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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Nov 27. 2023

6시간 수술의 기다림, 재활 극복의지

그 순간이 너무 길었지만, 끝나고는 눈코뜰새없이 지나간 시간

264번째 에피소드이다.


일주일이 지났다. 사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지경이다. 일이 바쁜 시기라 일하고 뭐하고 하다보니 아버지의 수술이 끝난지 벌써 7일째다. 에피소드 글을 쓰면서 또 한번 애살맞은 아들은 아니라 느낀다. 그 시간 동안 아버지에게 전화보단, '잘 있겠지'하는 막연한 낙관주의에 빠져있었다. 엄마가 옆에서 알뜰살뜻 챙기고 있다보니 그런 것도 있겠지만 무심하다 못해 가끔씩 남기는 카톡 뿐이다. "별일 없죠?" 하지만 일주일 전에는 난 인생 전체를 돌이켜봐도 긴장하고 있었다. 주말 간 수술을 위해 미리 입원을 해야 했기에 저번과 동일하게 난 서울로 기차를 타고 먼저 가서 입원수속을 밟고, 엄마는 널찍한 카니발로 다른 이들과 함께 아버지를 태웠다. 언제 다시 내려올지 몰랐기에 짐은 한 수레이고, 엄마는 내게 "엄마, 언제 다시 집으로 올지 모르니 빨래하고 반찬도 알아서 사다가 먹고 집 정리도 가끔씩 해주고"라고 신신당부했다. 입원수속은 진료보단 훨씬 더 간결했고 몇몇 수술 전 검사는 간단했다. 다만, 저번과 동일하게 휠체어를 끌고 아버지를 에스코드한다는 것이 꽤 마음이 찡한 순간순간이었다. 입원실엔 1인 이외에는 상주할 수 없기에, 주변 숙소에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8시 수술이었기에 7시30분즈음 도착해야겠다고 숙소를 나섰는데 그보다 조금 이르게 수술로 들어간다고 엄마에게 들었을 때, 뭔가 너무 죄를 지은 것 같아 죄책감을 하늘을 찔렀다. 아버지에겐 중대한 수술인데 또 그 효율을 따지다가 수술실 들어갈 때 손을 한번 잡아주지 못한 것이다. '이즈음 움직이면 효율적으로 딱 맞춰 도착하겠다.' 이 생각에 지배당한 나는 뼈저린 후회의 감정을 느꼈다. 가끔씩 중요한 건 효율이 아니라 비효율이란 말로 잘못 표기된 상대방을 아끼는 무한한 진심이다. 이걸 선별하는 것이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과 같다.


수술은 4시간 정도로 예정되었는데, 점심시간이 되어도 끝나지 않았다. 수술실 앞에서 있는 엄마에게 연락해 "수술 끝났다고 떠요?'라고 계속 되물었다. 엄마는 아직까진 수술 중이라곤 뜬다고 답변했다. 갑자기 엄청난 불안감과 함께 앞서 언급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10분에 한번씩 엄마를 괴롭혔다. 오후2시를 가리켜도 수술은 아직 진행 중이었다. 아버지와 나, 동시에 교집합인 분들께서 내게 연락이 왔다. "수술은 어떻게 되었어?" 그 카톡들이 나를 더 압박해왔다. 6시간 기다림 끝에 엄마에게 카톡이 왔다. "회복실로 옮겨갔다고 뜬다." 안도가 되었다. 최소 수술 도중 무슨 문제가 발생한 건 아닌 것 같았다. 아버지가 입원실로 다시 돌아온 건 그로부터 꽤 시간이 지난 후였다. 엄마와 표찰 바톤터치를 하고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했다. 그 전까지 마주했던 복잡한 감정들과 다르게 또 무뚝뚝한 말이 나왔다. "이제 재활에 집중하면 되니 유튜브 맘껏 보시고 그러다가 잠오면 자고 그러세요." 세상 재미없는 최악의 멘트다. 어디가서 말 잘한다고 수없이 듣는 내가 6시간 수술을 받은 후 아버지에게 던진 첫 마디다. 그러고 잠깐 있다가 악수하고 입원실을 나왔다. 그러곤 다시 부산으로 내려갔다.


직장으로 돌아가 정말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주말에 다시 서울로 올라와 병원으로 향했다. 누나네 가족이 먼저 도착해있었다. 애교많은 조카들이 표찰을 바꿔가며 할아버지의 건강회복 기원을 했을 생각을 하니 나의 방문보단 훨씬 더 큰 힘이 되었을 것 같았다. 표찰을 받아 아버지에게 갔더니, "바쁜데 왜 또 왔냐"고 물었다.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악수를 청했다. "다리에 좀 힘이 들어가요?"라고 내가 물었더니 고개를 저으면서 지금은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답했다. 고뇌에 빠진 내 얼굴을 보더니, "아버지가 또 극복해볼께. 극복하면 된다. 맨날 그랬듯 또 극복하면 된다. 걱정마라" 하는데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왜 그랬는지 알턱은 없지만 더 힘을 주어 악수를 했다. 그러고 입원실을 빠져나왔다. 아마, 58년 개띠 베이비부머 세대인 아버지가 살아온 인생은 드라마틱하고 한푼도 없이 시작해, 그래도 건실한 우리 가족공동체를 이루어내었다. 경제적인 이유로 순간적인 가족해체, 그리고 쪽방에 세들어 사면서 가지는 수치심, 내 집 마련의 희열과 기쁨, 엄마의 갑작스런 암투병과 극복, 누나네 가족이 두명에서 네명이 되는 기적 속에서 아버지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펄벅의 대지가 떠올랐다. 주인공이 땅에서 가족을 일구고 그 땅을 보며 소설이 마무리가 되는 장면 속 가지는 감정이 내가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던 감정과 유사할 것 같았다. 그만큼 아버지가 쌓아온 대지는 넓고 크다. 가족에겐 대지로 말미암아 뿌리내리고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고 수확했던 경험이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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