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17.
아들과 딸이 서실에 가는 날이다. 요즘은 아내와 내가 번갈아 아이들을 데려다준다. 오늘은 내 차례다. 아이들을 서실 앞에 내려주고 무엇을 할까 잠깐 고민한다. 평소대로라면 근처에 주차를 하고 산책을 할 것이다. 사람 구경을 하고 가게 구경을 하고 나중에는 공원이나 놀이터 의자에 앉아 혼자 생각에 잠길 것이다.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다. 외롭고 쓸쓸한 영혼이 빛을 받고 비를 맞는 시간이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다시 힘을 내는 시간이다. 하지만 지금 내 옆에는 책 한 권이 있다. 반쯤 읽었고 아직 반이 남았다. 두 시간 정도면 끝까지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산책이냐 독서냐, 독서냐 산책이냐, 이미 손안에 답이 있다.
책 한 권을 들고 서실 근처 카페로 간다. 지금 읽고 싶다. 카페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신다. 오늘은 아빠가 왔네요, 하며 알은척을 한다. 아내가 지난주에 왔다고 한다. 주변에 많은 카페가 있는데 내가 이곳에만 오는 이유가 있다. 서실과 가깝다. 서예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을 바로 데리러 갈 수 있다. 그런데 그것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손님이 적다. 조용해서 집중하기 좋다. 커피맛이 못마땅해도 이곳에 오는 이유이다. 책을 읽거나 짧은 글을 쓰며 아주 못마땅한 커피를 조금씩 나눠 마시다 보면 그 맛이 살짝 못마땅해지고 그럭저럭 괜찮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아주 가끔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는 생각까지 미치게 된다.
방금까지 사장님은 졸고 있었다. 입구에 달린 딸랑딸랑 종이 아니었다면 사장님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딸랑딸랑 종은 누가 달았을까? 딸랑딸랑 종은 사장님을 몇 번이나 깨웠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모퉁이 작은 카페의 사장님. 난 이곳을 응원하고 이곳을 지키는 사장님을 응원한다. 그리고 사장님이 만드는 커피가 맛있어지기를 간절히 응원한다. 사장님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질 때까지, 커피가 맛있어질 때까지, 나는 이곳을 계속해서 찾을 것이다. 이곳을 함께 지킬 것이다. 그런데 사장님은 알고 있을까? 커피가 맛이 없는 것을. 알고 있겠지. 이렇게 맛이 없는데. 그런데 왜 계속해서 맛이 없는 커피를 만들까. 방법을 모르는 걸까. 아니야, 아니야, 아무래도 맛이 없는지 모르는 것 같아. 나라도 솔직하게 말할까. 처음에는 상처를 받겠지만 사장님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될 거야. 메뉴판 맨 위에 적힌 아메리카노 다섯 글자를 노려보며 아메리카NO를 생각한다.
녹차라떼를 주문했다. 커피 맛을 응원해야 하는데 다음 기회로 미룬다. 아메리카NO를 주문하기에는 오늘 용기가 나질 않는다. 사장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녹차라떼, 어쩌면 맛있을 지도 모른다. 사장님이 꼭 꼭 숨겨놓았던 비장의 무기, 이곳만의 시그니쳐 메뉴일지도 모른다. 맨 안쪽에 자리를 잡고 책을 편다. 손원평의 장편소설 <프리즘>이다. 두 문장 정도 읽었을까, 녹차라떼가 나왔다. 사장님의 음료 만드는 속도는 대단하다. 처음 이곳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미리 만들어 놓은 음료를 판매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한 모금 마셔본다.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는다. 커피맛과 어긋남이 없다.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조금씩 나눠 마셔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난 이곳을 아주 오랫동안 올 것 같다.
손원평 작가는 <아몬드>를 통해 처음 만났다. 그 이후로 아몬드만 보면 손원평 작가가 떠올랐다. 그러다 견과류 비슷한 것만 봐도 손원평 작가가 떠올랐다. 요거트를 먹다가 멸치볶음을 먹다가 심지어 이번 설날 강정을 먹다가도 손원평 작가를 떠올렸다. 설날이 지나고 도서관에서 책을 살펴보다 손원평 작가 이름만 보고 <프리즘>을 빌렸다. <프리즘> 제목을 보았을 때 과학 시간이 생각났다. 빛의 직진, 반사, 굴절을 가르칠 때 프리즘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국립중앙과학관에서 본 발달장애 아티스트 특별전 <인생 프리즘>도 생각났다. 인생은 프리즘, 삶의 굴절은 또 다른 발견이라는 말이 참 와닿았었다.
<프리즘>을 읽으며 나의 과거를 훑고 있다.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더듬고 있다. 그 만남과 이별 속에서 어설픈 나, 어린 나, 모자란 나, 부족한 나, 열정적인 나, 안타까운 나, 아픈 나, 가여운 나를 발견한다. 좋은 사람은 아니었더라도 부디 나쁜 사람은 아니었기를. 아직도 마음 한편에 남아있는 슬픈 이별이 있다. 하늘나라에서 그리고 지구 어디쯤에서 행복하게 잘 지낼 거라 믿는다. 이별은 꽤 오랫동안 후회와 미안함이었지만 어느 순간의 나는 그것을 감사와 고마움으로 굴절시키고 있었다. 이제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그 사람에게 고백한다.
고마워. 네가 준 사랑이, 내가 받은 사랑이, 너무나 큰 사랑임을 나중에야 알았어. 난 어렸고 어리석었어. 이제 나도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어. 네가 내 곁에 없기에 가능한 일이야. 더 이상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난 최선을 다해 소중한 것들을 사랑하고 있어. 이것도 네가 내 곁에 없기에 가능한 일이야. 너는 나에게 사랑을 주었고, 너는 나에게 사랑을 남겼어. 그리고 나는 그것을 누군가에게 주고 누군가에게 남기고 있어.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을게. 그러면 좋았던, 아름다웠던, 벅찼던,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수많은 순간들이 다 어디론가 사라질 것 같거든. 행복했어. 네 곁에 머무를 수 있어서.
용기 내어 과거의 나에게 말을 건넨다. "괜찮아, 충분히 잘했어. 넌 사랑받을 만했어"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도. "잘하고 있어. 넌 사랑받을 만해"
손원평 작가에게도. "고마워요, 멀리서 날 응원해 줘서."
작은 응원과 따뜻한 격려가 그 무엇보다 위대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아내와 두 아이를 떠올린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세 사람. 나보다 더 사랑하는 세 사람.
눈을 감고 그들에게도 작은 응원을 보낸다.
"행복해. 너희가 있어서. 우리가 함께 머무를 수 있어서. 함께 나아갈 수 있어서.
그리고 고마워. 내 곁에 머물러줘서. 우리 아낌없이 사랑하자. 촛불의 마음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책을 덮는다. 카운터 안쪽에서 다시 눈을 감았다 떴다 하는 사장님에게 다가간다.
"사장님, 잘 마셨어요. 다음에 또 올게요. 아, 그리고 오늘 녹차라떼 맛있었어요." (아메리카NO보다는)
아메리카NO보다는, 뒷 말은 마음속에 남겨놓았다. 언젠가 맛보게 될 훌륭한 커피맛에 대한 응원이다.
카페 문을 열고 나온다. 딸랑딸랑 종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따스한 햇빛과 따스한 눈빛을 받은 책 표지. 알록달록한 색의 물결이 어디론가 퍼져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