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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녁설 Sep 17. 2020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슬기로운 달빛 생활 (2)

달빛 탐사대에 합격한 후 도시생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먼저 부동산에 가서 살던 집을 내놓았다. 이번 연도 1월에 계약한 방... 이번 학기는 우리 집을 아지트로 재미있게 놀아보려고 했다. 우리 동기들끼리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한강도 가고 술도 자주 마시기로.. 4학년이 되기 전 마지막  청춘을 불태워 보자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코로나 사태... 연이은 개강 연기와 비대면 수업 확정.

 그렇게 사람의 온기로 가득 채우려고 했던 방은 스산함만 내려앉았다. 그래도 학교에 같이 사는 동생들이 많이 와주고 맛있는 것도 해 먹고 해서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생각은 들었다.

쿨타임 길었던 닭갈비, 특별한 날이면 불러서 소주 마시던 뭉티기


방을 내놓고 와서 방과 함께 내 마음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큰 쓰레기봉투를 사서 하나하나 담으며 그동안의 추억을 내 마음속 작은 상자에 차근차근 담아 두었다. 처음 술을 마시다 필름이 끊긴 날, 타지살이에 지쳐 갑작스레 집에 내려가 자퇴를 고민하던 날. 겨울밤 서울에서 같이 술 마시다 차가 끊겨 밤새 이야기하던 기억들이 아른거리며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보니 못 본 지 오래된 내 추억을 아름답게 반짝이도록 만들어 준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연락들을 이어나갔다. 거의 일주일 정도를 매일 같이 사람들을 만났다. 내가 내려간다고 해서 와준 사람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물론 너무 먼 곳에서 오는 친구들은 온다는 데도 말렸다. 당시 8.15 광복절 집회 이후 코로나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던 시기였으니...

  

마음 정리와 짐 정리 둘 다 성급하지 않게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그냥 뭐 다른 감정은 없었다. 어쨌든 군대는 가야 하니 이별할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기가 조금 당겨진 것뿐이지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가 진정 내려가는 게 맞을까 생각도 많이 했다. 꼭 인생에서 기존의 삶을 벗어나는 도전을 해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도전을 해서 리스크를 떠 앉는 거보다 현재의 무난한 삶의 가치를 소중히 하는 사람들도 많다. 또한 굳이 무난하고 좋은 생활을 나 스스로 이렇게 깰 이유도 없었다. 학교에 있으면 서울에도 쉽게 갈 수 있고 사람 만나기도 쉽고 등.. 이러한 의문들을 끊임없이 가진 체 8/23일 일요일 아빠 차에 짐과 내 몸 그리고 희망과 절망이 반쯤 섞인 미묘한 감정을 가진 체 문경에 내려왔다.


그다음 날 설렘을 갖고 ot장소에 갔다. 아마도 내가 가장 첫 번째 온 것 같았다. 진행팀들의 이야기가 오고 가는 사이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시간이 정말 흐르지 않았다. 현지인들은 생활 패턴 속 가던 곳만 가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 지역에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해선 외부인보다 어색하기 마련이다. 20여 년 간을 '집-학교(유치원)-학원'의 3박자가 골고루 갖춰진 패턴에 익숙하다 보니 우리 동네 밖은 전혀 모르는 곳이었다. (달빛 탐사대의 첫 모임 장소는 살고 있는 동네와는 좀 동떨어진 곳이다.) 익숙할 것이라 생각하던 공간을 미지의 타자로 만나는 경험은 쉬이 이해될 수 없는 경험이다. 갑자기 멀미가 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에 나가서 통화를 했다. 통화 상대는 친한 형이었다. 속칭 S라고 하겠다. S형은 굉장히 편한 형이다. 나이가 나보다 3살 많지만 전혀 거리낌 없이 서로 농담도 하고 진지할 땐 또 진지하게 대화하는 그리고 언제든 둘이 술 먹으면 얘기를 끊임없이 할 수 있는 그런 관계라고 볼 수 있다. 그 형에게 문경 내려오니 이런저런 게 불편하다며 얘기를 나누었다. 버스 배차 표에 쓰인 넓은 배차 간격이 별로라는 것부터 오는 길에 정말 풀 밖에 없다는 것 등 실은 크게 개의치 않는 것들이지만 얘기들로 투정을 부리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다 결국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할 시간이 되었고 아무렇지 않은 듯 자리에 앉았다. 대표님이 프로젝트에 대해 그리고 각 프로젝트에 참가한 참가자들에 대한 얘기를 주욱 늘어놓으셨다. 사실 별생각 없이 들었다.

 

그렇게 행사가 끝나고 난 후 참가자들끼리 얘기를 할 만한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졌다. 얘기가 주어졌을 때 어색한 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어 먼저 말을 계속하여 걸었다. 하고 있는 프로젝트 얘기라든가, 달빛 탐사대 어떻게 알게 되었냐 등의 얘기를 진행해갔다. 난 달빛 탐사대 자체에 참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신청을 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달랐다. 약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달빛 탐사대를 신청했다고 표현하면 맞을까? 나에게 달빛 탐사대는 밧줄을 타고 올라가면 도달하면 있는 무엇인가였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달빛 탐사대는 다른 목적을 위한 밧줄일 뿐이었다.


 뭔가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구축해 나가고 이뤄나가고 있을 때 나는 과연 무엇을 하며 살았나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구고 뭘 하고 싶은지를 망각했다. 어려서 그렇니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니 등의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아니 그냥 나는 내가 기분 나쁘면 마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 그 어떤 위로도 듣지 않는 고집불통이다. 그냥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나를 진지하게 대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달빛 탐사대가 되었으니 그걸로 끝났을 뿐인 그런 사람이었다.

그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나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

 난 과연 뭘 해야 할까? 이럴 거면 나 왜 왔지??

'나는 누구 여긴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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