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월 Jan 14. 2023

30대인 지금이 좋아요

10대, 20대를 기억하십니까?



10대 후반에는 '내가 다 컸구나,
다 큰 성인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20대 초반이 되니
'인간관계는 참 어렵구나'라는 걸 느꼈고,
20대 후반인 지금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있다.

2018년 8월 2일


일기장을 뒤적이다 발견한 글이다. 5년 전 내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10대부터 지금까지의 나를 되돌아보면서, 아주 미세하게 조금씩 성장해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던 연필 한 자루를 들고 이어서 끄적여 봤다.



30대인 지금은
‘내일을 기대하는 삶'을 만들어 가는 중.



10대는 나의 가치와 생각이 다듬어지기 전이다. 필요한 결정들을 혼자 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부모님, 선생님, 친구 또는 공동체에 맞춰 흘러갔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부모로부터 정신적 독립을 이루기 시작한 건 아마 대학을 다니면서부터이지 아닐까 싶다. 그전에는 내가 가야 하는 길을 나 대신 다룬 누군가의 결정으로 이루어졌었다면 그때부터는 스스로 결정하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다양한 경험과 기회를 통해 홀로 서는 방법도 배웠다. 모든 게 새롭고 어려웠지만 예전보다 더 자유로웠고 내가 한 결정에 대한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나는 빛을 향해 한 발짝 내디뎠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그리고 어른들의 세계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안다고 생각했다. 작은 우물에서 조금 더 큰 우물로 이동했을 뿐인데 말이다. 하지만 그때만큼은 내가 밟고 있는 땅이 우물 밖이라고 확신했다. 30때 중반이 되어 그때를 돌아보니 모든 게 그저 귀엽기만 하다. 10대에게 주어지는 그 풋풋함과 패기가 그립기도.


20대에는 수많은 경험을 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복잡한 관계 속에서 사랑도 받았지만 상처 또한 피할 수 없었다. 대학교에서 만난 스페인 친구들, 나와 같은 외모를 가진 한인 2세들, 교회 식구들, 직장동료들, 이런저런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SNS에 나의 즐거운 일상을 공유하느라 바빴다. 그들에게 나는 멋있고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것을 비춰야 했기에. 그러다 보니 자연스러운 내가 아닌 꾸미고 보정하고 과장된 모습을 비추느라 애썼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고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행동했다. 초라해 보이는 진짜 내 모습대신 블링블링한 모습을 갖추기 위해 늘 긴장 속에 살았다. 다른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그들이 바라는 내가 되기를 노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관계는 내가 원하는 곳으로 흘러가지 않았고 어렵고 힘든 상황들을 피해 갈 수 없었다. 나를 숨기면 숨길수록 자존감은 점점 더 떨어졌고 별거 아닌 것조차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조금 더 당당했었더라면, 조금 더 나 자신을 사랑했다면 덜 힘들고 피곤한 20대를 보냈었을 텐데 참 아쉽다.


20대 후반 때 맞이한 제일 큰 변화는 결혼이었다. 부모님의 품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났다. 시끌벅적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남편과 둘이 있으니 처음엔 굉장히 어색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얻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 시작했고, 나를 위한 시간이 얼마나 필요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덕분에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그리고 내가 잘하는 것 또는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 자신에게 귀 기울였더니 또 다른 중요한 변화가 찾아왔다. 내 모습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성격, 성향, 외모.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나를 인정했다. 그랬더니 꾸미지 않는 내 모습을 타인에게도 보여줄 수 있는 용기가 생겼고 진실된 마음을 서서히 드러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지금은 어떤가. 그 어느 때보다 바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나를 위한 시간이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걸 안다. 불필요한 일들을 줄이고 꼭 없어서는 안 될 시간들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덕분에 의미 있고 만족스러운 오늘을 만들어가고,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30대는 취향과 안목이 여물어 빛을 띠기 시작하는 시기이라고 하는데 이 말의 의미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나이 들어가는 걸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반대로, 좋다. 아직까지는.







매거진의 이전글 단 하나뿐인 하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