로
아이들의 생각과 마음을 가두고 싶지 않다.
누군가가 말하는 미래는
자신들이 살았던 과거나 현재다.
내(아이들)가 살아갈 미래가 아니다.
누군가가 말하는 너는
진짜 너가 아니다.
내(아이들)가 아닌 너다.
아들! 딸!
너희들의 미래는 너희들의 것이야.
너희들의 것이 되려면
스스로 살아가는 힘을 배워야 한단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결정하고
그리고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단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진정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경쟁은 이겨도 이겨도 계속된다.
경쟁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경쟁에서 이겨 보기도 하고 져 보기도 하고
경쟁을 포기하기도 하고
경쟁에서 아예 벗어나 보기도 하는 것.
끊임없는 경쟁에서 지치지 않고
살아남는 법이 아닐까.
미래를 조작하려는 자,
당장 멈춰주세요.
본인이 것이 아니라면.
이건, 일종의 경고입니다.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