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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Feb 19. 2021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과정의 두 번째 단계

결심하긴 쉬워도 실제로 이행하는 건 다른 얘기더라.

며칠 동안 많은 생각을 해봤다. 정말 내 소비습관은 이대로 괜찮은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교통비, 식비를 제외하고 오롯이 5만 원을 다 쓴다는 것은 너무 많았다. 대체 무엇에 이렇게 돈을 많이 쓰는 걸까?



흔히들 소확행이라 부르는, 자신만의 사소하게 돈을 쓰며 행복을 찾는 곳이 있다. 언니는 이걸 참새방앗간이라 불렀다. 매일 아침 먹는 커피 한 잔, 퇴근 후 맥주 한 잔과 같이 나는 편의점에서 먹는 라면 한 컵이 나만의 소확행이었고, 이는 곧 참새방앗간에 매일 천 원에서 삼천 원 정도의 돈이 새어나가고 있단 말이었다. 일주일이면 약 만원을 넘나드는 금액을.


또 나는 주기적으로 힐링을 위한 취미생활에 돈을 붓고 있었다. 이를테면 나만의 건전한 스트레스 해소법인데, 여기에 또 일주일에 만원에서 많게는 삼만 원가량의 돈이 들어간다. 또 군것질거리를 한두 개 사다 보면 일주일에 5만 원이 순식간에 날아가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나 보다.



첫 번째 글을 올리고 나서 나는 하나은행 어플로 계좌를 개설하려 했다. 적금이 만기 되었을 때 만기 된 금액을 하나은행 통장으로 받기 위함이었는데, 얼마 전 CMA 통장 하나를 개설했기 때문에 통장 개설까지는 20일이 걸린다고 했다. 결국 12월 2일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기존 비상금 통장에 돈을 차곡차곡 모아뒀다가 적금 계좌 개설 후 옮기면 된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어쩐지 내 안의 게으름과 욕망이 그전까지는 돈을 아껴 쓰기만 하고 개좌개설 전까지는 좀 더 자유롭게 지내자고 속삭이는 듯했다.

그래서 그냥 놀았다. 차일피일할 일을 미루듯,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를 외치듯 뒹굴거리며 평소와 같이 소비를 이어나갔다. 다만 내 안의 참새방앗간에 돈 쓰길 줄였다. 또 심심하다고 아무렇게나 사는 취미생활 용품도 구매하길 줄였다. 2일까지는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었으니까, 돈 쓰기를 줄이는 것에 대한 답답함보다는 얼른 보컬학원 레슨비를 모으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그렇게 2일이 되었다. 다시 하나은행 어플을 켰고, 개좌개설 버튼을 눌렀지만 또다시 개좌개설이 불가능하단 안내 메시지만이 나를 반겼다. 알고 보니 20일은 영업일 기준, 그러니까 평일로만 따져서 20일을 기다려야 했던 것이었고, 나는 다시 10일까지 기다려야 했다. 사실 적금에 우대금리를 받기 위해 함께 가입하기로 한 지인이 있었는데, 그 사람에게 더 기다려달라고 말하기가 참 미안했다.

또다시 시간은 흘렀고, 나는 10일이 되자마자 부리나케 계좌 개설을 하고 적금에 가입을 했다. 입출금통장에 남은 돈을 살펴보니 꽤 많이 아껴 썼기에 초기 비용으로 13000원을 넣었다. 첫 주는 그 뒤로 거의 매일 3천 원씩 이체를 하며 보냈다.


둘째 주가 되니 슬슬 귀찮음이 몰려왔다. 돈을 아껴 쓰는 건 해볼 법한 것 같은데, 그냥 월요일에 돈을 다 넣어버리는 게 오히려 더 편하겠구나 싶어 져서 둘째 주부터는 월요일마다 21,000원에서 23,000원 정도를 이체했다. 조금 더 많이 넣은 이유는 나중에 돈을 많이 못 넣는 날을 위해 과거의 내가 미리 돈을 넣어주는 거라고 생각하며 넣은 것이었다.

위기는 4주 차에 찾아왔다. 생각보다 이르긴 하는데, 이유는 예상치 못한 지출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친구네 회사에서 단기적으로 보조해줄 인력이 필요해져서 4일간 일하기로 했는데, 그간 점심식사비용 때문에 돈이 많이 나가게 된 것이다.

