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차졌다. 언제 가을이 온건지 싶게 나무 잎사귀마다 물이 들고, 낙엽이 떨어지는 것이 새삼 가을을 알게 했는데 저녁 바람이 퍽 차진 것이다.
한창 글에 대한 열정이 다시 솟아올랐던 3년 전,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의미부여를 했더랬다. 그런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감성으로 쓰인 글은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걸까 싶을 정도였다. 그치만 그때의 충만한 감성에 젖어드는 것이 나는 좋았다.
감성은 넘치는데 정리가 되지않은, 말 그대로 "몽글몽글한 그런 느낌말이야, 이런 느낌적인 느낌 알지?" 식의 글이 쓰였다. 뭐든지 임계점을 넘어야 그 효과가 오듯는 법인데 조급한 성격의 나는 쓰다가 말다가를 반복했다. 그 사이 직장도 다니게 되면서 더더욱 글을 쓰고자 하는 건 나에게 있어 의지가 필요한 일이 되었다.
그렇다고 그 시간이 무의미했던 건 아니다.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점차 현실을 보는 눈, 감각이 깨어나기도 했다. 직관을 통해 의미를 찾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계획과 루틴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됐으니 말이다.
그런 현실 감각이 깨어나서 그런지 몰라도 한동안은 감성을 잠시 접어두고 살았다.
최근 지는 낙엽을 보면서는 "바싹 마른게 불쏘시개로 쓰면 톡톡히 역할을 해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낙엽의 다른 쓰임새가 없을지를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감정적인 호소가 짙은 드라마를 보면 괜히 과몰입하게 될까, 감정에 빠져 해야할 일들을 못하게 될까, 걱정하기도 했다. 감각적으로 보려고, 일을 잘 마무리하려고, 너무 스스로에게 몰입되지 않도록 하는 시간들이 쉬운 건 아니었다.
(최근 유튜브 클립영상으로 슈룹을 봤는데 아, 정말 감정에 단맛을 느낄 수 있다면 이런 기분일지도.)
그런 시간 속 3년이 지나 어쩌면 매번 맞이했던 가을인지도 모를 이 계절을 지나면서, 완연한 주황, 빨강, 노랑빛을 내는 나뭇잎들을 보면서 가을이라면, 이 계절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저녁이 되면 바람은 더욱 차져서 외투를 더욱 여미게 되는데, 그렇게 꽁꽁 싸매며 거리를 걷다 집으로 들어올 때의 그 아늑함과 따뜻함은 이 계절이 주는 포근함이다.
브런치에 다시 글을 올려야겠다고 마음먹은 이후로는 책상에 번듯이 앉아 노트북으로 글을 썼었는데, 오히려 오늘만큼은 자세를 그리 잡으니 자판을 더욱 치고 싶지않아졌다.
전기장판을 휘휘 틀고 이불을 두겹으로 겹쳐 아늑한 무게감을 더한다. 그리고 그안에 들어가 핸드폰 메모장을 켠다. 이제야 좀 써진다.
제법 쌀쌀해진 계절이 주는 감성이 오늘따라 반갑고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