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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Jul 14. 2021

첫째의 억울함 이해하기

올해로 8살이 된 메이(첫째의 별칭)가 요즘 부쩍 억울한 일이 많아졌다. 수시로 눈물을 글썽이며 ‘엄마아빠는 나한테만 뭐라 그래’를 되뇐다.      


8살, 6살, 4살의 세 아이가 평화롭게 지내는 시간은 신의 은총이 깃들어야 찾아온다. 가끔 그런 기적 같은 시간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그 외 대부분은 갈등과 긴장의 연속이다. 장난감 가지고 싸워, 먹을 걸로, 앉는 자리로, 하다못해 양치 순서, 엘리베이터 내리는 순서로 싸우며 창의적 싸움 소재를 개발해낸다.

      

그나마 암묵적 보호 대상으로 지정되어 싸움에서 열외 되었던 4살 막내도 이제 머리 좀 굵어졌다고 제법 덤벼드니, 싸움의 구조와 양상이 날로 다양해진다.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자면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저 아래 깊은 곳에서 울화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다, 말려도 타일러도 반 협박에도 끝을 보이지 않는 싸움에 결국 극단적인 분리조치와 모두 다 혼나는 비극으로 상황은 일단락된다.      


‘아이들 싸움에 초연해지자.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나름의 질서를 인정해주자. 싸우면서 큰다는 말을 믿어보자’ 수없이 다짐해도 소리치고 울고 미운 말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참 어렵다. 공부하는 것, 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다들 어렵겠지? 라는 생각에 위안을 가져보고, 우리 부모님은 어떻게 4남매를 키우셨을까? 새삼 존경심이 우러나온다.             


아이들을 보면서 내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려볼 때가 많다. 싸움에 관해 기억을 더듬어 보니, 2살 터울 누나랑 어지간히도 싸웠다. 초등학생 때가 절정기였고, 아마 중학교 들어가서까지 싸웠던 것 같다. 8살 때인가 누나 등을 발로 차서 ‘엄마한테 말할 거야’라는 누나의 말에 하루 종일 벌벌 떨며 엄마를 기다렸던 기억, 10살쯤엔 혼나다가 ‘엄마는 누나 말만 듣고, 내 말은 안 듣고’를 외치며 대성통곡했던 기억, 엄마가 여유가 없어 너희들 방을 하나씩 못 주니까 좁은 방에서 매일 싸우는 것 같다며 미안하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이제 그만 싸워야겠다 다짐했지만 그날 밤 또 싸우다가 혼났던 기억도 있다.

 

어지간히 싸웠지만 문제없이 컸고 지금은 사이좋게 잘 지낸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단편적인 내 기억만으로도 어릴 때 싸우다 어느 정도 성숙하면 사이좋게 잘 지낼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아이들을 재우러 방에 들어가면 아무 말 대잔치가 이어진다. 셋이 같이 말하다가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개중 하나 둘 내 말은 안 들어준다고 또 싸울 징조를 보이면 중재에 나선다. 한 명씩 얘기하자. 막내가 말한다. 주아가 나아테 성물줘떠. 어어 평지랑 인혀이랑 줘서 조아떠.(와 좋았겠다) 엄마 보고시퍼.(응 아빠도 엄마보고 싶어) 둘째 차례다. 아 나 더 놀고 시따. 내일 어러니집 가서 진짜 씽나게 노라야지.(그래 내일 신나게 놀려면 오늘 푹 쉬어야 해) 배고프다(그럴 리가 없어. 배가 터질 것 같아 보여) 첫째가 잇는다. 엄마랑 아빠는 왜 내 얘기는 안 들어줘?(어떤 얘기를?) 내가 하고 싶다는 건 다 하지 말라 하고 하기 싫은 건 하라 하고, 동생들은 잘해주고 나한테만 뭐라고 하고 혼내고..(울지 말고 천천히 얘기해봐)     


그렇게 시작된 억울한 얘기는 줄줄이 이어진다. 이런저런 말로 타이르기도, 설득도 해보지만 신통치 않다. 마음에 억울함이 가득 들어차 있다.      


엄마가 찰리(셋째의 별칭)가 넘어졌을 땐 달려와서 안아줬는데 내가 넘어졌을 때는 괜찮냐고 말로만 물어보고, 엄마는 나만 안 좋아하고..      


찰리는 4살이잖아. 제일 어리니까 보살핌이 많이 필요해. 메이(첫째의 별칭)가 네 살 땐 하루 종일 조잘조잘 말하는 걸 엄마아빠가 다 들어줬고, 말을 하도 많이 해서 밤이되면 목이 쉬어있었어. 집에 있는 장난감은 다 메이 차지였고. 그런데 동생들 봐봐. 엄마아빠가 말을 다 들어주지도 못하고, 언니오빠거라서 못 만지는 장난감도 많아. 메이 핸드폰은 또 얼마나 부럽겠어. 피아노 배우러 다니는 것도 얼마나 부러워하는데.      

첫째가 삐죽이며 말한다. 엄마아빠는 맨날 그 얘기해.


그게 맞는 말이라서 그런 거야. 메이가 4살 땐 넘어지면 엄마아빠가 둘 다 달려가서 안아주고 업어줬어. 메이는 무릎에 피나면 다음날까지 걷지를 못했거든.      


'아니 그래도 나는 동생들한테 양보만 해야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건 못하게 하고..'   숨을 깊게 들어마셨다가 소리 안 나게 천천히 내쉬고,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시 얘기를 이어간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첫째라서 이해력과 상황판단력이 가장 앞서지만, 그래 봤자 8살 꼬꼬마다. 동생들도 언니오빠에게 치이지만, 첫째도 외동이었다면 아직 부모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나이다. 더 어린 동생들에게 쏠리는 관심에 소외감을 느끼고 속상할 법도 하다.

      

사회생활하며 선후배, 동료, 주변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누구 하나 억울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대부분 마음속에 응어리를 안고 살아간다. 티를 내냐 안내냐의 차이일 뿐. 어른들도 그런데, 아이들이 얼마나 억울하고 속상한 일이 많을까. 첫째의 마음이 다치거나 닫히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이의 좋지 않은 모습은 대부분 부모의 모습에서 비롯된다. 속상한 일이 있어도 짜증 내거나 날카롭게 반응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 좋은 말과 따뜻한 표현, 부드러운 대화법, 배려하는 행동이 아이들에게 스며들도록 나를 가다듬는다.      




누구 들으라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나한테 하는 얘기다. (오해하지 마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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