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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Aug 18. 2021

막내의 서러움 이해하기

니들이 막내를 알아?

‘하디마 내꺼야! 으아 오빠가 내꺼 빼서가써어엉’     


야심한 밤, 너무 선명해 자던 아이가 내는 소리가 맞나 싶은, 날카로운 목소리가 방안을 울린다. 막내가 꿈속에서 오빠랑 혈투를 벌이고 있나 보다. 허공을 휘젓는 발차기가 성에 차지 않는지 허리를 튕기며 양발로 바람을 가르는 나래차기까지 이어진다.


‘아니야 꿈이야 찰리(막내의 별칭)야’  

   

아내의 달램에 다시 정적이 찾아온다. 늦은 밤까지 편히 잠들지 못하고 꿈에서도 긴장을 이어가는 막내가 안쓰럽다. 만 3년 가까이 살아온 내공을 담아 있는 힘껏 앙칼지게 내지르고 있지만 듬성듬성 새는 발음을 듣노라면 짠하면서도 입가에는 슬며시 웃음이 피어오른다.   


4살 막내는 6살 오빠와 8살 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출반선에 서보니, 이미 한참 앞서가는 두 주자가 멀찌감치 보인다. 가만히 누워 있을 때는 별 마찰이 없었지만, 발걸음을 떼고 움직임이 날래 질수록 갈등 요소는 늘어만 간다. 제한된 자원, 혼재된 소유, 힘의 불균형이 집안의 평온함은 깨뜨리고 살얼음판을 걷는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다.      


막내지만 언니 오빠가 하는 건 다 하고 싶다. 의욕이 넘치고 도전정신이 뛰어나다. 그러다 보니 알려주지 않아도 눈치코치껏 얼추 따라 한다. 먹는 것도 가리지 않는다. 매운 음식도 티 내지 않고 끝까지 다 먹고 나서야 물을 한 사발 들이켠다. 혼자 못 먹는 억울함이 혀가 느끼는 통증을 압도하기에 그럴 것이다.

말도 빨리 배운다. 어설픈 언니오빠 따라 키즈카페를 키즈파케라 한다던가 요구르트를 우유거트라 잘못 배우면서 넘치는 애교에 귀여움도 덧붙는다.      


첫째가 엄마아빠 눈치를 본다면, 막내는 엄마아빠에 언니오빠 눈치까지 봐야 하기에 일상이 피곤하다. 언니오빠랑은 해볼 만할 것도 같지만 아직 말과 힘이 달려 분을 삼킨다. 하루는 첫째가 싸우는 둘째와 막내를 보더니 나름 중재한답시고 둘이 가위바위보하라고 시킨다. 가위밖에 낼 줄 모르고 둘째는 둘째 치고(라임 무엇), 손가락도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려운 막내에게 나름 공정한 잣대라며 가위바위보를 시키는 첫째, 그리고 시키니까 뭐라도 해야 해 뭔가를 내밀기는 하는 막내, 내놓고 이긴 지 진지 몰라 멀뚱멀뚱 서로를 바라보는 둘째와 막내의 모습이 마치 누가 짜놓은 코미디 콩트같다.        


언니오빠가 하는 거라면 뭐든 따라 하고 싶은 욕구는 통증도 초월한다. 둘째가 가시에 찔려 피가 났다. 약 바르고 밴드를 붙이는데 막내가 물끄러미 보더니 갑자기 울먹인다. 그래도 오빠 아프다고 같이 우는 귀여운 동생인 줄 알았는데 이어지는 말이 아주 상큼하다.


‘나도 가시에 찔리고 싶어’

 읭?


‘가시 찔려서 약 바르고 밴드 부치고 시퍼어어엉’


언니오빠가 하는 거면 아주 가시밭길도 버선발로 따라 나설 기세다. 나 빼고 하는 건 참을 수 없고, 절대 질 수 없다는 그 신념이 의식을 지배한다.          

언니는 보이지도 않네


막내는 원래 그런 건지,  행동이나 몸짓, 말투가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뭔가 어설프고 엉성한 행동을 보면 간질간질한 웃음이 절로 나고, 아기자기한 손과 발, 조그마한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고 돌아다니는 걸 보면 사르르 녹는다. 두 살, 네 살 밖에 차이 나지 않지만 첫째와 둘째가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게 막내의 귀여움은 압도적이다. 아내와 양가 할머니의 눈빛에도 비슷한 감정이 묻어나는 걸 보니 내가 유별난 것은 아닐 테다.


어려움에 처해있거나 무리에서 약한 이를 도와주고 싶은 감정인 걸까? 그런 느낌 있지 않는가. 올림픽에서 못하는 나라, 어려운 나라에서 원래 잘하는 나라를 만나 분투하는 모습을 보면 응원하는 마음. 그런 비슷한 느낌으로 상대적 열세에 놓여 고군분투하는 막내를 보면 응원하는 마음이 생긴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꼿꼿이 버텨내는 신흥국을 보는 것 같다. 도약과 약진을 기원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막내는 그런 존재다.      


막내의 서러움 중 으뜸은 중고나라 거주민이라는 점이다. 자기 몫으로 분류되었거나 주로 사용하고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은 언니오빠표 중고품이다. 연령 효용을 다한 물건들이 막내에게 물려지고, 그렇게 가지고 싶었던 것들이 자기 몫으로 남겨짐에 감사한 막내는 새것이 아니라는 불만을 가질 틈이 없다.      


아이들은 금방 자라고, 물건의 효용을 다하기 전에 연령 효용이 지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효용이 떨어지지 않은, 새것과 다름없는 아이들의 물건을 물려 사용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경제적이다.  

하지만 막내가 속으로 외칠 것 같다.


‘그건 니생각이고’


아이들은 5초 만에 구겨 버릴지언정, 색종이 하나도 잔 주름 없는 빳빳한 새것을 찾는다. 새것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것 같다.     


‘나도 새 거 갖고 싶다’는 오래 이어져 내려오는 막내들의 소망이다. 보편적 육남매 시절에는 막내로 가면 거의 폐품에 가까운 물건들이 흘러왔을 것이다. 당시 막내를 위해 무엇인가를 새로 산다는 것은 매우 낮은 효용을 감수하는 소비였다. 요즘은 세자녀면 대가족 반열에 드는 시대라 막내까지 흘러온 중고품도 대부분 새것과 다름없지만, 한편으론 막내에게도 귀한 대접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런 연유로 한번씩 막내를 위해 새 물건을 사주려 한다. 그렇더라도 큰 소비에서는 효용을 고려할 수박에 없기에, 막내의 중고나라 탈출은 아직 요원하다.     

 

귀여움을 듬뿍 받고, 도약과 약진을 기원하는 애틋한 응원을 받는다는 특장점을 장착하고 있지만,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아 성장기 내내 열세를 벗어나기 힘들 막내에게 마음이 쓰인다.     

 



막내가 ‘나는 막내여서 좋았다’까진 아니더라도 ‘막내도 나쁘진 않았다’는 기억을 가질 수 있게, ‘막내도 나쁘지 않았던’ 경험을 가진 아빠가 더 세심하게 보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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