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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 폭발, 그 후 이차저차

대인배보단 소인배와 가까운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시간

by 커피 한잔의 여유

287번째 에피소드이다.


아버지의 사회 복귀 의지는 반가웠다. 병원비 등 고정지출이 있는 상황에서 가계 소득 보탬도 있겠으나, 더욱 반가운 건 사회와의 단절이 아닌 연결이었다. 연결하고자 하는 의지는 당장 물리적인 한계로 인해 온라인의 도움이 절실했다. 나도 그 제안을 수차례 드렸고 논리 구조에 동의했다. 다만, 실행단계에서 내가 너무 여유를 부렸거나 또는 게을렀다. 특히, 보다 내 관점에서 타임라인을 설정해놓고 가장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보려고 했으니 아버지의 타임라인에서는 느렸다. 여러차례 전화가 왔을 때, 내가 '가장 합리적인 대안을 찾고 있다.' 는 답변으로 무마할 뿐이었다. 러닝머신을 달리다가 아버지,엄마,누나에게 연달아 전화가 폭풍같이 몰려왔다. 숨을 헐떡거리며 전화를 받았는데 요며칠 째 그 이야기 뿐이라, 내가 폭발했다. "아니, 알겠다고. 알겠으니깐 똑같은 말을 도대체 몇번을 하는거냐고요."라고 화를 냈다. 누나가 나한테 "아빠의 마음을 무조건 이해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고 완곡한 어조로 말했지만, 내게는 순간 들리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쪼으는걸까'


내가 '가장 합리적인 대안을 찾는 시간'은 솔직히 말해서 타당했다. 일단 가장 중요한 변수는 부모님 모두 PC 환경에 굉장히 취약하기에 단순하게 조작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그마저도 도식화가 가능한 매뉴얼화였다. 그 타켓을 설정해 개발된 프로그램은 당장은 수익사업화할 수 없으니, 타켓시장은 없을 뿐더러 존재하지 않았다. 가장 가볍고 쉽게 할 수 있는 조작 프로그램을 테스트해보다가, 포기, 또 다른 것을 테스트해보다가, 포기 등 반복적 행위가 지속될 뿐이었다. 단, 이건 내 입장에서만 타당했다. 아버지의 타임라인에서는 조급증이 들게 하는 시간이었고 하루 빨리 환경적응을 해야 겠다는 의지를 반영하지 않은 타임라인이었다. 당장 내 방으로 와서 PC 준비를 해서 병원에 방문하겠다고 메세지로 연락했다. (폰포비아라, 전화보단 메세지를 선호한다.)


일단 70점짜리라고 말하고, 노트북 PC와 아버지가 필요한 프로그램의 사용법을 설명했다. 그리고 내가 고민했던 발생가능한 문제점을 읊었다. 그게 가장 고민이라고 말했고 그래서 일이 지체된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현장에서 가장 합리적인 대응책을 찾기 위해 토론을 했다. 물론 아버지는 내가 조작하는 노트북 PC 조작법과 그 프로그램 사용법에 대해서는 머리론 거시적인 알고리즘은 이해했지만, 미시적으로는 반복적이고 숙련된 훈련이 필요하고 그 훈련량 또한 엄청나다고 느낀 듯 했다. 90점 이상을 만드는 건 서로으 합의와 타협이란 걸 새삼스럽게 느낀 순간이다. 제공하는 자와 제공받는 자와의 적절한 타협선의 전제가 핵심논리인데 말이다. 방법론적으로 대인배보단 소인배에 가까운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 순간이었다. 아마, 아버지는 정말 극도의 고생을 할 것이다. PC환경에 대한 적응과 프로그램 조작법, 그리고 그를 통한 사회와의 복귀는 그리 녹록치 않을 것이며 나는 이것을 100점 짜리에 가까운 방법론을 제시하려고 하는 오만을 범했다. 결국 내가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80점에 가까운 방법론이고 그걸 90점 이상으로 올리는 건 오로지 아버지의 의지와 노력일 거다. 해내야만 하는 것,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것이 그걸 90점 이상으로 만들 수 있을 뿐이다.


한편으론, 시니어 디지털 리터러시는 굉장히 큰 이슈다. PC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65세 이상의 시니어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어있지 않다. 금융과 행정이 모두 PC와 스마트폰으로 내재화된 지금 이들에게 은퇴 후의 제2진로, 재취업 등이 강제되는 상황은 굉장히 험난한 도전이 예상된다. 단순 타자 실력을 넘어 프로그램을 간파하고 내게 가장 유리한 것을 찾고 선택하는 역량을 요구하는 시대다. 나 역시 최근 AI 기능을 소홀히 대한 죄?로 상당히 후발주자로 배우는데 애를 먹고 있는데, 하물며 이런 급속히 기술의 발전이 존재하는 환경 속 살고 있는 시니어들이 느끼는 불안감과 박탈감, 소외감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시니어들에 대한 은퇴 후 미래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역량, 더 직설적으로 생존역량을 키우는데 국가, 기업, 공동체 내 모든 자원들은 무엇이든 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직면한 초고령화 사회가 그저 불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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