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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Jun 18. 2021

죽은자의 목소리(2)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단편 소설입니다.


1편에 이어서. 죽은자의 목소리 (brunch.co.kr)




 길지 않은 말이었지만, 진철씨는 아들의 목소리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태욱이니??’

 ‘네 아빠 어디예요?’

 ‘어?? 너 지금 어디야??’


찬희는 소스라치게 놀라는 진철씨를 보고 물었다. ‘아들이라고요?’

 ‘네 아들인데요’

 ‘그럴리가요, 바꿔줘 보세요’

 ‘강남서 황찬희 경사입니다. 공태욱씨에요?’

 ‘네’

 ‘네?? 그럼 아버님 차량 타고 있던 사람은 누구예요?’

 ‘.. 경찰서에 가서 말씀드릴게요’


 전화가 끊어지고 찬희와 진철씨 모두 멀뚱 거리며 마주 보고 있다. 찬희가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아까 병원에서 어머님이랑 같이 시신 확인하고 아들 맞다고 하셨잖아요?’

 진철이 기억을 더듬어 본다. ‘태욱이가 맞았는데... 아..  머리에 붕대를 많이 감아놔 얼굴은 제대로 안 보였던 것 같아요.’

 ‘네? 얼굴도 안 보고 아들이라고 생각하셨다고요? 이해가 안 되는데요..’

 ‘아들에게 차를 빌려줬고 체격도 아들과 비슷하다 보니, 붕대를 안 걷어보고 그냥 아들이 맞다고 생각했나 봐요. 너무 경황이 없어서...’

 ‘뭐.. 어쨌든 다행이네요.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 돌아왔네요’

     

10시 50분. 찬희는 태욱과 마주 앉았다. ‘아버님 차량을 누구에게 빌려준 건가요?’

 ‘빌려준 게 아니라 같이 타고 있었어요. 진모라는 친구인데 운전해보고 싶다고 해 진모가 운전하고 제가 조수석에 앉아 있다가 사고가 났어요’

 ‘근데 병원에서 왜 그냥 갔어요?’

 ‘너무 놀라기도 하고, 제차도 아닌데 어떻게 할지 몰라 그냥 도망쳐 나왔어요. 죄송합니다.’ 일단 음주측정할게요. 찬희는 내민 음주측정기에 진모는 바람을 불어넣는다. 삐비빅. 혈중알콜농도는 0.00%로 찍혔다. 사고 당시 음주운전이었더라도 시간이 많이 지나 측정되지 않으리라. 이걸 노리고 현장을 이탈한 것은 아닌지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같은 시각 병원 영안실. 택시에서 황급히 내린 50대 부부가 영안실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제발..’ 입술 사이로 흐트러진 말들이 새어 나온다.  부부는 스테인리스로 된 영현보관대 위에 안치된 시신으로 떨어지지 않는 발검음을 옮겨간다.

 ‘제발..’ 병원 직원이 시신의 얼굴을 덮고 있던 천을 걷어내자 부부는 무너지듯 바닥에 주저앉고 만다.


 철곤은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 토요일 아침 운동하는 동호회에 가입해 활동한 지 꽤 되었다. 벌써 3세트째 경기를 마쳤다. 자리에 앉아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내고 있는데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린다. ‘네 고철곤 수사관입니다’

 ‘안녕하세요 수사관님, 함대 인사참모 박중령입니다. 41전대 병사가 휴가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부모님께 연락받았는데요’

 ‘그래요? 어느 병원이죠?’


 철곤이 병원에 도착해 진모 부모님을 만났다. ‘고철곤 수사관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위로를 드려야 될지.. 사고 경위는 확인하셨나요?’

 그새 초췌해진 진모 아버지가 대답한다. ‘경찰이 처음에 진모가 아니라 진모 친구가 사망한 줄 알았다고 하는데, 뭔가 이상해요. 진모가 남의 차를 운전할 애가 아닌데’

 ‘그래요?’ 철곤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곰곰이 생각하던 철곤이 입을 열었다.

