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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Jun 21. 2024

엄마의 수학여행

제주도로 떠난 엄마의 2박3일

277번째 에피소드이다.


엄마는 요새 본인의 삶이 없다. 부부란 어떠한 가치를 덧붙이더라도 대단한 존재이다. 자식들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와 누나는 짬날 때 아버지에게 안부를 묻는다. 나야 부산에 있기에 일주일 한번은 면회를 가지만 경기도 용인에 사는 누나는 더욱더 힘들다. 전화로 정기적으로 안부를 물어보는 것도 생각보단 쉽지 않다. 쏟아져 오는 일들이 아버지를 잠시 잠깐 내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우게 만든다. 부부로서 엄마는 아버지와 한몸이다. 24시간 재활과 간병을 함께 한다. 나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친밀감이다. 그런 엄마에게도 쉼이 필요했다. 몇달 전 엄마가 내게 연락이 와,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가는데 나한테 그기간 동안 간병을 대신 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대뜸 알았다고 했지만, 결국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회사 일들이 몰려오면서 엄마에게 은근슬쩍 간병인을 구해야겠다고 말했고 나는 중간 중간 면회를 갈 뿐이었다. 그 당시 엄마는 내게 굉장히 미안한 듯이,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꾹 눌러담은 듯이 '지금 이 상황에서 수학여행을 가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라 했다. 하지만 그녀도 한 사람의 인간이고 욕망이 있고 추억을 쌓고 싶은 존재이다.


수학여행 전날 저녁부터, 엄마는 집에서 분주하다. 오랜만에 내가 혼자 지키고 있던 우리 가족의 집이 분주한 모양새를 취한다. 제주도를 한 평생 태어나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우리 엄마는 김해공항 국내선 탑승과정을 상세히 물어보았다. 그러고 간소하게 가방에 약품이나 화장품을 챙기면서 보안절차에 걸리냐고 물었다. 내가 보조배터리도 챙겨주었다. 캐리어를 끌고 가냐고 하니깐, 옷 몇벌만 가방에 챙겨 메고 가겠다고 한다. 논쟁의 중심에 선 건 운동화였다. 엄마가 평소에 신던 운동화는 질이 잘 들어 편했으나, 수학여행에 신고 가기엔 엄마 스스로가 느끼기엔 볼품이 없었다. 반면에 새로 산 운동화는 깔끔했으나 질이 들지 않아 발이 아플 것 같다고 걱정했다. 그래서 우리는 결론을 다 같이 내렸다. 두개 모두 들고 간다. 여행은 여행이니깐, 새롭고 심미적인 느낌을 가미한 신발도 필요하니 두 켤레를 모두 챙겼다. 다만 다소 가방이 빵빵해지긴 했다. 그렇게 다 정리한 뒤 잠이 들고 새벽에 엄마가 나를 깨웠다. 택시를 좀 잡아달라는 것이다. 새벽5시반을 조금 넘은 시간 카카오택시앱으로 시작점과 도착점을 정확히 찍어 힘겨운 버튼을 누르고 다시 침대로 쓰러졌다. 잠을 깨어보니 내 카카오톡으로 잘 도착했다는 메세지가 떴다. 엄마가 김해공항 국내선타는 곳에 내려 학급을 만난 듯 했다.


사실 2박3일 동안 엄마가 어떤 수학여행 코스로 다녔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자식된 도리로 할 수 있었던 건 모처럼 휴가이니 용돈을 보내주는 것 밖에 없다. 그 사이 병문안을 갔다 엄마에게 용돈을 얼마줬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삼십만원이요 했다가 굉장히 핀잔을 들었다. "그거 가지고 되냐?" 나는 서둘러 둘러댔지만 아버지가 엄마에게 받고 있는 고마움에 비하면 그 가치가 터무니 없이 적었음에는 틀림없다. 엄마는 간혹 카톡으로 아버지의 안부를 물어왔다. 내가 답변을 살짝이라도 늦게라면 당장 전화가 와서 즉각적인 대답을 들어야 안심하고 다시 수학여행으로 흠뻑 빠져들었다. 나는 그녀를 보면서 가끔씩 감상에 빠지곤 한다. 내 엄마이기 이전에 굉장히 건강한 정신을 가진 여성이다. 내가 존경할 만큼의 존재이다. 그런 그녀에게 2박3일 간의 휴식이 우리 가족이 함께 견뎌내야 하는 끝을 알 수 없는 아버지의 재활과 간병 속에서 큰 힘이 되었길 바란다. 내가 최근 부부란 무엇일까, 결혼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우리 부모님을 보고 답을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있을지라도 함께 이겨내고 가족을 스스로 지켜나가는 친구이자 삶의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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