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한순간 번개가 번쩍, 이어 우르릉 쾅! 천지를 울리는 단 한 번의 천둥소리였다.
뒤이어 다급히 달리는 긴박한 구급차 사이렌 소리.
'아, 어디선가 사고가 났나 보다!'
베란다 철제 난간에는 빗방울이 투명 구슬처럼 매달려 있다.
사는 동안 언제 어느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사건사고 없이 평안할 때 소소한 것이나마 인생을 잘 누리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
'누린다'라고 하면 거창한 것이어야 하고, 사치이며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기 쉽다. 하지만 누릴 수 있는 것을 저마다 잘 누리고 사는 것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가꾸며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다.
'누린다'는 것은 좋게 여기는 어떤 것을 선택해 향유함을 뜻한다. 생활 속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을 마음껏 즐기거나 맛보는 것을 의미한다.
찾아보면 내가 누릴만한 것이 많다. 내 손 안의 작은 스마트폰부터 시작해 각종 기기의 편리함을 누리고, 일하다 잠시나마 쉬는 휴식을 누리며, 악의 없는 사람들이 건네는 따뜻한 친절도 누린다.
상황과 처지가 각기 다르고 빈부 격차에 따른 상대적인 빈곤과 결핍, 그에 따른 박탈감이 있을 뿐, 자신을 돌아보라! 아무것도 못 누릴 형편과 처지인지, 누릴 것이 주변에 전혀 없는지, 늘 곤경에 처하기만 하는지, 활동할 수 없을 정도로 항상 몸이 아픈지, 사회의 돌봄과 복지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지...
공공도서관을 통해 마음껏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고, 다양한 주제의 강연과 강좌, 미술품 전시회, 음악회 같은 문화프로그램도 병행해 누릴 수 있다. 각종 평생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 취미활동이나 특기를 살릴 수 있으며, 건강증진을 위해서는 각종 운동 시설이나 프로그램도 이용할 수 있다. 어떤 목적과 취향을 반영한 단체, 동호회, 모임도 있다.
지역이나 동네에서는 특색 있는 축제가 열리고 노래와 춤, 악기연주, 그림, 사진, 소품 같은 작품 전시도 한다. 아마추어 작품이지만 최선을 다한 진심과 성의를 느낄 수 있고, 예술적 아름다움도 감상할 수 있다.
이 모두는 생명으로 살아있어 마음과 생각과 행동으로 누릴 수 있는 축복이며 감사이다. 전쟁 아닌 평화가 있어 가능한 누림이고, 궁색하지 않은 사회의 시스템이 작동해 누리는 혜택이다.
살면서 누리는 것을 헤아려 보라!
삶에 고난과 고통이 따르고, 근심걱정염려가 있다 하여 무엇을 누리며 산다는 것이 가당치 않은가?
사람이 아무것도 누리는 것이 없다면 사는 낙(樂)이 없어 살 이유를 상실한다.
소소하나마 무엇인가를 누리며 살기에 삶이 지속된다.
가깝게는 건강한 음식을 누리고 편리한 도구를 누린다. 나아가 취미와 운동, 여가를 누린다. 무료하고 심심하지 않게 게임과 오락도 하며 영화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누린다. 영화의 스토리는 풍부한 간접경험과 생각을 제공한다.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감성이 풍부해진다. 이 모두는 우리들에게 허용되어 선택하고 누리는 삶이다.
누릴 수 있는 것을 잘 누려야 행복감이 증가한다. 유한한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잘 누려야 타인도 배려한다. 삶은 풍요로워지고 건강한 삶이 된다.
무엇을 누리느냐에 따라 인생의 질이 달라진다.
권세, 명예, 부(富)가 있어야만 누리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누리고 사는 것도 가치 있고 행복하다. 일상에서 작은 즐거움을 의식적으로 만들어 보라.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는 여유, 산책을 하며 느끼는 자연의 평화, 여행에서 얻는 자유로움, 다양한 문화 행사 체험, 잘 구비된 시설이나 제도의 혜택, 사람들과 좋은 관계도 누리자.
작은 즐거움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 삶의 만족도가 높다.
환경과 여건 안에서 찾아보면 누릴 수 있는 것이 많다. 그 안에서 기쁨과 즐거움, 보람과 만족, 뿌듯함과 충만감을 누린다. 사람들 사이에서 정과 사랑, 인정받는 흐뭇함도 누린다. 사건사고 없이 보낸 날엔 평온과 감사를 누린다. 건강을 누리고 활기를 누린다.
그러므로 과도한 일의 성취나 돈의 축적, 불만족과 결핍감에 함몰되어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잠식당하지 말자.
주어진 생명, 살아있는 동안 가치 있는 것을 마음껏 누리며 살자. 잘 누려야 행복하다. 좋은 시간을 즐겁게 유익하게 충분히 누리면 도파민과 세로토닌 같은 행복 호르몬이 자연스럽게 증가한다.
휴식을 누리면 스트레스가 감소해 일에 몰입할 수 있고 더 높은 효율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 잘 쉬는 것이 잘 사는 길이라는 말이 수긍된다.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 관계가 깊어지고 신뢰가 쌓인다.
자신에게 유익하고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해 누리면,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의식이 생기고 자존감도 높아진다.
누릴 수 있는 것은 인위적인 것들도 있고 사람이 만들지 않은 자연도 있다.
잘 누릴 때 살아있음이 감사하고 삶이 겸허해진다. 당연히 행복감도 따른다.
맑은 공기가 좋아 산에 오른다. 들숨 날숨을 쉬는 가운데 건강이 더 좋아지는 느낌이다.
울창한 나무 숲이 안겨주는 신선한 공기는 심신에 안정을 준다.
삶의 근심 걱정 시름이 사라진다. 마음은 여유롭고 평화롭다.
까마귀가 머리 위를 날며 활기차게 까악-까악-까악 소리친다. 까치는 소나무 가지를 옮겨 다니며 책책책, 등산객을 반긴다. 걷노라면 들려오는 재잘거리는 뭇 새소리는 얼마나 발랄하고 생기 있는가. 고요 속에 간헐적으로 울려 퍼지는 청아한 새소리도 있다. 딱따구리가 둥지를 만드느라 딱 딱 딱 나무를 쪼는 소리도 그지없이 평화롭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늦가을 서늘 바람이 기분 좋게 얼굴에 닿고 그 바람에 나뭇잎이 하르르 낙하한다. 수북이 쌓여가는 낙엽을 보며 자연의 순환을 생각한다. 인생도 그런 자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벤치에 앉아 쉬노라니 홀연히 청설모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높다란 도토리나무 기둥을 잽싸게 오르더니 한 나뭇가지를 올라타고 털이 부슬부슬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준다. 나를 알아보는 듯하다.
귀여운 몸놀림에 다정히 청설모!~ 이름 불러 답례한다.
오늘도 살아 있어 누리는 행복이다.
센 바람이 불어오니 하염없이 나뭇잎이 떨어진다.
모든 것은 피어날 때가 있고 질 때가 있다.
질 때가 있으니 다시 피어날 때도 있다.
그러니 필 때 오만하지 말고 질 때 낙망하지 말아야겠다. 또다시 기쁨은 온다.
석양의 하늘이 아름답고 평화롭다.
*사진출처 : 커버/하 고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