 ‘아버님 일단 저랑 같이 경찰서에 가서 사건기록부터 확인해보시죠’       


 철곤과 진모 아버지가 병원 휴게실에 마주 앉았다. 가운데 놓은 테이블에는 경찰로부터 제공받은 현장 사진과 초기 사건 기록들이 놓여있다. 철곤이 사고 요도를 가리키며 얘기한다. ‘아버님, 여기 보세요. 택시는 직진했고, 승용차가 불법유턴을 하다 사고가 났어요. 유턴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하니까 승용차 앞부분이나 오른쪽 부분이 마주오는 택시의 앞부분과 충돌했겠죠.. 그럼 어느 쪽에 타고 있는 사람이 더 큰 충격을 받을까요? 아무래도 조수석에 있는 사람이 충돌 부위가 가까우니 더 큰 충격을 받을 거예요. 그런데 승용차에 타고 있던 두 사람 중 진모는 사망했고, 태욱이는 찰과상만 입었어요. 진모가 조수석에 타고 있었을 확률이 높죠’


진모 아버지의 눈이 커진다. ‘이 나쁜 자식이...’


‘아버님 이건 찬찬히 풀어나가면 됩니다. 사고 난 승용차 사진을 잠깐 확인했는데 조수석 쪽 앞 범퍼가 많이 파손돼 있었어요. 아까 담당 수사관을 따로 만나 얘기해보니, 경찰에서도 미심쩍어해 조사를 진행하던 중이었어요. 차량 감식으로 운전석과 조수석 주변에 묻은 혈액도 채취한다고 하고, 무엇보다도 운전석 에어백에 혈흔이 묻어 있대요. 그걸로 DNA 대조해보면 운전자가 누군지 나올 거 같아요.’


 ‘수사관님,, 우리 진모 억울하지 않게 해 주세요’

 ‘네 아버님, 그리고 제가 예전에 교통사고 처리하면서 얻은 경험인데, 큰 사고가 나면 안전벨트 자국이 몸에 남더라고요. 태욱이가 그렇게 큰 충격에도 경상만 입었다는 건 안전벨트를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단 거잖아요? 담당 수사관에게 다음번 태욱이 조사할 때 몸에 안전벨트 흔적이 남아있는지 확인해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당시에 입고 있던 옷도 제출받아 달라고 했고요. 안전벨트에 쓸리면 옷이 미세하게 타들어 가거든요. 그것까지 감식 의뢰해서 어느 쪽 어깨 부분 옷이 타들어 갔는지 확인하면 운전자가 누군지 가려질 것 같아요’

     

 사무실로 돌아온 철곤은 과장에게 사건과 관련된 보고를 하고 나서, 서류를 들춰 보고 있었다. 이 정도면 감식결과 나오기 전이라도 태욱이가 자신이 운전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담당 수사관인 희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까 뵀던 고철곤 수사관입니다. 형사님, 태욱이 추가 조사하셨나요?’

 ‘네 방금 끝났어요’

 ‘아, 그래요? 뭐라던가요? 이 정도면 인정할 법도 하지 않나 해서요’

 ‘끝까지 본인이 운전 안 했다고 그러네요. 사고현장 CCTV 빨리 확보해달라고 억울하다고 하는데, 얘가 절대 아니라고 정색을 하니 그런가 싶기도 해요. 일단 주변 CCTV 확인하고 있고, 차량 감식은 끝나서 국과수에 감정 의뢰해놓은 상태예요. 결과 나올 때까지 기다려봐야 할 것 같아요’


의아했다. 정황증거가 모두 태욱을 가리키고 있는데 왜 당당한 거지. 진짜 뭐가 있나? 생각에 잠겨있는데 휴대전화 벨이 울린다. 진모 아버님에게서 걸려온 전화다.

 

‘수사관님, 장례식장을 찾아온 진모 친구가 사진을 하나 보여줬는데요,, ’


(3부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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