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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월 Jan 27. 2023

워킹맘, 나쁘지 않아.

아이를 낳고 나서 회사생활이 달라졌다.


8년 9개월 23일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한 총시간이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취직을 한 후, 9년 가까이 일하면서 3번의 이직을 하고 현재 4번째 직장을 다니고 있다.


나는 회사를 다니기 싫어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임신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9개월 후면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남편에게 자랑을 하기도 했고, 부끄럽지만 어릴 적 꿈이 부자와 결혼해서 일을 다니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이를 낳고, 1년의 육아휴직을 얻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건 힘들었지만 집에 있는 건 생각했던 만큼 좋았다. 회사가 생각나긴 했지만 그립지는 않았다.





그럼, 퇴사하고 육아에 전념해 볼까?



질문에 답하기 위해 1년 뒤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무릎이 늘어난 츄리닝, 3일째 감지 못한 머리, 먹다가 식어버린 밥, 아이와 놀다 지쳐 누워있는 내가 그려졌다. 아이의 낮잠 시간도 점점 줄어들 텐데, 내가 아이와 함께 하면서 하루종일 잘 놀아줄 수 있을지, 아이를 즐겁게 해 주면서 나 자신 또한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결국 회사로 복귀하는 것이 우리 가족에게 제일 좋은 선택일 거라고 생각했다.


복귀한 지 4개월이 넘어가는 지금, 옳은 선택이었다는 걸 온몸으로 체험 중이다. 아이는 감사하게도 어린이집에 빨리 적응해 나갔고, 우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수월하게 육아와 일을 병행하고 있다. 그렇게 내 삶에 변화가 찾아왔다. 예전에 꼴도 보기 싫었던 회사가 요즘에는 나쁘지 않다. 철이 들은 것일까? 아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있었던 것 같다. 워킹맘이라는 타이틀도 마음에 든다. 마치 슈퍼우먼이 된 듯한 느낌을 받게 해준다랄까?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내 삶에 일어났는지 생각해 보고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았다.








1. 나만의 시간 확보


회사를 다니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얻게 되었다. 24시간 밀착 육아를 하고 있을 때에는 잘 못 느꼈지만, 이런 시간이 얼마나 간절하고 필요했는지 깨달았다. 육아가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얼마나 지치고 힘든지도. 나를 위한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고 다시 미라클 모닝을 시작하게 되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커피를 내려 책상에 앉았다. 막막했다. 누구의 방해 없이 오로지 나를 위한 60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꽤 길게 느껴졌는데 요즘에는 부족하다. 쓰고 읽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출근하는 날에는 지하철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이곳에서도 글을 쓸 수 있고, 독서를 하거나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기에 이 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눈을 뜨고 제일 먼저 나를 위한 시간을 보냈더니 하루를 더 기분 좋게 또는 더 힘차게 시작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이젠 더 이상 출근길이 고통스럽지 않다.



2. 월요병 극복


아기 낳기 전의 하루는 이러했다. 알람을 10분 간격으로 맞춰놓고서는 마지막 알람이 울리면 그제야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반쯤 감긴 눈으로 허겁지겁 준비하고 회사로 향했다.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지쳐서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다 잠에 들었다. 여유란 1도 없는 아침 그리고 지쳐있는 오후. 햄스터 쳇바퀴 돌듯 하루하루가 비슷하게 흘러가는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즐거운 주말이 찾아오긴 했지만 왜 이리 빨리 지나가는지. 일요일 저녁만 되면 안절부절못했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월요병이란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요즘은 예전과 비슷하지만 비슷하지 않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달라진 건 아침루틴뿐인데 하루 전체가 바뀌는 경험을 하고 나서는 평일과 주말에 큰 차이가 없다. 내일이 월요일이든 아니든, 내일이 기다려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3.  자기 관리


늘 츄리닝만 입다가 출근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예전에 입었던 옷을 꺼내 보았다. 임신, 출산을 겪으면서 달라진 내 모습은 엉망이었다. 출산 전에는 '나는 아이를 낳고도 나를 가꾸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야'라고 약속했었지만 지키지 못한 결과였다. 복귀 첫날엔 꾸민 내 모습조차 어색했다. 그래서 처음엔 그냥 향수만 뿌려보자 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몇 초도 되지 않는 향수 뿌리는 행동이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자 다시 자존감을 찾게 해 주었다. 예전엔 뿌리지도 않았던 향수인데, 이게 뭐라고 자존감까지 향상 시켜주는 것일까? 은은한 향기가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건 물론 예쁜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을 선물해 주었다.


아주 작은 행동이 가져다준 변화를 체험하고 나니, 규칙적이고 건강한 습관 또는 생활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되었다. 시작은 향수였지만 요즘엔 자기 관리를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는 중이다.




4. 조금 더 여유로운 직장생활 & 인간관계


남의 시선이 두렵고 신경 쓰였다. 나를 보여주기보단 숨기기를 반복하다 보니 때론 내 정체성이 헷갈리기도 했다. 직장에서 또한 이 문제를 피해 갈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그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지쳐가고 있었다. 회사를 가고 싶지 않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론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일단, 삶의 우선수위가 바뀌었다. 예전에는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의 비중이 컸다면 요즘에는 아이의 대한 생각 때문에 그런 문제들이 덜 중요해졌다. 아줌마가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아이를 낳으면 용감해진다는데 무슨 뜻인지 조금 알듯 하다. 또 유일하게 엄마가 아닌 진짜 나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시간인데 나 대신 다른 누군가에게 신경 쓰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직 완전히 극복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관계를 이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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