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 비가 내리지 않는다. 땅도 어지간히 말라 있고.. 오늘, 내일 양일간 강수확률 100%였는데.. 사람들 손에 손에 우산이 들려 있기는 하다.
A페이 이용해 I전화 지갑에 넣은 모바일 IC카드는 지극히 잘 터진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 현지인 마냥 매표소를 거치지 않고 IC카드를 이용, 개찰구를 통과해 난카이 공항선 급행 전철에 올라 시내로 향한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도톤보리로 나갔다. 너무도 익숙한 곳. 하지만 너무도 많은 사람에 임의로 동선을 잡기 어렵다. 좀 비싸더라도 고기를 꼭 구워 먹을 생각이었는데, 이름난 곳에서는 혼자 온 허름한 중년 남자를 적극적으로 맞이할 생각이 그리 없어 보였다.
검색하면서 이름을 몇 번 보았던 초밥집에 들어갔다. 짧은 시간에 여러 접시를 먹어치웠다. 매우 만족스러웠다. 실컷 먹었는데 고깃집 코스요리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 인도와 섭리에 감사한다.
원래 3차 정도는 먹어 줄 생각이었는데 피로가 살살 밀려온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였던 피로가 이제 와서.. 타코야키를 싸가지고 숙소에 들어가려다가 매장 2층에 들고 올라가 앉아 조금씩 먹으면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거의 오차 없이 예보된 시각에 정확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대단히 일본스럽달까? 편의점에 들러 간식을 조금 사가지고 숙소에 들어왔다.
나도 몰래 쌓인 피로를 피로로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한다. 환경을 적절히 바꿔 기분을 전환하고 기꺼이 또 충분히 쉴 수 있어 다행이다.
오는 길에 혼자 고기 구워 먹는 집을 본 게 자꾸 어른거린다. 내일은 진짜 하루 종일 비가 온다는데..
밤새 비가 내렸고 또 지금도 내리고 있다. 일찍 일어나 추가비용 없이 무료로 제공되는 호텔조식을 먹었다. 가끔 창밖을 보면 일기예보대로다. 점심시간 전후해 비가 가장 많이 내리고 이후 조금씩 잦아든다고 한다.
호우주의보를 뚫고 무리하게 돌아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다행히 숙소 바로 앞에 지하철역 출입구가 있다. 오늘은 거기서부터 거대한 오사카의 지하세계 탐험. 오사카 북부의 중심 우메다에 다녀올까 한다. 나가 보아 남부의 중심 난바역 근처로도 충분하면 애써 거기까지 가지 않을 수도 있고..
점심때가 되어 난바의 지하상가 맛집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한다. 괜찮아 보이는 데 들어갈까 잠시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하면 내내 난바에만 있다가 다시 집에 가게 될 것이다. 우메다가 많이 먼 것도 아니다. 지하철 딱 네 정거장!
평소 여행 중 잘 들르지 않는 곳을 배회하고 있다. 지하상가 식당, 대형서점 그리고 백화점. 본의 아니게 선택한 길이지만 나름 재미가 있다. 아버지 손 붙잡고 명동을 들락거리던 어린 시절 기억이..
실내에만 계속 있다가 숨을 좀 쉬려고 바깥으로 잠깐 나왔다. 계속되는 호우. 길 건너에 대형 관람차가 보였다. 탈 생각은 전혀 없다. 그 옆에 특별히 남성의 기호에 맞춘 것으로 보이는 백화점이 따로 있는 것을 본다. ‘아! 그래서 이쪽엔 유난히 여성용품이 많았구나!’
건물과 건물이 지하로 다 연결돼 있기에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아직 우산을 한 번도 펴지 않았다. 지하상가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숨을 고른 뒤 기대를 많이 하고 백화점 남성관에 들어갔다. ‘괜히 갔다.’ 전매장이 남성용 고급 명품 매장. 이제 난 바로 난바로!
난바로 돌아와 노상에서 시간을 좀 보내려 했으나 비는 계속 내리고 사람은 너무 많고..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어제 보아둔 고깃집을 찾아갔다. 어정쩡한 시간이라 대기 없이 입장. 평생 처음 해 보는 고기구이 혼밥이었을까? 여하튼 나의 선택은 최고였다. 실컷 잘 먹었다.
숙소에 돌아와 잠시 쉬다 다시 나왔다. 도톤보리 유람선 탑승이 예약돼 있다. 비는 상당히 그쳐서 내리다 말다를 반복했다. 승선장에 좀 일찍 갔는데 예약한 것보다 30분 일찍 배를 탈 수 있었다. 20분 동안 선상 유람. 놀이동산 놀이기구를 좀 더 길게 탄 느낌이랄까? 도톤보리 일대를 모처럼 다른 각도에서..
배에서 내려 오사카의 명물 구시카츠를 먹으러 왔다. 이것저것 다 튀겨 먹는데 반찬으로 김치랑 같이 먹으니 깔끔하고 좋다. 먹다가 죽는다는 오사카에서 오늘 네 끼째.
“나마비-르 모오 히도츠 구다사이!”
사흘 중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은 가장 짧은데 날씨는 가장 좋다. 서울에서 기상정보를 공유했던 아내는 ‘자기 같으면 돌아오는 날 일찍 퇴실하고 오사카성 다녀오겠다’고.. 같이 도쿄에 갔다 돌아오는 날 남은 짧은 시간을 알차게 이용해서 ‘너의 이름은’ 계단에 다녀온 게 떠올랐다.
눈부신 날에 주변공원과 건물도 참 아름다웠다. 다만 20세기초에 복원된 건물로 고풍을 온전히 느낄 수는 없었다. 심지어 천수각 5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기까지.. 하지만 워낙 상징성이 강한 곳이어서.. 이제 적어도 ‘오사카를 그렇게 들락거렸으면서도 오사카성에 아직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느냐?’는 핀잔만큼은 듣지 않게 되었다.
도톤보리로 돌아와 킨류라멘을 한 그릇 먹었다. 오사카에서는 어떤 라면을 먹을까 고민하며 검색하지 않는다. 오사카에서 비롯된 브랜드로서 배추김치, 부추김치, 다진 마늘을 마음껏 집어넣을 수 있는 킨류라멘이 우리 입맛에 딱이다. 길가에 앉아 실컷 먹고 있는데 바로 옆에 없던 대기줄이 길게 생기면서 시범 보이는 사람 구실을 톡톡히 하게 되었다. 바로 옆에서 다 알아듣는 우리말로 줄곧 이러니 저러니.. ‘더 맛있게 먹어야 하나?’
숙소로 돌아가 맡겨놓은 짐을 찾기 전 나고야 브랜드 코메다 커피숍 도톤보리점에 잠시 들렀다. 나고야에 대한 애정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나고야성에도 가 봐야 하는데..’
현찰, 트래블 체크카드, IC카드 등을 유기적으로 활용해 동전 딱 한 닢만 남기고 불편 없이 잘 쏘다니다 이제 집에 돌아간다. 2주 전 여행 뒤 남아있던 eSIM 데이터도 알뜰하게 잘 썼다. 내가 평소에 데이터를 많이 쓴다고 생각해서 지난번에 대용량을 샀던 것을 결국 여행 두 번에 나눠서 잘 썼다.
주유패스 1일권은 결국 사용을 했다. 유효기간이 정해져 있는 패스를 그냥 가지고 돌아가서 실효 전에 지인 가운데 오사카 갈 사람, 그중에서도 주유패스가 꼭 필요한 사람을 찾아 실물 패스를 전달해 주기도 생각보다 어려울 것 같아서.. 그나마 손해를 줄이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나 이제 가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