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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왕자 Dec 10. 2023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들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나는 커피를 좋아하는 걸까?

 

15년 전. 첫 직장을 그만두었다.

관습적으로 해 오던 낡은 방식들. 새로운 시도나 방식을 거부하는 조직 문화.

이해할 수 없는 앞과 뒤가 다른 사람들의 행동들.

소통을 가로막는 수직적 관계.

답답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도무지 꿈이 보이지 않았다.




생각이 짧았다.

세상에 완벽한 조직은 없다. 

모두가 완벽한 사람은 아니니까.


완벽함 속에 들어가 완벽함을 펼치려고만 했지,

함께 개선시켜 나가고 성장해 나가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내가 가장 잘난 줄 알았고 조직은 내 수준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교만했다.


어리석었다.




직장에서 벗어나니,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왔다.

이젠 내가, 나를 시험하고 싶었다.


나는 어디로 갈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그리고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을까?


두렵고 어렵고 힘든 시간이 계속되었다.

그때마다 나는 나랑 마주하여 함께 고민했다.

그동안 외면했던 나를 붙잡고

대화하고 화해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 자신이 탱탱볼 같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얼마나 튈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한 탱탱볼.


배움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혹시 그 길이 내 길이 될지도 모르기에.

바리스타 수업을 찾은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유니폼을 차려입고 커피를 내리는 모습

바리스타는 개척자나 선구자처럼 보였다.

커피를 공부한다는 것은 뭔가 있어 보이고 특별해 보였다.


바리스타 수업을 듣고 나면 일부러 카페를 방문했다.

카페 사장님 앞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질문거리를 곰곰이 생각했다.


원두는 어떻게 블랜딩을 하나요? 

에스프레소 머신의 추출 압력은 만족하나요?

드립 커피를 따로 마실 수 있나요? 

로스팅은 직접 하나요?


이런 상황을 두 글자로 표현하면?

허세.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내 모습이 귀엽기도 하다.




생두를 로스팅하고 원두를 분쇄하고

에스프레소 머신과 드립 방식으로 커피를 내리고

원산지에 따른 커피 맛과 향의 차이를 탐색하고

여러 원두를 섞어 나만의 블랜딩 조합을 찾아내고

일련의 모든 과정이 재미있었다.


수업을 마치면 회원들은 둘러앉아 자신이 직접 내린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함께 마셨다.

쓰디쓴 삶의 이야기는 에스프레소 원액을 들이켜는 것 같았고

달콤한 사랑 이야기는 따뜻한 바닐라라떼를 천천히 마시는 것 같았다.  

별 것 아닌, 별 것 없는 이야기는 아메리카노처럼 좋았다.

이때 나는 커피가 진짜 좋았다.

허세는 잠시 물러나고, 커피와 사람을 대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커피 한 모금을 또 마신다.

예전에 난 커피를 정말 좋아했다.
예전에 난 사람을 정말 좋아했다.
진심으로 열정적으로.
 
그래서 지금도 습관처럼 커피를 마시고 있다.
이야기가 그립다.
사람이 그립다.

 



시를 쓴다. 난 시인이 되고 싶다.

아무도 쓰지 못하는 미지의 시를 찾아 오늘도 헤매고 있다.

파격을 전하고 싶다.

낡은 세계와 싸우고 싶다.


난 좋은 동시를 쓰고 싶다.

동시, 아이들이 쓰는 시? 모르시는 말씀.

어른들도 쓸 수 있는, 쓰고 있는, 진짜 어렵고 힘든 시다.


난 동시를 잘 쓰지 못한다. 진짜 어렵고 힘들다.

시도 잘 쓰지 못한다. 진짜 어렵고 힘들다.

그런데 시인이 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다.

좋은 동시를 쓸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다.


시만 생각하면, 

동시만 생각하면,

막 쓰고 싶고 잘 쓰고 싶고 그러니까. 




내 삶은 재미있고 신나는 일들이 가득했다.

가끔 슬픈 일이나 화나는 일도 있었지만 모든 것들이 감사했다.

내 심장은 팔딱팔딱 바둥거렸다. 

뛰었다 멈췄다 웅크렸다 솟아올랐다 

때론 내 뜻과는 다르게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때도 많았다.


그런 내 심장이 언제부턴가 기계처럼 정해진 박자에 맞춰 뛰기 시작했다.


심장만 뛰었다. 가슴이 뛰지 않았다.

감사의 마음이 줄어들고 비교와 욕망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회복하고 싶었다. 

동심을 찾고 싶었다. 


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나. 아이의 마음을 가질 수는 없었다. 

아이의 마음을 알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동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동시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를 쓰기 시작했다.

동심이라는 것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서.

조금이나마 순수한 마음을 회복하고 싶어서.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동시를 쓰고 싶다.

내 동시가 누군가의 차가운 마음을 

잠시나마 녹일 수 있는 핫팩이 되었으면 좋겠다.




배가 고프다. 엄마 음식이 생각난다.

난 아직도 어머니가 아닌 엄마라고 부른다. 엄마가 더 좋다. 편하다.

어릴 적, 부엌에서 엄마가 요리를 하면 옆에 쪼그려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음식이 완성되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눈으로 익혔다. 코로 익혔다.

중간중간 간 보고 맛보는 게 좋았다. 

가장 먼저 엄마 음식을 맛볼 수 있는 특권을 가졌었다.


엄마는 내가 잔소리꾼이었다고 한다. 

옆에서 고춧가루를 더 넣어라, 고춧가루 말고 고추장을 넣어라, 소금 조금만 넣어라, 살짝만 데쳐라,

이런 잔소리를 잔뜩 늘어놓았다고 한다.

어느 날에는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엄마에게 부탁했는데 엄마가 조리법을 몰랐다고 한다.

"엄마는 음식을 안 배우고 시집왔어요?" 

이런 망언을 내뱉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엄마,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꼬막 비빔밥이 먹고 싶다.

갓 지은 쌀밥 위에 꼬막 무침을 올려 쓱싹쓱싹 비벼 먹고 싶다.

양념 게장도 먹고 싶고 무를 넣은 고등어조림도 생각난다.


엄마가 만든 음식, 

아무리 흉내 내려고 해도 도무지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이제야 알 것 같다.

난 엄마의 음식을 좋아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엄마를 좋아하고 있었다.

엄마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그것을 엄마처럼 느끼고 있었다.   




훗날, 엄마와 헤어지는 날이 오겠지.

엄마!  엄마! 

가슴만 치며 아무도 없는 곳에서 통곡의 시간을 마주하겠지.

그리고 시간이 제법 흘러 엄마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고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을 때도 분명 오겠지.


그땐 엄마를 어떻게 기억해 낼 수 있을까?

 



나는 좋아하는 것들이 많다. 하고 싶은 것들도 많다.

양보하고 포기하는 것들이 많아져간다.

가끔 답답하고 슬플 때가 찾아온다.


마음을 다잡는다.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우리 가족.


그리고 나.

나를 사랑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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