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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녁설 Sep 22. 2020

달빛 불시착

슬기로운 달빛 생활 #3

 이리저리 복잡한 생각을 가진 체 잠에 들었다. 그리곤 얼마 안 가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너무 더웠다. 냉장고 앞으로 가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금방 더워지곤 했다. 그래서  에어컨을 틀고 잠을 청하였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은 모든 걸 밀어내 주었다. 더위, 머릿속의 잡생각까지 말이다. 그렇게 그 바람은 나를 침대로 밀어주었다.

 그러나 너무도 열심히 모든 걸 밀어버린 나머지 시곗바늘도 같이 밀어 버렸다. 정신없이 자고 일어나니 8시...


달빛 탐사대 예비대원 과정 시작 날이었다.


코로나 19 기가ㄴ... (참 질린다 질려...) 코로나 19 때문에 활동하기 앞서 먼저 코로나 19 검사를 받아야 했다.

검사 예약시간은 아침 10시..

 넉넉하다면 넉넉하고 빠듯하다면 굉장히 빠듯한 시간이다. 그렇게 집에서 8시 반쯤 밥 먹고 씻고 나갈 채비를 하여 에어컨 앞에서 온몸에 열을 식힌 체 걸어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계획에 큰 문제는 없었다. 늘 안정적이고 확실하게 넉넉한 계획을 짜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일이 수월하게 이뤄지면 불길한 예감이 들 때가 있다.


'빰 빠라 밤바마밤밤~'


오전 9시 남짓한 시간 수상한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아들 빨래 좀 바깥에 널어줘" "응"

 원래 같으면 별생각 없이 하겠지만 오늘은 짜증이 치솟았다. 9시 반에 빨래를 널며 몸을 데운 체 10분~15분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가려면 아무래도 땀이 날 수밖에 없었다.(더위를 좀 심하게 타는 편이다.) 가뜩이나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이었다. 아직은 대원들을 만나는데 땀을 엄청나게 흘리며 더워 보이기는 싫었다. 그리고 며칠 간의 습한 날씨로 옷에 땀을 조금만 흘려도 금세 꿉꿉한 냄새가 나곤 했다.

 

에휴 그런데 어떡할까 싶었다. 어차피 누군가는 널어야 하는 것이고 엄마가 내 사정을 알고 날 골탕 먹이기 위해 한 일도 아니니 그냥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엄마야 말로 약 20년을 출근 준비하시며 집안일을 도맡아 해오셨는데 내가 땀 흘리는 게 싫다는 이유로 화내는 것이 너무 같잖다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도 아침마다 밥하랴 빨래 있으면 빨래하랴 집에 삼부자 챙기느라 땀 마를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을 나름대로 정리한 후 그냥 땀 흘려도 제발 냄새만 나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으로 가장 잘 마른 듯한 옷을 입고 빨래를 널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머리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을 닦아내며 도착했다. 더워서 빨리 안으로 들어가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싶었다. 그런데 어림도 없었다. 코로나 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검사하러 온 사람들은 안에서 대기하지도 못하고 밖에서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밖에서 대기하라니 ㅎㅎ 진짜 죽을 맛이었다. 이미 땀샘은 폭발해서 땀이 나고 있지 햇볕은 뜨겁지 공기는 습하고 무겁지.. 뭐 하나 마음에도 들지 않는 상황과 날씨였다. 다들 그늘에 들어갔지만 솔직히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 밖에 있으면 어떻게 시원할까..


심지어 어제 만난 사람들 다 간단하게 인사해서 서먹서먹하게 눈치만 볼뿐 이야기할 거리도 할 기미도 없었다.

차라리 이어폰이라도 끼고 노래라도 듣고 싶었지만 남들 눈치 보느라 그러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검사시간이 다가올수록 다들 긴장을 풀기 위함인지 입이 풀리기 시작했다. "혹시 코로나 검사 어떤지 아세요?" "이거 완전 독감 검사라는데 저 이거 엄청 하기 싫어요 아프고 무섭고" "코랑 입에 면봉 같은 거 쑤셔 넣는데 정말 찝찝해요"... 각자의 경험에서 우러난 다양한 말들이 귀를 스쳤다. 하지만 난 그저 공감하지 못한 체 듣고 있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이들이 말한 경험을 한 번도 겪어본 적 없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잔병치레 없이 그저 무난하게 살아온 나는 이러한 류의 검사가 처음이었다. 감염되기 전에 예방접종을 맞았으면 모르겠다만... 초등학교 때 친형이 유행하던 신종플루에 걸려 왔을 때도 환절기에 온 가족이 감기에 걸려 골골대던 때에도 혼자서 차가운 물 마시며 창문 열어놓고 잠을 청하던 나였다. 그래서 그냥 공감하며 듣기보다는 대답을 하며 흘려들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코 속에 면봉을 넣는 느낌을 생각하니 생각보다 꽤 나쁠 것 같다고 생각은 했다.

 

 그렇게 몇 분 후 검사 시간이 되었고 검사실로 들어갔다. 생각해보면 참 웃픈 경험이다. 검사실에 들어갔는데 에어컨이 정말 빵빵하게 틀어져 있었다. 아마도 검사복을 껴입은 의사 선생님을 위한 거겠지..?

