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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Jul 23. 2021

부담되지만 다시 듣고 싶은 그 말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그 말

하루에 듣고, 또 하는 그 수많은 말 중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말들이 있다. 기억에 남는다는 건 비일상성을 전제로 하고 있어, 날카롭고 무자비해 상처를 주는 말일 수도, 온기를 품고 마음의 떨림과 감동을 남긴 말일 수도 있다. 내게 오래 기억되는 말은 보통 후자다. 그중에서도 듣고 나서 ‘이 말은 꼭 누군가에게 해줘야겠다’ 싶은 말들이 있다. 내가 느낀 울림과 여운을 전해주고 싶기에, 또 말이 가진 긍정의 힘을 활용하고 싶기에 다시 듣고 싶은 그 말을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그런데 그렇게 쌓아둔 말을 활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내 것이 아니고, 내 생각에서 우러나온 말들이 아니기에 의도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차츰 잊혀진다. 직장동료나 선후배, 가족들과의 관계 속에 말의 힘과 위력을 수시로 체감하지만, 따뜻하고 배려 깊게 말하는 능력이 부족한 나는 여전히 불필요한 말을 하기도, 좀 더 세련되게 말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수시로 가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기운을 복돋는 말, 감동과 울림을 남긴 말을 기억하고 의도적으로 활용하려 한다. 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가 들었던 ‘더할 나위 없었다’는 감성적 표현까진 아니더라도, 마음이 전해지는 누군가의 말이 가슴 깊이 새겨진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조직과 개인의 생존이 목표임에 부득이 인생사 우여곡절이 휘감아 칠수 밖에 없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런 말을 듣는다면 울림이 더 크다.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그래서 서로를 좋아하거나 생각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 관계에서 경험하는 감동은 의외성까지 더하기 때문이다.      


회사는 친구를 만나 시시콜콜한 얘기, 연인을 만나 하루에 겪었던 일에 대한 소회를 나누고 위로받는 곳이 아니다. 계층적 관계를 지닌 사람들이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구조적으로 움직인다. 자기 몫을 해야 하고, 서로의 업무는 복잡하게 연관되어 있다. 태생적으로 불편과 갈등을 내재하고 있기에, 인성과 품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진실의 장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대위 부서장으로 근무하며 처음 소규모 조직을 이끌게 되었을 때, 대대장님이 함대 사령관(육군의 사단장)께 보고할 문서 작성을 주문했다. ‘이건 테스트야’라는 말을 넌지시 흘리며 2주간의 시간을 부여했다. 우리 부서가 생긴 이래 처음 하는 업무라 참고할 과거자료도 없었다. 2주간 밥 먹을 때, 씻을 때, 심지어 꿈에 나타날 정도로 몰입했다. 수십 번 고민하고 수정하느라 내용을 다 외워버린, 한땀 한땀 빚어낸 네 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조심스레 내밀었다. 찬찬히 살펴보던 대대장님이 말씀하셨다.  


‘이대로 보고하자’ 그리고 덧 붙였다.


‘이제 너희 부서 일은 네가 알아서 하고, 결과만 보고해라’


그리고 나는 근무지를 떠날 때까지 즐겁게 일했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열심히, 더 고민했고, 대대장님은 그때마다 적절한 피드백을 주셨다. 그땐 내가 잘해서 그런 줄 알았지만, 시간이 지나 진짜 의미를 알게 되었다. 내게 무슨 특별한 능력이 있었을까? 그럴 리 없다. 지휘관은 내가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적절하게 피드백해줌으로써 열정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탁월한 윈윈 전략이다.


상급자의 입장에서는 열정적으로 일하도록 환경을 만들고 높은 업무 성과를 달성한다. 조직원들은 업무에 집중함으로써 자기 발전을 이루고, 자긍심을 갖게 된다. 그로써 조직은 발전한다. 그냥저냥 밀려오는 일들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조직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사실 이 방법은 상급자가 가장 편해지는 방법이기도 하다. 열성적으로 업무 하는 조직원들이 성과를 달성해 오고, 잘하니까 칭찬하고, 또 잘하고, 일이 술술 풀린다.


최근에 경험한 인상 깊은 말도 있다. 소령으로 부대에서 참모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 지휘관이 부재할 때 직무를 대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주일간 지휘관 직무를 대리하게 되었다. 지휘관은 부대를 비우면 불안하다. 나도 대위, 소령 지휘관을 해보며 느꼈던 감정이다. 내가 없으면 부대가 돌아갈까 싶고, 뭔가 미숙한 업무처리가 걱정된다. 경험이 많지 않은 후배가 내 의도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하거나, 업무의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할까 염려된다. 그런데 우리부대 지휘관께서 부대를 떠나며 말했다.


‘걱정이 하나도 안 된다. 잘 다녀올게’


평소에도 참모로서 책임감을 갖고 있지만, 그 말을 듣고 어깨가 한층 무거워졌다. 혹여 있을지 모를 작은 변수에 관심을 가지고, 지휘관이 불편하지 않도록 미리 확인하고 보고했다. 나를 믿어준다는 말, 걱정이 안 된다는 그 말이 나를 이끈다. 내적 동기를 끌어올려 하늘 높이 던져버린다. 즐거운 마음으로 집중하고 노력한다. 그렇게 선배의 현명한 말을 또 하나 마음속에 쌓아둔다.

      

사실 그렇다. 비슷한 기간, 비슷한 직책을 수행한 사람들 사이에 실력과 능력 차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서로 격려하며 기분 좋게 일하는 조직이, 아등바등 티격태격 일하는 곳보다 성과가 낮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긍정의 기운을 주거나, 힘이 되는 말을 해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잘 활용해보길 권한다. 누군가에게 오래 기억되는 멋진 말을 건넨다는 건, 그의 세계에 또 나의 세계에도 하나의 유익을 더한 것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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