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키건_이처럼 사소한 것들
막달레나 세탁소를 다룬 소설이란 점을 알고 읽기 시작한 소설이었다. 가뜩이나 120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짧은 소설인데, 그곳의 문제는 언제 어떻데 파헤쳐지고 그 다음은 어떻게 이어지는걸까? 읽으면서 내가 한 생각에 대해 반성하며 책을 덮었다. 처음부터 많은 부분은 펄롱이란 사람을 다루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태어났고, 어떤 사람들과 살았고, 어떤 유년기를 보냈는지, 지금 그의 경제적 상황은 어떻고 그의 가족들과의 삶은 어떤지 등 말이다. 그리고 그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한 선택에 대해 그 선택이 얼마만큼 큰 것인지를 생각하게 했다. 수녀원에 갇혀있던 한 사람을 데리고 나오기까지 펄렁에게 그 선택이 어떤 의미인지를. 많은 마을 사람들이 알면서도 지나쳐온 것에 대해 자신은 어떤 반기를 들고 있는지.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보다 최악은 없다는 걸, 펄롱은 갇혀있던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가며 보여주었다. 그건 부유한 사람이나 어떤 직업인 사람이거나 조건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도, 고결함으로 덮을 일도 아니었다. 그는 서로 돕고 살아가고 싶었을 뿐이다.
이 책은 르포가 아니다. 이 책은 소설로서 할 수 있는 너무 아름답고 멋진 서사를 내게 주었다. 허무맹랑하게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글에 마음이 가 닿지 못하긴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데에 소설이 할 수 있는 힘을 아니까. 이 책이 갖는 문학의 에너지에 대해 생각한다.
그런 펄롱. 펄롱은 어떻게 지금의 펄롱이 되었는가. 아버지 없이, 결혼 없이 임신을 하고 자신을 낳은 어머니를 원가족도 외면할 때, 받아준 미시즈 윌슨. 그가 모자에게 보여준 친절과 환대, 펄롱이 글을 읽고 배울 수 있도록 한 넉넉한 격려, 계시나 큰 계기가 아니더라도 “이처럼 사소한 것들”로 채워졌던 삶. 펄롱의 삶은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한국에 번역된 클레어 키건의 두 소설의 공통인식은 그런 것이다. 우리의 존재가 어떻게 살아나가고 사랑을 할 것인가에 대해, 원래부터 악하고 나빠 손가락질 받을 사람들이 있음이 아니라 곁이 될 수 있었다고. 곁이 될 수 있다고. 그리고 그 곁의 환대를 받은 이가 또 그 환대와 사랑을 전하고 연결할 수 있을 거라고. 세상은 점점 절망적이라지만 나는 이 사랑의 메세지를 믿고만 싶은 것이다.
p.s.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영화 <퀴어 문화 축제 방해 잔혹사>를 보았고, 이 글귀를 읽으니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평소와 같은 구체적 얼굴들이 아닌 익명의 얼굴들이. 부디 당신이 혐오와 차별이 아닌 평등과 사랑의 용기를 내어 함께 마주할 수 있기를.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p29 늘 이렇지, 펄롱은 생각했다.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삶이 달라질까 아니면 그래도 마찬가지일까-아니면 그저 일상이 엉망진창 흐트러지고 말까? 버터와 설탕을 섞어 크림을 만들면서도 펄롱의 생각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일요일, 아내와 딸들과 함께 있는 지금 여기가 아니라 내일, 그 리고 누구한테 받을 돈이 얼마인지, 주문받은 물건을 언제 어떻게 배달할지, 누구한테 무슨 일을 맡길지, 받을 돈을 어디에서 어떻게 받을지에 닿아 있었다. 내일이 저물 때도 생각이 비슷하게 흘러가면서 또다시 다음 날 일에 골몰하리란 걸 펄롱은 알았다
p36 곧 펄롱은 정신을 다잡고는 한번 지나간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을 정리했다. 각자에게 나날과 기회가 주어 지고 지나가면 돌이킬 수가 없는 거라고. 게다가 여기에서 이렇게 지나간 날들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게, 비록 기분이 심란해지기는 해도 다행이 아닌가 싶었다. 날마다 되풀이 되는 일과를 머릿속으로 돌려보고 실제로 닥칠지 아닐지 모르는 문제를 고민하느니보다는.
p36-37 다시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펄롱은 네드가 오래전 전 크리스마스에 선물해 주었던 보온 물주머니를 생각했다. 그 선물을 받고 실망하긴 했으나 그것 덕분에 밤마다 그 뒤로도 오랫동안 따스함을 느꼈다. 다음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에 펄롱은 『크리스마스 캐럴』을 끝까지 읽었다. 미시즈 윌슨은 펄롱에게 큰 사전을 이용해서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라며, 누구나 어휘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펄롱은 그 단어는 사전에서 찾을 수가 없었는데, 알고 보니 '어희'가 아니라 '어휘'였다. 이듬해 펄롱이 맞춤법 대회에서 1등을 하고 부상으로 밀어서 여는 뚜껑을 자로도 쓸 수 있는 나무 필통을 받았을 때, 미시즈 윌슨은 마치 자기 자식인 양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 주었다. "자랑스럽게 생각하렴." 미시즈 윌슨이 말했다. 그날 종일, 그 뒤로도 얼마간 펄롱은 키가 한 뼘은 자란 기분으로 자기가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소중한 존재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돌아다녔다.
p81-82 “내거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니?" 펄롱이 말했다. ”말만 하렴.“
아이는 창문을 쳐다보고 숨을 들이마시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친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처음으로 혹은 오랜만에 친절을 마주했을 때 그러듯이.
p102-103 좋은 사람들이 있지, 펄롱은 차를 몰고 시내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주고받는 것을 적절하게 맞추어 균형 잡을 줄 알아야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사람들하고 잘 지낼 수 있단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특권임을 알았고 왜 어떤 집에서 받은 사탕 따위 선물을 다른 더 가난한 집 사람들에게 주지 않 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러듯 크리스마스는 사람 들한테서 가장 좋은 면과 가장 나쁜 면 둘 다를 끌어냈다.
p119 두 사람은 계속 걸었고 펄롱이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더 마주쳤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p120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결국 그곳에 가고 말았을 것이다. 더 옛날이었다면, 펄롱이 구하고 있는 이가 자기 어머 니였을 수도 있었다. 이걸 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펄롱이 어떻게 되었을지, 어떻게 살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