거기다 나는 흡연자이기 때문에 밖에 나가는 일이 찾을 때마다 담배를 많이 피우곤 했다. 당연히 구강과 옷에서 담배냄새가 많이 나는데, 이게 신경 쓰여서 테라브레스와 탈취제를 사는데 또 2만 원가량의 비용을 지출했다. 버스가 다니지 않는 회사라 택시비까지 내고 나니 남는 돈이 5천 원. 그나마 마지노선인 5천 원을 지켜낸 것이 고작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나는 나를 잘 아는 걸 지도 모른다. 돈을 써야 할 때 통장잔고가 부족해 당혹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적금에 돈 넣는 날을 금요일로 미루자(원래는 예외 따위 두면 안된다. 탈취제를 사지 말았어야 하는데.) 정말 돈을 지출할 일이 많아지고, 적금 마지노선을 5천 원으로 정하고 그 정도는 겨우 어떻게든 지켜내는 걸 보면. 아니면 그냥 내가 나와의 약속을 어디서 안 지키고 어디서 잘 지키는지 아는 걸 수도 있다.



사실 지난 7일로 저축 통장을 만들 수 있는 날짜가 되었다. 매주 만 원씩 넣어 비상금을 만들 저축 통장. 그런데 주 3만 원가량의 돈을 쓰기도 전에 저축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워 미루고 있었다. 저축통장을 만들지 않고 일주일 가량을 더 보내고 나니 또 나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내가 발전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은 종종 내게 공포심을 심어줬다. 이대로 저축통장 만들기를 미루고, 적금 넣기도 미루고, 돈을 저축하는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미루고, 그렇게 다 미루고 나니 아무것도 바뀐 게 없는 나로 돌아갈까 봐 두려웠다. 나는 미루기를 참 잘하는 사람이었고, 그게 요즘은 참 두렵게 다가왔다.

그런 내 공포심을 잠재워준 것은 언니였다. 언니는 내가 이미 변했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는 경제관념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저축의 필요성을 못 느꼈고, 애초에 관심을 두지도 않았던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물론 어려서 그랬겠지만, 뭐 내 친구들은 일찍이 저축을 하곤 했으니까. 또 한 번 삐끗했다고 관두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목표한 바를 이루어내려고 하는 점도 짚어주었다. 사실 나는 꽤 빨리 싫증을 내는 사람이었다. 적금을 넣는 날을 미룬 것도 괜찮다고 해주었다. 그로 인해서 적금 넣는 날을 미루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또 그것을 실천하면 되기 때문에.


자조적인 생각은 말 몇 마디에 다시 긍정적으로 돌아왔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5천 원은 지켜냈지 않던가. 적금을 아예 안 넣고 다 써버릴 수 있었는데 어떻게든 넣었잖아. 그러면 저축통장에는 어떻게 하면 돈을 모을 수 있을까?


여기서 다시 나온 것이 참새방앗간이었다. 언니는 자신의 경험담이라며 참새방앗간에 돈을 쓸 때마다 벌금을 내는 방식을 제안했다. 요즘 내 참새방앗간은 소설이었으니 소설 이용권에 돈을 쓸 때마다 같은 금액을 저축하기로 했다. 꽤 참신했고, 이거라면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보통 소설 이용권에 한 번에 8천 원~만 원 정도 돈을 쓰고 있었고, 바로 적용해보니 곧바로 이용권에 쓰는 돈이 3천 원 정도로 줄었다. 3천 원을 쓰면서 바로 저축하고, 쓰면서 저축하고. 저축통장에는 금세 몇만 원가량의 금액이 쌓이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돈을 쓰면서도 부자가 되는 기분이었다. 결과적으로는 과거랑 쓰는 금액은 같지만, 현재의 소비에서 그치지 않고 미래를 위한 저축이 포함되어있단 사실만으로도 큰 안심이 된다는 것이 느껴졌다. 스스로가 단순하고 감정에 잘 휩쓸리는 것 같지만, 뭐 어떠랴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 후로 글을 완성하고 있는 지금까지 적금은 꼬박꼬박 잘 지켜서 정해놓은 금액만큼 넣고 있다. 다행히도 적금에 넣는 돈이 아깝지 않았다. 그냥 없는 돈이라고 생각하니 돈을 더 아껴서 쓰게 되고, 입버릇처럼 하늘에서 돈이 뚝 떨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예전처럼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쓰는 일은 많이 줄었다. 게다가 항상 넉넉하게 적금을 넣었더니 벌써 목표금액의 반이 넘게 모였다. 잘하면 1년까지 돈을 모아서 일대일 레슨을 들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다음은 슬슬 투자 공부도 해봐야겠단 생각을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미루기를 좋아하는 성격 상 공부를 미루고 있지만, 그동안 별개로 쌓았던 적금이 만기 되면서 돈을 굴리는 법을 알아야겠단 생각이 자꾸 들고 있다. 저축습관은 서서히 잡히고 있는 것 같다. 큰돈을 써야 할 때 예전에는 통장에 돈이 없으니 알바를 해서 월급으로 한 번에 내려고 했다면, 요즘은 어떻게 돈을 모을지부터 생각한다. 알바가 구해지지 않더라도, 혹은 있더라도 새로운 수입원에 의존하지 않고 기존의 수입원을 이용해 돈을 모을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적금이 만기 되어 보컬학원 등록을 앞두었을 때의 내가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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