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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Feb 24. 2024

필리핀 민다나오섬 다바오시

현실주의자인 내가 이상적인 나와 만나는 순간, "용기가 다시 생길까?"

271번째 에피소드이다.


서른 중반을 넘어서니 더욱더 현실주의자가 되어간다. 사회문제는 인식하지만 애써 회피하면 본연의 일들을 지키려고 하고 나서길 주저한다. 이십대에 그렇게 사회적기업가 혹은 시민활동가로 살았던 내 자신은 지금은 전혀 없다. 교수님과 한번은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넌 말이야, 생각이 너무 많아. 좋은 놈이라곤 꽤 오래 봐서 알지만, 생각이 너무 많아서 다들 너를 잘 모르잖아." 그 말에 생각에 잠시 잠겨 있다 띄엄띄엄 운을 띄우며 "제가 겁이 많아졌어요. 용기가 없더라고요. 어느 시기까지는 고민하고 피하고 계속 그럴 것 같지만 꼭 반드시 제 자신에 대한 확신이 생긴다면, 용기는 다시 생길거에요. 우습지만 서른 중반이 되니 더 무서워요."


내가 다녀온 곳은 정확히 필리핀 만다나오섬 다바오시이다. 필리핀은 가보지 않은 입장에서 본 필리핀 역사와 문화는 글만으로 습득했기에, 그저 필리핀은 자체가 크게 하나로 인식되었다. 다만 남쪽 큰 섬으로 위치하고 있는 민다나오섬은 북쪽 큰섬에 위치한 마닐라로 대표되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필리핀보다 경제적으로 좀 더 가난하고 발전과 개발이 더딘 섬이다. 다양한 면으로 유명한 두테르테가 다바오시에서 시장을 역임하고 가문 대대로 시장을 하고 있는 곳이다. 마닐라 공항에 도착해 국내선을 타고 한국에서 일본만큼 또 비행을 해야만 겨우 민다나오섬에 도착할 수 있다. 민다나오 공항에 도착하자 외교부에서 절대 여행을 가서는 안되는 곳이 문자로 날아온다. 다바오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지역이 반군과 대치하고 있는 절대 여행위험지역이다. 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의 삶은 계속된다. 기후변화에 적응하며 농작물을 생산하는 농민들에게 단순히 시혜적인 국가원조가 아닌 과학적으로 기후변화를 고려해 농작물 실험을 하고 판로개척까지 하려는 국제기구 및 비영리기구들은 그저 존경의 대상이다. 그들의 삶을 내던지며 주민들과 호흡하고 기술이전 등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내 욱성질을 가끔씩 깨우곤 했다. 아포산기슭에 위치한 소수민족의 삶은 기회의 불평등은 확연히 드러낸다. 국가에서 배분된 토지로 자급자족을 하는 소수민족은 삶을 만족하며 살 수도 있겠지만 자라는 아이들이 더 큰 꿈을 꾸었을 때, 기회가 주어질 수 있는지 불투명하다. 다바오시를 훨씬 벗어난 곳에 위치했기에 반군과 접견할 수 있는 이 지역에서 기회의 평등은 이루어질 수 있는가, 내 욱성질을 다시금 깨우곤 했다. 필리핀 자구의 노력은 동반되고 있다. 민다나오개발청 및 다바오시의회 등은 많은 노력을 통해 개선시키고 있다. 주민들도 스스로 농장을 협동조합 형태로 만들고 자체적인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국제개발협력은 오묘하다. 사색에 많이 빠지게 만드는 분야이다. 대한민국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숨쉴틈없이 일을 하나씩 쳐내고 있을 때, 지구촌 어느 한편에서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해내고 있다. 국제화사회의 서열이 어느정도 있는 가운데서, 그 서열경쟁에서 뒤쳐진다는 건 외교, 무역경쟁에서 발언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건 국가경쟁력으로 온전히 귀결된다. 국가경쟁력은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들의 개개인의 삶의 최대치를 의미하며 누군가에겐 그나마 만족이지만, 누군가에겐 불만족으로 이어진다. 기회의 불평등은 내가 겪어본 가장 부당한 사회문제이다. 필리핀 일정 중 USM이란 민다나오섬에 있는 대학교를 방문했다. 그들에게 우리 일행은 연예인 그 이상이었다.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갑자기 불쑥 다가와 사진 한장 찍자고 카메라를 내민다. 하도 궁금해서 "왜 이렇게 한국사람들을 좋아하냐"고 묻자, K-팝, 컨텐츠한국인들은 필리핀에선 자체로 호감이다. 커피프린스란 드라마가 강타했다고 하는데 내가 전혀 '공유'같지 않아 미안함 따름이었다. 제복을 입는 문화가 남아있는 필리핀에서 대학가에서 제복은 희망의 상징이다. 현재를 이겨내고 더 나은 미래를 꼭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지의 상징이다. 이들의 삶이 꼭 그렇게 이어졌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겐 학자, 기업가, 변호사, 의사, 연예인, 크리에이터로 자신이 태어난 국가의 환경이 장애물이 되지 않고 그저 개인의 능력으로 극복해내는 모습 말이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우리 일행 모두 모여 소감 한마디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 "저는 크게 두가지를 항상 국제개발협력 현장에 오면 느낍니다. 먼저는 이곳에서 일하는 국제기구, 비영리기구 분들을 보며 '나라면 저럴 수 있을까?'라는 자기고백입니다. 아직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그 과정이 너무 힘들기에 아직까진 제겐 '할 수 없다'라는 결과로 귀결됩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현장에서 그것을 해내고 있는 분들은 누구보다 더 존경하게 됩니다. 다음은 제 욱성질을 깨우는 작업입니다. 가끔씩 그런 성질이 튀어나오곤 합니다. 자기확신의 과정일텐데, 용기를 다시 가지려고 부단히 노력중입니다. 이십대에 저의 욱성질을 깨운 건 '교육기회의 불평등'이었습니다. 민다나오 다바오시의 농민들, 아포산기슭의 소수민족들을 보며 제 욱성질을 솟아나곤 했습니다. '이건 너무 불평등하잖아. 무언가 해야되지 않을까?'라는 근본적이고도 원초적인 성질머리입니다. 계속 깨우면서 다시금 제 용기를 찾겠습니다. 그러면 다시금 흠뻑 빠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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