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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미수집가 Oct 02. 2021

[제주도한달살기] 우당탕탕 제주도 애월 26일 차(2)

돌아와 보니 봄은 우리 집 매화나무 가지에 걸려있었다.

제레미의 시그니처 라떼

그렇게 걷고 또 걸어서 사장님이 추천해주셨던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과 책을 읽었다. 지난번 함덕에 있을 때 만춘 서점에서 구입한 책이었다. 이 책을 여는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읽고서 쓰고, 듣고서 쓰고, 보고서 쓰고, 경험하고서 쓴다."

김민철 <모든 요일의 기록>


카피라이터가 직업인 작가의 기록에 대한 이야기이다. 2005년에 1쇄가 되어 2020년까지 17쇄나 한! 꾸준히 잘 팔리는 책의 이야기가 궁금했고, 글의 흡입력이 좋아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에 금방 스며들고 빠져들어 들었던 것 같다. 한참을 읽다가 한 문장에 눈을 떼지 못하고 뭔가 쿵- 하고 내려앉으면서, 올해의 내가 지나갔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었다. 일상에 매몰되지 않는 것, 의식의 끈을 놓지 않는 것, 항상 깨어있는 것, 내가 나의 주인이 되는 것, 부단한 성실성으로 순간 수간 임하는 것, 내일을 기대하지 않는 것, 오직 지금만을 살아가는 것, 오직 이곳만을 살아가는 것, 쉬이 좌절하지 않는 것, 희망을 가지지 않는 것, 피할 수 없다면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일상에서 도피하지 않는 것, 일상을 살아가는 것.

김민철 <모든 요일의 기록 p.86>


그렇다. 행복하든, 불행하든, 나는 지금에 있어야 했다. 어제에 있지도 않고, 내일에 있지도 않고, 오늘에 있어야 했다. 아닌 척했지만 나의 일상은 매몰되는 중이었고, 매몰되어 있었다. 균열의 처음을 따라가 보니, 그 시작은 뜻밖에도 나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나 스스로가 너무 애틋하고 불쌍했다. 가장 큰 원인은 회사였다. 미래도, 비전도, 발전도, 쥐 오줌만큼도 기대할 수 없는 회사에서 기계의 한 부품이되어 어찌저찌 굴러가는 나를 보는 것이 괴로웠다. 그 중에 가지고 있던 희망은 딱하나. 국가에서 청년들에게 목돈을 마련해주겠다고 만든 '내일 채움 공제'를 통해 통장에 차곡차곡 쌓이는 적금이었다. 처음엔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이것이 족쇄라는것을 알았고,(회사에서도 내가 이것 때문에 그만두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 같다. 몇 달 지나고 나니 그것 마저도 다 버리고 도망가야 할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럴듯한 이유로 회사 내에 사업체를 더 만들어 직원들을 찢어 놓는 이유는 야근수당을 주지 않기위함이며, 국가에서 나오는 각종 혜택을 받기 위함이었다. 연차나 월차도 없었고, 퇴근 후에 메신저로 야근을 강요받기도 했다. 그때 알아챘어야 했는데... 쏟아지는 일들을 감당해 내느라, 왜 이곳에 사람이 자주 바뀌었는지, 왜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을 뽑았는지를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다. '이번에 들어온 사람들은 그래도 꽤 버티네?, 이전 사람들은 3달도 못 채우고 나갔는데...' 이 말을 듣고 나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더 나아질것 같지 않은 환경에서 내일, 모레, 한 달, 1년, 2년을 나를 상상하니 나 스스로가 너무 가엽고 불쌍했다. 하필 스물아홉 살이었고, 이렇게 끝나야 하는 나의 20대가, 나의 청춘이 너무 불쌍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몸에 이상 징후가 생겼다. 가슴에 전에 없던 덩어리 같은 것이 잡히기 시작했고, 매일 밤 불안했다. 인터넷에 유방암 관련 검색을 하고, '아닐 거야, ' 하면서도 병원에서 유방암 판정을 받거나, 수술을 하는 상상을 했다. 진실을 아는 것이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나를 괴롭히고 있을 즈음, 때마침 보고 있던 드라마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이 같은 증상으로 유방암 검사를 받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 싶어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다행히 양성이었지만, 초음파를 보고 난 의사 선생님은 모양이 좋지 않다며 조직검사를 권했기 때문에 온전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또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 과정들이 너무 서글펐다.


나는 이런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고고하고, 특별한 이 청춘의 시간이 썩고 있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나뿐이었다. 그렇게 나의 청춘을 구해 낼 의무와 사명감을 가지고 사직서를 냈다. 


그 후, 몇 주 지나서 막연하게 꿈꾸던 제주도 한달살이를 하고 오겠다며,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며 의기양양하게 제주에 왔지만... 사실 도망과 회피에 가까운 모험이었다. 20대를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면서 어쩌면 청춘을 엉망진창으로 보낸 죄의 대가로 스스로를 귀양시킨 것 일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다시 취업준비를 하겠다며 걱정하는 엄마를 안심시키며 호언장담을 했지만, 사실 아무런 계획이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비밀이었다. 엄마는 나의 거짓말을 믿음이라는 애정으로 눈감아 주었다.

그렇게 온 제주도였는데! 한 달은 다 채워가는데, 이렇다 할 것이 없었다. 취업준비는 무슨, 포트폴리오는커녕, 공부하려고 신청해 둔 동영상 강의는 몇 주째 연장하며 미루고 있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제자리만 맴맴 돌고 있던 중, 이 문장을 만나고 또다시 엉엉 울어버렸다. 


돌이켜보면 어쩌면 나는 나를 불쌍히 여긴 게 아니라, 너무 아끼고 사랑한 나머지 스스로를 불쌍히 여겨 일상을 망가트리고 있는 중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이 글을 조금 더 일찍 접했더라면, 나는 현재의 나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정신의 지중해에서 오롯이 삶을 견디며 살 수 있었을까? 육체의 지중해를 열망하며 같은 선택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한 톨의 미련도 없었을 것 같다.



봄이 어디 있는지 짚신이 닳도록 돌아다녔건만, 

돌아와 보니 봄은 우리 집 매화나무 가지에 걸려있었다.

<중국의 시>


비로소 오늘에 산다는 것의 의미를 알았다. '지금에 충실한다'는 의미가 몸에 기록된 것 같았다. 지금 느낀 이 느낌을, 감정을, 가끔 잊는다 해도 또다시 찾아 돌아올 수 있을 것만 같다. 일상을 똑바로 쳐다보고, 기대도, 원망도, 타협도 하지 않고, 나의 인생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구원받은 기분. 나를 옭아매고 있는 것들에 자유로워진 기분이었다. 글과 교감한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더 이상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남은 일주일을 잘 흘러 보내고 싶다'는 어제 다짐했던 말을 이제 지킬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느곳에 있어도 내가 있는 지금이 제주도임을, 지중해임을, 기억하자.



오늘의 우당탕탕 제주도

호탕-> 한담 해안산책로(한담에서 곽지까지) -> 제레미 커피->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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