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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녁설 Sep 14. 2020

달빛 뭐? 이름이 쫌 그래...

슬기로운 달빛 생활 (1)

코로나 19가 엄습한 대한민국

참 답답한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나름 우르르 몰려다니는 걸 좋아했고 수업시간 조차 사교의 장으로 생각하던 나에게 이런 시간과 공간이 한꺼번에 정지된 체 달력만 넘어가는 듯한 느낌은 견딜 수 없었다. 내 인생에 학창 시절 그것도 4학기 남은 대학생활이 이렇게 낭만이 없을 수는 없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그래서 다음 학기 차라리 집에서 놀고먹는 한이 있더라도 휴학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이러한 결정은 나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 사안에 대해 부모님과 상의하기 위해 집에 내려가는 것이 필요했다. 자취하던 방을 빼는 것부터 하나하나가 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수도권에서 고향으로 내려오는 것은 결코 큰 결정이 수반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어디에서도 내가 확진자가 아니라는 혹은 무증상자가 아닐 거라는 확신점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난 항상 지나치게 많은 생각 혹은 걱정을 하는 경향이 있고 생각하다가 제풀에 지쳐 행동에 이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생각만으로 끝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걸 해봐야지 싶은 생각으로 일단 내려왔다.

<쓸데없는 걱정이 많은 사람들 대부분이 공감하겠지만 생각했던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확률은 1%도 넘지 않는다. (이런 걱정을 '기우'라고 하던가) 이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안다고 하더라도 나 같은 사람들은 걱정이 생겨난다. 태생적으로 걱정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도 좋은 일인 것 같다.>


그렇게 내려온 후 여유롭고 한가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도중 우연히 아버지와 할머니 댁에 가게 되었다. 큰 산이 보이는 도로를 지나고 굴다리 옆에서 커브를 하려던 그때 눈에 확 띄는 게시물이 하나 보였다.


"달빛 탐사대 대원 모집"


아버지가 플래카드를 보며 말씀하셨다.

"아들 저거 해볼래?"

난 아무 생각 없이 "싫어ㅋ 이름이 별로야"라고 했다.

그러고는 별 말없이 지나갔다.


그리고 며칠 후 또 아버지가 말을 꺼냈다.

"아들 달빛 탐사대 찾아봤어?"

뭔가 저 프로젝트를 단단히 권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니 귀찮아"라고 답했다. 역시 별 말없이 지나갔지만 이상했다.

 

우리 아빠... 절대 그렇게 두 번씩 권할 사람이 아니었다. 어릴 때 공부를 하면 도와준 적은 있었지만 하라고 시키진 않았고 어떤 일이든 한번 하기 싫다 하면 두세 번 권유하며 사람을 귀찮게 할 정도로 섬세한 위인이 아니다. 그런 사람이 두 번씩이나 권하면 누구든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때도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가 며칠 후 다시 자취방에 올라왔는데 아버지에게 연락이 왔다. 짤막한 말과 함께 유튜브 영상 링크를 하나 보내주셨다.

'한 번 알아봐'... 달빛 탐사대 소개 영상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까지 자꾸 내게 말하는 건지... 귀찮음과 함께 궁금증도 생겼다. 마치 민트 초코를 처음 먹을 때와 비슷했다.(먹기 싫은데 자꾸 먹어보면 빠진다고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렇게 먹고 나니 민초단이 되어버렸다.)


마침 알바 중이었고 한가했기에 영상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보았다. 주욱 보다가 "내 인생에 가장 매력적인 도전"이라는 문구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도전" 음... 최근 도전을 해 본 적이 언제인지 까마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 안에 있던 무엇인가를 하고 싶고 해야겠다는 욕망이 달빛 탐사대라는 이름을 보고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직 진로조차 뭘 할지 모르는 그저 철학을 배우는 게 신기하고 좋았던 한 학생이 하고 싶은 게 있을 리가...

일단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자유 프로젝트?? 내가 하고 싶은 게... 음... 모르겠다 다른 거, 저건 저러한 이유로 안되고 이건 이러한 이유로 지원하기 싫었다. 그렇게 후보군으로 지원할 수 있는 프로젝트들 중 가장 하고 싶었던 프로젝트가 책방 프로젝트였다. 그나마 책은 꾸준히 보던 편이었기에... 그렇게 책방을 하겠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일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전공으로 단련된 리포트 빨리 쓰기 및 내용 많게 보이기 기술과 지역민으로서 생각하던 문경에 대한 것들 그리고 그동안의 여행 경험들은 프로젝트 계획에 막연하지만 많은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렇게 빠르게 마무리했다. 크게 걱정은 하지 않은 체... 수정도 하지 않은 체...

 해보고 붙으면 붙는 거고 떨어지면 뭐 학교나 다녀야지 뭐... 어쩌겠어~


그리고 며칠 후 연락이 왔다. 서류는 합격이니 간단한 면접을 한다는 내용을 담은 연락이었다.


면접 또한 크게 걱정되지도 않았다. 뭔가 굉장히 가볍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휴 떨어지면 떨어지는 거고 붙으면 붙는 거겠지'... 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면접을 진행해주신 분들과 편안하게 인사를 하며 면접을 시작했다. 프로젝트 계획 전반에 대해 그리고 장단점에 대해 등등 몇 가지를 물어보셨다. 그냥 무난하게 대답을 이어나갔다. 뭐 특별할 것도 대단한 것도 없이. 나는 그런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길 바랐다.


그리고 며칠 후 연락이 왔다.

"축하합니다. 달빛 탐사대 1차 모집에 합격하셨습니다!!"


문경에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던져진 존재로 살아왔고 문경을 떠났지만 이번만큼은 내 주체적인 의지로 문경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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