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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Sep 17. 2024

또 한번의 욱 성질 : 영 케어러 카페

내 인생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욱 성질'들이 삶의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281번째 에피소드이다.


나를 대표하는 단어는 '욱 성질'이다. 보기에 순하게 생겼는데 한번 돌면 그 몰입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이걸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는 저돌성과 실천력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 발동은 쉽지 않다. 인생을 곱씹어도 몇번 없었다. 첫번째 욱 성질은 '교육기회 불평등'이었고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다. 두번째 욱 성질은 '정치 참여'였고 그에 합당한 성과를 내었다. 그 이후에는 그저 충실한 직장인으로, 그리고 쉼없이 사회문제를 찾고 공부하는 연구자의 길을 동시에 평화롭게 걸었다. 그리고 또 한번 그놈의 '욱 성질'이 나를 찾아오고 있다. 난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난 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저돌적으로 달려갈 수 밖에 없을 거다.


내가 가장 애정하는 미국드라마인 '웨스트윙'에서 이런 장면이 나온다. 사형선고가 얼마 남지 않은 누군가를 여러 경로를 통해 제드 바틀렛에게 접촉이 온다. 사형을 집행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었고, 대통령은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지만, 꺼림직함에 고뇌에 빠진다. 자신의 고향에서 온 신부님이 대통령 집무실에 도착해 제드에게 한 이야기를 내놓는다. "하느님께 독실히 기도하는 한 이가 있었다. 하루는 동네에 폭우가 내려 모두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남자는 하느님이 자기를 구해준다고 믿고 계속 기도를 올렸다. 계속 경고 방송이 울리며 주민들의 대피를 독려했지만 남자는 말을 듣지 않았다. 잠시 후 이웃이 보트를 타고 창문을 두르리며 같이 가자고 했다. 남자는 하느님이 구해줄테니 안간다고 했다. 또 잠시 후 헬기에서 밧줄이 내려와 구급대원은 잡으라고 했다. 남자는 하느님이 구해줄테니 안간다고 했다. 결국 남자는 익사했다. 곧 하느님을 만나서 남자는 억울한 듯 왜 저를 구해주시지 않았나요 라며 하느님께 물었다. 그러자 하느님이 말했다. 난 너에게 경고 방송을 보내줬고, 보트 탄 이웃을 보냈고, 헬기로 구급대원을 보냈는데 너는 여기서 뭐하고 있냐" 이 이야기를 하면서 신부님은 대통령에게 자기에게 여러 경로를 통해 온 접촉들을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라고 했다. 웨스트윙에서는 결국 그 고뇌 속에서 사형집행은 진행되면서 에피소드는 끝난다. 신부님이 에피소드를 말하며 "왓더헬유~"할 때 정말 왜 빠져 나오지 않고 거기 있었냐는 답답한 듯한 억양이 기억 속에 생생하다.


얼마 전, 영 케어러의 소식을 두 사람에게 접하게 되었다. 먼저 한 친구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2년여전 교통사고로 척추가 손상되어 하반신 마비가 왔고 그 언니가 직장을 그만두고 전담 간병인 역할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어린 나이에 하반신 마비가 온 친구도 안타깝지만, 자신의 동생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전담 간병인을 하면서 재활을 돕고 간병을 돕는다는 것도 쉽지 않은 결정이다. 하지만 가족이기에 할 수 있는 결정이고 그 결정 이후 그의 삶은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 특별한 노하우도 없을 것이며, 고민토로, 그리고 향후 사회로의 재진출에 대한 막막함 속에 있을 것이다. 또 한 친구는 내가 가깝게 여기는 친구인데 어머님이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어 잘 다니고 있던 직장에 무급휴가를 쓰면서 간병을 지속하고 있는 소식이이었다. 어머님이 간병인을 극도로 경계하고 견디질 못하시기에 본인이 직접 똥오줌을 다 갈고 하루에 1,2시간 남짓 쉼 밖에 없어서 벌써 버티기가 힘들어 스스로 너무 두렵다는 이야기에 나 역시 눈물이 핑 돌았다. 가정이 어렸을 적부터 헤쳐되어 혼자 스스로 모든 것을 견딘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소식이 더 마음이 아팠다. 그에게 희망이 있어야 한다. 결국 '희망'이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희망, 사회 그리고 공동체가 나를 버리지 않았다는 작은 안도감, 다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유지 그것이 그들에게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또 한번 내 '욱 성질'이 발동하고 있다.


카페부터 개설하면 좋겠다. 아무것도 아닌 카페겠지만 그 속에서 나 역시 '영 케어러'로서 그들에게 대변자의 역할로의 공감대, 그리고 노하우, 그리고 고민토로, 사회로의 재진출의 정보의 공유장이 되도록 해야 겠다. 더 나아가서는 간병인들도 영 케어러가 가지는 니즈를 정확한 반영할 수 있는 '수요자 위주의 서비스 연계'가 될 수 있다면 유의미한 커뮤니티로서 순기능에 집중한 형태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내가 삶을 통해 바라본 내 욱 성질은 아마도 해낼 가능성이 높다. 이미 이걸 피할 생각은 전혀 없다. 혹시나 이러한 일들을 함께 할 의사가 있거나 그런 분들이 있다면 메일을 통해서나, 댓글을 통해서 남겨주시면 함께 동료시민으로 만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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