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폭설 속 2박3일 간의 전주

오히려 심플했던 전주 한옥 마을 : 넓은 것보단 좁은 것이 낫다.

by 커피 한잔의 여유

288번째 에피소드이다.


연휴가 길었던 만큼 남길 에피소드 또한 많다. 내 모토이기도 한 '이타적 개인주의'는 최근에는 지역소멸, 그 가운데서 기회를 발견하는 로컬 비즈니스 모색에 치우쳐 있다. 낯부끄럽지만 '이타적'이란 말을 최근 구체화하는 키워드이고 '개인주의'란 말을 구체화하는 건 '오로지 혼자 떠나는 여행'이다. 베낭 하나 메고 버스카드 하나 들고 떠난다. 그렇게 시간 날때마다 강원도, 제주도 등을 쏘다녔다. 부산과 대구는 내 터전이기도 했으니 더 가볼 필요도 없긴 했다. 다만, 여러번 전라도를 가려고 했으나 그 시도를 번번히 무산되곤 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내 절친한 친구가 공동창업한 워킹홀리데이 스타트업이 제주도에서 전북 전주로 확장했다는 소식을 새해 초에 접하고 덜컥 설 연휴 기간에 가버린다고 해버렸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는 전주로 떠났다.


가끔씩 제주도를 가는 에피소드를 작성한 적이 있는데, 그것도 대부분 제주도 번화가나 애월 등 유명관광지가 아닌 친구가 하는 모슬포항의 '버킷'이란 워킹홀리데이 연계 게스트하우스 형태 캠프다. 기차 타고 가려다가 온통 빨갛게 표시된 ktx 어플을 보고 얼른 포기하고, 버스를 택했다. 뉴스에서 폭설이 내린다는 소식을 듣고, 부산 출신으로 그냥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렸다. 전주 터미널에 내리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억지로, 대중교통을 타고 '버킷 전주'에 도착했을 땐 이미 눈사람이 되어있었다. 저녁도 안 먹고 버스를 타고 와 짐을 풀고 네이버 지도에 의지한 채 밖으로 나갔을 땐, 정말 모두 문 닫는 상가와 마주할 뿐이었다. 하나 열려있는 가맥집에 들어가 혼술 하려다가, 이건 너무 처량하다 싶어 뱅뱅 주변을 돌다가 결국 앉은 곳은 치킨 집이다. 연휴기간이라 무려 그 큰 가게에 나 혼자 뿐이었다. 숙소에서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나는 그저 고립되었다.


부산에선 평생 볼까말까한 눈으로 온 사방이 가득 차 있었다. 어찌할까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점퍼에 달린 모자를 덮어쓰고 전주 한목 마을로 주섬주섬 걸어갔다. 몇가지는 꼭 먹고 돌아가야지 했던 건, 별다른 건 아니고 전주 콩나무 국밥, 전주 비빔밥, 전주 초코파이다. 그걸 다 섭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단 그걸 먹기 위해 옮기는 순간 순간 나는 눈사람에 가까워졌을 뿐이다. 저녁은 친구와 소주 한잔 하면서 전주로 온 계획을 듣는 시간이었다. 이무래도 제주도에서 자리를 잡는데 꽤 애를 먹었기에, 관리와 동시에 확장하는 것이 여간 부담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지론 중에 하나는 무조건 가끔씩 나와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과 교류하면서 '인사이트'를 얻고 '감'을 잃지 않으려고 발버둥친다는 것이다. '버킷'이 게스트하우스 확장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기회를 엿보고 포착한 건, 바로 지역소멸 등을 보완재로서 장기체류형 워킹홀리데이 비즈니스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형 워킹홀리데이 비자인 H-1 관광취업 비자이다. 이것을 취득할 수 있는 20~30대 외국인이 타깃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대만, 덴마크 등 25개국과 워킹홀리데이 협정을 체결했다. 18~30세의 청년이 신청할 수 있다. 이를 취득하면, 1년간 한국에서 체류하면서 주당 25시간 근무할 수 있다. 나 역시 지역은 결국 '글로컬'로 가지 않으면 도저히 해법이 없다고 믿기에 더욱더 로컬의 정체성을 찾고 그에 맞춘 내국인전략을 넘어 외국인전략으로 가야 내수경제의 치킨게임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단 생각이다. 그렇기에 '로컬'은 넓은 것보단 좁은 것이 낫다. 그래야 거기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작년 연말을 마치며 전남 여수시를 간 적이 있었다. 그곳도 마찬가지로 굉장히 오밀조밀 작다. 며칠만 있어도 똑같은 장소를 계속 돌고 또 걷다보면 또 보이고, 또 보이고 어느순간 정감어린 할머니집 마당마냥 여기저기 헤짚고 다니게 된다.


다시 떠나기 전, 눈이 조금 그친 전주는 전주 한옥 마을을 한바퀴 거니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밖에 쌓인 눈을 따뜻한 전통찻집 안에서 보며 마신 쌍화차는 어린애 입맛인 내게도 충분히 달콤했다. 버스를 타고 갈때보다 두시간 더 걸리고 도착했다. 폭설이 있어 오히려 심플했다. 로컬은 넓은 것보단 좁은 것이 더 낫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짜증 폭발, 그 후 이차저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