 아무튼 나에게는 크나큰 호재였다. 더운 바깥에서 잠시나마 피서온 것 같았다. 들어간 지 몇 초 동안은 너무 좋았다. 그런데 검사를 피해 갈 순 없었다. 면봉 길이를 처음 봤을 때 저게 뭔가 싶었다. 저걸 콧속에 집어넣는다고...?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하 10만 원이나 내고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콧속에 집어넣을 때는 그래도 코가 간질간질한 느낌 이외에는 별로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목구멍에 넣을 때 진짜 생과사를 오가는 느낌이었다. 안 그래도 평소에 건조한 목에 면봉을 극한으로 밀어 넣는데 눈물과 기침 가래가 동시에 나왔다. 와 이건 진짜 쉽지 않았다. 목구멍에 집어넣으면 자동반사로 기침이 새어 나왔고 기침이 나오면 다시 면봉을 뺐다가 집어넣는 과정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포기하셨던 건지 아니면 검사가 완료된 건지(아마 후자겠지) 끝났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렇게 그냥 나는 검사실에서 눈물을 닦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씩씩하게 나왔다. 눈물이 나온 티를 내기 싫었고 오버하기도 싫었다. 그러나 새어 나온 눈물의 흔적을 모두 지울 수는 없었나 보다. 나오자마자 누군가

 "현수 씨 울었어?"

라고 물어보았다.

그때 그냥 나도 아무런 생각 없이 

"검사가 너무 감동적이네요"

라고 말했던 것 같다. 조만간 복무를 하러 가야 하는데 약 4개월 후에 이걸 또 할 생각을 하니 억장이 무너졌다.(요즘 군대 들어가면 다 검사합니다.)

그리고 앞선 검사받은 사람들이 있는 대기장소를 찾아 헤맸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순간적으로 별 생각을 다했다. "어 나 어떡하지??", "다들 어디로 간 거지?" 등등의 진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이게 이상할 수도 있는데 뭔가 나 혼자 불안정한 공간에 있다는 생각이 있으면 걱정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성격이다.) 그런데 이러한 걱정도 잠시 검사실 옆 빈 천막이었던 곳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소리가 들리는 곳의 천막으로 들어갔다. 그 천막 안에는 이미 검사를 받은 분들이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이 장면에서 나는 적지 않은 안도감을 느끼며 대화에 참여하였다. 처음 검사받아보는데 검사받기 싫어서라도 절대 걸리지 말아야겠다는 내 다짐을 표하는 등의 말로 대화를 진행해갔다. 이렇게 잠시 대화를 나누다 보니 다음 장소로 가야 하는 시간이 되었고 다음으로 가야 할 장소는 차 타고 5분 거리쯤 위치한 오피스 건물이었다. 그렇게 차를 얻어 타고 오피스 건물을 방문했다. 뭐 그냥 그냥 아무 느낌 없는 오피스 공간이었다. 특별한 느낌 없었다. 다른 오피스를 많이 본 적 없어서 별 감흥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멍청하게 앉아 있었다. 나는 검사를 빨리 끝내고 온 편이기에 다른 사람들이 오피스에 오기까지 꽤나 시간이 필요했다. 긴 시간을 계속 멍청하게 앉아 있기도 너무 답답했다. 그래서 그냥 이 사무실에서 보이는 풍경들 그리고 사무실 내부 그냥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사진 찍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영상도 찍기 시작했다. 그냥 뭐라도 하고 싶었다. 가만히 앉아 있긴 싫은 공간?? 뭐라도 해야 될 거 같은 느낌을 물씬 풍기는 공간이었다.

 

뭐 그러다가 사람들이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모여서 본격적인 달빛 탐사대에 대한 소개가 시작되었다. 물론 말은 소개긴 하지만 어제 오티 때 했던 얘기와 비슷한 것 같았다. 설명을 듣고 난 후 본격적으로 밥 먹을 준비를 했다. 그때 또 차를 어떻게 얻어 타고 가야 할지 얘기가 진행되었다.


그렇게 거기서 충청도에서 온 한 형님과 우연히 차를 같이 타고 가게 되었다.


처음 그 형을 보았을 때는 뭔가 굉장한 포스가 느껴졌다. 180 정도의 신장에 작지 않은 체구를 가지고 있었도 눈도 크고 부리부리 했다. 그런데 말을 할수록 괜찮은 사람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대화를 하다 보면 이 사람이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지, 대화를 즐기고 있는지 아니면 하고 싶어 하는지가 대충 감이 오는데 이 형님은 나와의 대화를 존중해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대화하는 내내 은은하게 풍겼다.

그렇게 우리는 식사도 같이하고 커피를 마시는 곳에서도 꽤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흘러가는 대화들이라 기억에 남는 것은 잘 없고 이 형님의 짤막한 유머가 기억에 남는다. 이 친구는 2 땡이고 저는 3 땡이예요. (내 나이는 22살이고 이 형님의 나이는 33살이었다. 솔직히 진짜 아무런 감흥 없을 정도로 노잼이었지만 그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고 지금 말하면 확실하게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드립이었다고 선 그을 것이다.)


 아무튼 그 형님은 갑작스럽게 달라진 환경 속에서 갈피를 못 잡던 나에게 가장 먼저 내 친구가 되어 준 사람이었다.


그렇게 목적지를 잃고 정처 없이 떠돌던 내가 달빛에 일단 불시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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