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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May 31. 2024

'손님'에서 '주인'으로

엄마도 사람이니, 그리고 그녀의 삶도 존재하니

276번째 에피소드이다.


오늘은 부끄러운 내 스스로의 반성에 관한 이야기다. 최근 아버지에 관한 글을 많이 기록했다. 그만큼 가족 중 누군가의 변화는 가족 전체를 변화시킨다. 허리신경 쪽 암수술 이후 재활만 6개월째이다. 암은 다행히도 제거되어 함암치료는 면했다. 재발을 하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지만, 더 고통스러운 건 재활이다. 아버지 스스로 표현하기로도 '유격훈련'과 같은 수준으로 끊임없이 걷기 위해 노력한다. 월-토요일까지 매일 오전8시부터 10시까지, 그리고 오후2시부터 5시까지 총 5시간을 일어서기 위해, 그리고 걷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재활하고 나면 온몸이 땀에 젖는다. 나는 부산으로 오면서 부모와 함께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던 지난 날을 기억했다. 그래서, 지난 6개월 동안 최대한 평일 주말 중 시간이 날 때 병문안을 가려고 노력했다. 아버지 옆에는 항상 엄마가 있었고 나를 맞이해줬다. 무뚝뚝하기 그지 없는 나는 나로썬 최선을 다하고 있다 생각했다. 어느날 엄마가 연락이 왔다. 토-일 이틀 간 시간을 좀 내라는 핀잔 아닌 핀잔이었다. 마음이 약하디 약한 엄마는 내게 강요는 못하고 말을 빙빙 돌리며 "바쁘면 어쩔 수 없는데 엄마도 교대를 해야, 집안 일도 볼 수 있고" 나는 이 역설에 망치를 한대 얻어맞은듯 했다. 갑자기 어딘가에 숨고 싶은 수치심이 들었다. 병원의 병간호도 힘든 가운데서 집안 일을 해야 한다며 교대를 한다니, 무언가가 일을 하기 위해 일을 또 만들어내는 일종의 역설이다. 엄마에겐 병원 밖의 휴식이 필요했다. 설령 그것이 또 다른 일이어도 말이다. 당장 주말 간 일들을 취소하고 토요일 오후에 갈테니 교대하자고 했다. 엄마의 목소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아버지의 재활 시간 동안 엄마에게 이틀 간 인수인계를 받았으며, 빨리 가라고 손짓했다. 병실에 있던 다른 가족 분들이 엄마를 보고 휴가를 잘 다녀오라고 했다. 또 한번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듯 했다. 병원 밖 그 자체가 휴가인거다.


토요일 오후 경부터는 재활이 없다. 다만, 아버지의 하반신은 온전하지 않기에 4시간마다 배변 등의 확인하고 그에 맞는 조치를 해줘야 한다. 그건 밤이고 낮이고 실제로 새벽까지도 해당된다. 고로, 나는 그전까지는 불과 '손님'에 불과했던 거다. 표면적으로 아버지를 대했고 자주 온다는 핑계를 삼아 면회로서만 자식의 의무를 다했다고 치환했다. 식사부터, 양치 그리고 바람을 쐬고 싶다거나 심지어 몸을 돌리거나 자려고 이불 덮어주는 행위 자체도 아버지 옆에는 온전한 간병인이 필요했다. 무엇하나도 혼자 할 수 없는 아버지 옆엔 언제나 엄마가 있었다. 나는 대접받으려는 '손님'이었을 뿐, '주인'으로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매우 부끄러웠다. 모두 잠든 시각 나는 노트북을 꺼내 라운지에 앉아 외국논문을 읽으며 과제는 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결국 내 삶도 몇개의 정체성의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직장인, 그리고 배움을 갈구하는 자, 누군가의 연인, 그리고 자식 등 '나'란 사람은 수없는 정체성의 혼재다. 논문을 읽으며 과제를 하다가, 연신 핸드폰이 울려댄다. 아버지였다. 그 4시간의 순환이 시작된거다. 헐레벌떡 뛰어가 배변 등을 확인하고 조치를 해주어야 한다. 순간 소홀하게 생각하거나 또는 대충하겠다는 심사로 대할 경우, 반드시 사고는 발생한다. 그 사고는 새벽 모두가 잠든 시간 더 피곤하고 더 난이도가 높은 간병과 마주한다. 새벽6시 알람을 맞춰놓고 자다가 새벽5시에 눈을 떴다. 환자 옆 간병인 침대에서 잠을 뒤척이다가,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지금 하자" 아버지의 한마디에 또 몸을 벌떡 일으켜 배변 등을 확인한다. 일요일 오후 늦게 엄마가 돌아왔다. 나는 무덤덤한 척 했지만 몸은 굉장히 피곤해 당장이라도 병원을 떠나 발가벗고 침대에 대(大)자로 뻗고 싶었다. 교대를 하고 나와, 근처에서 커피를 한잔 사 원없이 들이켰다. 그러고 엄마에게 메세지를 하나 남겼다. "최대한 2주에 한번씩 교대를 하도록 해요."


"엄마도 사람이니, 그리고 그녀의 삶도 존재하니"


아무것도 방해를 받지 않는 온전한 내 자신만의 순간, 그리고 잠이 그녀에게 필요했다. 부끄럽지만, 너무나도 부끄럽지만 나는 드디어 '손님'에서 '주인'으로 진정으로 변했다. 아버지의 재활이 빨리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엄마의 삶이 정상범주로 돌아오고 그 속에서 개인의 집합체인 가족이 온전히 행복함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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