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버스는 한대가 아니다.
너무 당연하지만 잊기 쉬운 것들
6교시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을 막 교실 밖으로 배웅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아들이었다.
방금 막 학원에 도착했는데 자기 버스카드에 150원밖에 없고, 어제 힘들여한 숙제 문제집을 집에 두고 왔단다. 그래서 엄마가 버스카드 충전할 돈과 책을 가져다 주라는 거였다.
애교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딸과 달리 아들은 막내라 그런지 내 맘을 흔드는 방법을 너무 잘 안다. "네가 실수한 거니 네가 알아서 해!"라고 딱 끊어주고 정신 똑띠 차리게 해야 하는 걸 아는데;;
"엄마, 사랑해요. 블라블라 꽁냥꽁냥~"
"아~몰라. 으이그 정말, 다음부턴 절대 안 돼!"
하고 말았다.
결국 이 녀석 때문에 퇴근하고 급히 움직여야 했다. 일단 누나 밥을 챙겨주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책 챙겨 가주는 것도 어딘데, 아들은 거기다 자기 배고프니 별다방에서 바질토마토크림치즈베이글까지 사 오라는 주문까지 얹었다. 덕분에 별다방에 들리기 위해 일부러 한 정거장 전에 내려걸어야 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근처 석촌호수로 벚꽃을 보기 위해 모인 인파들 때문인지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아들이 부탁한 베이글은 물론이고, 샌드위치 종류는 완전 매진이었다. 텅 빈 매대를 보며 헛웃음만 나왔다. 가뜩이나 피곤하고 지쳤는데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그래도 벚꽃은 이쁜 거 말곤 죄가 없으니 맘씨를 고쳐먹고 근처에서 대체할만한 간식을 골라 아들에게 책과 함께 전해줬다. 필요한 것을 쏙 받아 들더니 휑하고 들어가 버리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가가 핑 돌았다. 이 좋은 계절 같이 꽃구경하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돌아서는 내 옆으로 많은 아이들이 학원으로 들어갔다. 뚱한 표정의 한 아이 뒤로 "잘할 수 있어!" 하는 그 아이 엄마의 응원이 반응 없이 공허하게 허공에서 흩어졌다.
이러저러한 생각 하며 걷다가 버스 정류장을 그냥 지나쳤다. 뭐 어때! 이제 곧 또 나오겠지 싶어 보니 살펴보니 방향이 엉뚱했다. 결국 지도앱을 켜서 다시 가는 길을 검색해서 버스정류장과 타야 할 버스 번호를 확인했다.
일단 길을 건너야겠기에 건너고 났더니 내가 타야 할 버스가 내 옆을 막 지났다. 정지해 있다 출발한 버스라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럴 수가.
달려야 할 길이 생각보다 길었다. 그래도 이제껏 달린 게 아까워 죽자 살자 일단 달렸다. 다행히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과 타는 사람들 꽤 있었던 덕에 곧 잡힐 듯 가까워졌다.
오올~ 탈 수 있겠다 싶었는데 매정하게도 기사님은 그냥 출발해 버렸다. 사이드미러로 문에 가까이 다가선 내가 충분히 보였을 텐데ㅠㅡㅠ
기사님이 내가 어디서부터 뛰었는지 알았다면 저렇게 매몰차게 가버릴 순 없을 거다!
나도 모르게 원망의 시선을 보내는데 그 옆으로 뒤에 있던 버스가 지나갔다.
세상에!
그 뒤의 버스도 우리 집 가는 버스였다. 난 가장 빠른 하나의 버스 번호만 알아두고 그것만 보고 미친 듯이 달리느라 바로 내 옆에 쉽게 탈 수 있던 버스가 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거다.
허탈한 마음으로 정류장 벤치에 앉아 다음 버스 도착시간을 확인했다. 8분이나 뒤에 버스가 온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숨이 턱에 닿도록 뛰지 말고 천천히 걸어와도 될걸 그랬다.
뒤늦은 깨달음이 밀려왔다.
그렇다.
어쩌면 꿈을 향한 지금 나의 모습도 비슷하지 않을까?
너무 빠르고 앞선 방법만 좇다 보니 계속 놓치고 뒤처지는 기분이다.
그런데 사실 조금만 시선을 돌려도 찾을 수 있는 차선책이나 여유롭게 삶을 즐기며 병행할 수 있는 방법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생각이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