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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Jun 14. 2021

죽은자의 목소리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단편 소설입니다. 




‘아빠 어디야?’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에 진철씨의 몸이 얼어붙었다. 죽은 아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날 새벽 1시 17분. 강남역 앞 왕복 12차선 도로 위. 간간이 서있는 가로등 불빛만이 아스팔트를 뒤덮은 어둠을 희미하게 걷어내고 있다. 적막이 흐르는 거리 한가운데, 택시가 1차선을 달린다. 얼핏 보기에도 속도가 빠르다. 택시기사의 시야에 맞은편 1차선 도로 위에 서있는 희끗한 물체가 들어온다. 중앙분리 화단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승용차가 한 대 서있는 것 같기도 하다. 승용차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질 무렵, 승용차는 갑자기 핸들을 왼쪽으로 꺾더니 노란 실선으로 그어진 중앙선을 넘어 유턴을 시도한다. 택시는 피할 겨를 없이 적막을 깨는 파열음과 함께 승용차와 충돌하고 만다. 택시는 강한 충돌 이후에도 관성에 의해 한참을 더 미끄러진 후 가까스로 멈춰 섰다. 붓으로 그린듯한 바퀴 자국이 도로 위에 춤추듯이 새겨졌다.   


 도로변 인도를 지나던 행인이 바퀴와 아스팔트의 마찰소리를 듣고 사고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이내 주머니를 더듬거려 전화기를 꺼내 119 버튼을 누른다. ‘여기 강남역 사거린데요, 큰 교통사고가 났어요. 앰뷸런스 빨리 와야 할 것 같은데요’ 신고 접수를 마친 남자가 담배를 하나 꺼내 물며 반쯤 꼬인 혀로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많이 다쳤겠는데..’ 몇 분이 지났을까. 멀리서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남자의 입에 물린 담배가 아직 꺼지지 않았으니 2분도 채 지나지 않았나 보다. 경광등을 번쩍이며 달려오는 구급차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자는 담배를 바닥에 털어내곤 가던 길을 재촉했다.  


 현장에 도착한 구급대원은 차에서 내려 상황을 살핀다. 처음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승용차 근처 아스팔트 위에 흰색 점퍼를 입고 누워있는 남자다. 그에게 다가가 몸을 흔들어보지만 의식이 없다. 승용차에 타고 있던 사람이겠지? 의식 없는 이에게 물어볼 수는 없으니 일단 들것에 실어 구급차에 태운 후 다시 주변을 둘러본다. 멀리 떨어진 택시 운전석 문에 기대어 한 남자가 주저앉아 있다. ‘택시 기사분이신가요?’ 고개를 떨궈 바닥을 바라보던 남자는 말없이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선생님 승객이 있었나요?’ 택시기사는 말이 없다. 사고의 충격으로 정상적인 대화가 어렵다. 구급대원은 택시기사를 구급차에 태우고, 혹시 택시 승객이나 승용차의 동승자가 없는지 살펴보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눈에 띄는 사람이 없어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어둠 속 중앙분리대 근처에 꾸물거리는 움직임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사람이 기대 서있다. 가뜩이나 어두운데 옷도 검은색이라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구급대원이 다가가 보니 외관상 큰 상처가 없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네 저는 안 다쳤어요’, ‘택시에 타고 계셨던 거예요?’

 ‘...’ 대답이 없자 구급대원은 우선 병원으로 안내한다. ‘일단 저희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시죠’


 사이렌을 울리며 병원 응급실 앞에 도착한 구급차에서, 의식 없는 사람을 태운 들것이 급히 내려져 응급실 안쪽으로 사라진다. 잠시 후 경찰차가 도착하고, 찬희와 승호가 내린다. 찬희는 구급대원에게 다가가 현장 상황에 대한 설명을 구했다. ‘사고 경위가 어떻게 되죠?’, ‘강남역 대로변에서 택시가 불법 유턴하던 승용차를 충격한 것 같더라고요. 다들 정신이 없어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의식 없는 환자와 택시기사, 검은 옷 입은 동승자 한분이 현장에 있어 세분을 병원으로 이송했어요’ 찬희는 의식 없는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기 응급실 안쪽으로 들어섰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침대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려는데 의사가 심폐소생술을 멈추고 지친 목소리로 말한다.


