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치 않게 책상 정리를 하다가 오열한 일기장의 그 문장
1여년째 우리 집은 주인을 잃었다. 아버지의 재활과 함께 엄마는 붙박이가 되어 간병인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함께 살던 집은 나 혼자 남아있게 되었다. 원래 부모님 집에 얹혀살던 캥거루족이었던 내가 이 집을 지키는 그 무언가가 된 것이다. 현관문을 열면 내 방이 있고 욕실과 옷방이 연달아 붙어있었기에 내 동선은 지극히 제한적이었고 안방과 거실까지 향할 일은 잘 없었다. 또한 무던한 성격이었던 탓에 무려 1년 가까이 안방 아버지의 책상을 치울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아버지의 제자가 청소서비스업 기반 사회적기업을 하고 있었고 이참에 한번 방문 청소를 해주신다 연락이 왔다. 지극히 선의였고 나 역시 좋다고 했다. 엄마와 통화후 개인적으로 보기 낯부끄러운 것들을 치우려고 하나씩 하다보니 어느새 나는 안방 아버지 책상까지 와있었다.
우선 그 경위는 엄마가 자신이 뒤늦게 공부하는 것을 부끄러워 했기에 다 치워놓으라는 주문때문이었다. 난 그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럴 필요 있냐고 했지만 엄마는 그걸 항상 부끄러워했다. 남들이 교수 와이프인데 최종학력이 초졸이라는 것이 항상 피하고 싶은 컴플렉스였다. 벌써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고 어엿하게 대학입학 준비를 하는 엄마가 자랑스럽다. 여하튼, 엄마는 그걸 항상 부끄러워해서 교과서나 연습장 등을 치워놓으라고 했고 책상 위에 있던 그와 유사한 것들을 마구잡이로 치우고 있었다. 그러다 공책 하나가 글씨체가 달라 열어보다가 이것은 아버지의 일기란 것을 알았다. 최근까지 있는 걸로 봐서 병원에서 다 쓴 공책을 엄마가 집에 놔둔 듯 했다. 작년부터 이어진 수술, 그리고 재활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그 일기는 어느날은 시간순서로 해낸 일들의 일과로, 어느날은 감정선이 담긴 글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 일기장을 넘겨보다가 계속 울컥한 부분은 바로 "극복하자"였다.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 여러군데에서 나와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의사와의 면담 이후 조금 있으면 정상생활이 가능할 수 있겠다는 희망찬 문구들, 재활훈련에서 조금씩 진전이 보이자 다음주면 집에 갈 수 있겠다는 희망찬 문구들, 곳곳의 흔적들이 그렇게 묻어나와 생각이 많아지게 했다. "이러한 상황은 수없이 내 앞에 펼쳐졌던 것들에 비하면 별것 아니다. 극복할 수 있다."라고 쓰여진 문구에서 아버지가 얼마나 이 악물고 해내면서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극복하자란 한 문장이 반복적으로 쓰여져있는 일기장 속에서 자기 스스로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아버지가 보였다.
아버지는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이었다. 내 기억 뿐만 아니라 엄마가 아버지와 본인의 인생을 걸고 결혼해 함께 사는 이유다. 또한 주변 사람들도 동일하게 아버지를 평가한다. 부정적 기운으로 낙심하고 절망에 빠져 사는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성공보단 실패가 훨씬 더 익숙했지만 단 한번도 좌절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며 그 무언가를 만들었다. 아들로서 내가 본 아버지는 적어도 그랬다. 그런 아버지는 삶에서 매일 그 순간순간마다 위기 속에서 그렇게 일기 속에서 "극복하자", "할 수 있다."를 스스로 외치며 결국 하나씩 해내고 있었다. 그 역시 두렵고 불안감이 휩싸여 오지만 그 일기장 속에서 모두 털어낸 뒤 현실 밖에서는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일려고 노력했다. 눈물이 난 뒤 아버지가 그냥 한 명의 자연인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저 헤쳐나가야 할 것들이 많은 삶 앞에 마주한 한명의 인간이자, 자연인으로서 말이다. 이젠 내겐 더할 나위없이 친근해졌다.
내가 하나 확실할 수 있는 건, 아버지는 결국 일어날 것이다. 아마 그러고도 남은 양반이다. 이렇게 낙천적인 사람이 없기에 그러한 의지로 맞이하는 재활이 효과가 없다면 '신'은 정말 없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에 결국 모든 운은 아버지에게 온다는 확신이다. 아마 이번주에 또 면회를 가면 내게 두려움을 내치지지 않고 한동안 또 삶에 대한 잔소리를 해댈 것이다. 자연인으로서 그를 더 이해할 수 있기에 더는 그 잔소리가 싫지만은 않다. 그리고 한가지 제안해볼 건 노트북을 설치해서 화상회의 기능이나 문서작성을 할 수 있는 걸 지원해드리고 그걸 통해서 당분간 대외활동을 할 수 있게 할까 싶다. 그게 아버지의 낙천적인 성향을 밖으로 표출하면서 재활하는데 무언가 동기부여를 줄 수 있겠다 싶었다. 그 동기부여만큼 중요한게 없다.
즉, "병원 밖에서 여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