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첫 국가자격증 취득은 '요양보호사'로 시작
우리 엄마는 항상 도전보단 인내와 버티기가 익숙했다. 해체된 가정을 지켜야 했기에 그 누구보다 강했다. 난 그래서 누누이 말했지만 엄마에게 미안한 것이 많다. 그런 엄마가 몇년 전 암 판정을 받은 후 변했다. 수술을 잘 되어서 완치판정을 앞두고었지만 이미 엄마는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했다. 시대가 다 그러했듯이 못한 공부부터 시작했고, 전혀 하지 못할 것 같았던 운전면허증을 수차례 낙방 후 땄다. 운전연수를 너무나 무서워해서 덜덜 떨면서 몇달을 해 겨우겨우 차를 끌고 집 앞 마트를 갈 수 있게 되었다. 중학교 졸업장 취득을 위해 시작한 공부는 벌써 4년째다. 올해만 지나면 검정고시가 아닌 정식 고등학교 졸업장을 취득할 수 있게 된다. 엄마 졸업식은 그 누구보다 내가 꼭 가고 싶은 행사다. 꼭 그녀에게 "정말로, 수고하셨어요."하면서 꽃다발을 안겨주고 싶다. 그런 엄마에게 또 한번의 도전기가 시작되었다. 아버지가 신경종양 수술을 하시면서 재활을 꽤 오랜 시간 해야 했기에 간병인으로서, 엄마는 요양보호사란 국가자격증을 취득해야만 했다. 최근 한국은 복지제도의 개선으로 '가족돌봄'이란 개념을 수년전부터 확대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환자를 잘 이해하고 그 누구보다 환자 친화적으로 간병인을 고용한다는 자체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배우자 또는 자녀가 국가에서 요구하는 최소 기준인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하면 '가족돌봄'으로 인식하고 요양센터 등을 통해 우회적 방식으로 지원을 한다. 은퇴후 생계 수입과 시니어 일자리를 연결시킨 사례로, 현재 한국의 가족돌봄 인구는 최소 10만명으로 추산한다. 시장은 이러한 틈새시장에 반응하기 시작했고 지역 및 동네 단위의 비즈니스 형태였던 요양센터를 뛰어넘은 스타트업 형태의 '케어링'서비스가 출범하면서 시니어 시장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엄마는 아버지 간병을 하면서 틈틈히 유튜브로 공부해왔다. 문제은행 식으로 수차례 유사한 문제를 반복하고 개념과 원리를 이해해나갔다. 내가 한번은 노트북으로 좀 더 편하게 영상을 볼 수 있게 세팅을 하려고 했으나 노트북 On/Off가 익숙하지 않았던 엄마는 글씨는 작지만, 한손에 들어오는 핸드폰을 더 선호했다. 시험당일이 다가오자 크게는 두가지 문제가 생겼다. 요양보호사 시험을 치루는 곳이 꽤 외진 곳에 있어 카카오택시 등 어플로 택시를 잡을 줄 모르는 엄마가 쩔쩔맸고, PC와 마우스로 시험을 치기에 PC공포증이 있는 엄마는 벌써 걱정이 태산이었다. 하지만, 이 기술의 시대는 못하는게 없다. 택시는 내가 출발점부터, 도착점까지 정확하게 설정해 잡아주면 그만이었고 PC공포증은 블로그나 유튜브에 이미 '요양보호사' 시험치고 난 후기로 만들어진 컨텐츠로 A-Z까지 구현되어있었다. 자료들을 다 모아 엄마에게 보내주니 그나마 안도감을 되찾은 듯 하였다. 시험치기 전 내가 재빨리 "시험 잘 치세요! 첫번째 답이 무조건 답입니다 (바꾸지마시길)"이라 남겼으나 엄마에게 나중에 들어보니 그 카톡은 핸드폰을 내고 난 뒤라 보지 못했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ㅎ! 몇개 변경했던 문제가 있는데 다행히도 맞은 것 같다고 했다. 아고, 엄마가 내 카톡을 안 보길 정말 정말 잘한 일이다. 나는 서울에서 내려가는 길에 대전에 들러서 엄마에게 주려고 성심당 빵 세트를 샀다. 부산역에 내려 바로 병원에 도착했다. 엄마도 방금 도착해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나는 수고했다고 그녀를 안아줄 수 있었다. 내가 청소년 때, 방이 없어 엄마와 한 방을 써야했을 때 삶이 힘들어 새벽에 혼자 울고 있는 엄마를 보고도 용기가 없어서 애써 모른 척 했었던 그 시절의 뒤늦게나마 빚을 갚을 수 있었다. 진심으로, 두팔을 벌려 그녀가 수고했다고 말해주었다. 요양보호사 시험결과가 곧 나올텐데, 엄마의 첫 국가자격증 결과가 좋기를 누구보다 기대한다.
또한, 올해 또 하나 노력의 산물인 '엄마의 고교 졸업장'이 기대된다. 그때 또 한번 그녀를 안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