 ‘사망선고할게요’


 새벽 2시 41분. 찬희는 사망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그의 바지 주머니를 툭툭 쳐본다. 왼쪽, 오른쪽, 뒷 주머니까지 두드려 봤지만 부피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휴대전화도 지갑도 없다. 사망자의 소지품으로는 신원을 확인할 단서가 없다. 사고 관계자들에게 정보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같이 실려 온 사람들을 찾아간다. ‘선생님, 택시 기사분이신가요?’ 침대에 누워있는 택시기사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말을 하지 못한다. 의식은 있지만 큰 충격으로 말을 하지 못하고 있어 대화할 상황이 아니다.


 그때 찬희의 머리에 구급대원의 말이 번뜩 스친다. ‘아, 아까 구급대원이 동승자도 한 명 있다고 했었는데?’ 응급실을 둘러봤지만 교통사고로 실려 온 사람은 없어 보인다. 주변을 둘러보던 찬희는 당직 간호사에게 다가가 묻는다.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온 사람 모두 세명 아닌가요?’, ‘네 맞아요’, ‘한분은 어디 갔죠?  검은 옷 입고 있다고 한 것 같았는데’, ‘아 그분은 다친데 없다고 간단한 진료만 받고 집에 가셨어요’.


 찬희는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신원확인이 안 되네요. 차량 소유자 인적사항 조회 요청합니다. 192가 8871이요’ 56세 공진철. 승용차의 소유자는 50대인데, 사망자는 20대로 보였다. 소유자가 사망자에게 차량을 빌려준 건가? 휴대전화를 꺼내 사무실로부터 전달받은 소유자 공진철씨의 전화번호를 눌러본다. 이 새벽에, 그것도 경찰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 사람이 얼마나 놀랄까 싶지만, 사람이 죽었고 중요한 정보를 확인해야 하니 어쩔 수 없다고 애써 편하게 생각하려 한다. 물론 그래봤자 여전히 마음이 불편하다.  

 

 새벽 3시 2분. 길게 이어지던 통화 연결음이 멈추고 상대가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강남경찰서 황찬희 경사입니다. 192가 8871 차주 공진철씨 되시나요?’ ‘네 맞는데요?’ 잠이 덜 깬 목소리에도 당혹감이 스며있다. ‘선생님 차량이 사고가 났는데요’, ‘네?’, ‘차량을 누구에게 빌려주셨나요?’


 ‘....아들이요..’


 새벽 4시 17분. 병원에 도착한 부모는 응급실로 뛰어 들어가 아들을 확인하고는 이내 무너진다. 찬희는 몸을 추스르지 못하는 부모를 대기실로 안내해 시간을 드린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찬희가 대기실로 들어가 아버님과 대화를 청한다. ‘저희가 확인해야 할 게 좀 있는데, 잠시 서로 같이 가주시겠어요?’


 오전 8시 10분. 경찰서 조사실에 찬희와 진철 씨가 마주 앉았다. 아들에게 차를 언제, 왜  빌려줬는지, 아들이 운전면허는 가지고 있는지, 보험은 가입되어 있는지, 조서에 들어가야 할 내용을 하나씩 채워나간다. 그러던 중 공진철씨 휴대전화로 전화가 걸려왔다. 액정에 ‘사랑하는 아들’ 이 발신인으로 찍혀있다. 찬희는 놀라는 진철씨에게 일러준다.


 ‘아드님 주머니에 핸드폰이 없었어요. 누가 주워서 전화 거는 건가 본데요, 일단 받아보시죠’


진철씨가 핸드폰 액정에 뜬 녹색 전화기 모양에 검지 손가락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쓸어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아빠, 어디야? 집에 왜 아무도 없어?’      


죽은 줄 알았던 아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2부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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