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요즘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 사이에서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삶이 허무하게 느껴지고,
삶에 매달리면 죽음이 두렵습니다.
그래서 늘 불안합니다.
어떻게 해야 ‘지금’을 사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요?”
대답) 그 질문이 바로 깨달음의 문입니다.
불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지금, 여기.”
《금강경》에서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
→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
지나간 마음도, 지금의 마음도, 아직 오지 않은 마음도 잡을 수 없다.
이 말은 단순한 철학이 아닙니다.
인간의 고통이 어디서 비롯되는가를 꿰뚫은 통찰입니다.
우리는 늘 이미 지나간 일을 붙잡고,
아직 오지 않은 일을 걱정하느라
지금 이 순간을 놓치고 삽니다.
삶은 늘 지금에만 존재하는데,
마음은 언제나 지금을 떠나 있습니다.
그 떠남이 바로 괴로움의 근원입니다.
질문) “그럼 지금에 머문다는 건 어떻게 하는 건가요?”
머무는 게 아닙니다.
그저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전부입니다.
지금 이 호흡, 이 발자국, 이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짐을
판단 없이 보는 겁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염(念)이라 하고,
현대 심리학에서는 마인드풀니스라 부릅니다.
《법구경》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마음은 물결 같으니,
그 흐름을 따라가지 말고
그 흐름을 바라보라.
지금 이 순간을 산다는 건
그 흐름을 통제하거나 붙잡는 게 아니라,
그저 보는 눈을 여는 일입니다.
그 눈이 열리면,
과거는 후회가 아니라 감사로,
미래는 불안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바뀝니다.
죽음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큰 지혜도 이것입니다.
“언젠가 끝날 것이기에, 지금이 귀하다.”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삶을 깊이 이해하게 하는 스승입니다.
《대반열반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무상(無常)을 깨달은 자는
삶을 더 깊이 사랑한다.
무상은 허무가 아닙니다.
오히려 변함 속에 존재하는 살아 있음의 찬란함을 보게 합니다.
꽃이 시들기에 그 향기가 귀하고,
인생이 짧기에 매 순간이 선물인 것입니다.
“그래도 마음이 자꾸 과거로 갑니다.
후회가 많고, 잃은 것이 떠오릅니다.”
그럴 땐 ‘후회를 끊어내야지’라고 애쓰지 마세요.
그 후회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수행입니다.
불교에서는 마음을 고치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마음의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보라 합니다.
《금강경》의 구절처럼,
“應無所住而生其心(응무소주이생기심)”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즉, 그 어떤 감정도 억누르지 말고,
그 감정이 흘러가는 걸 조용히 지켜보세요.
그 순간 마음은 시간의 포로가 아니라,
지금의 주인이 됩니다.
심리학에서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합니다.
사람은 현재에 있을 때만 행복하다고.
과거에 머물면 우울이,
미래로 달려가면 불안이 찾아옵니다.
행복은 언제나 지금에서만 자랍니다.
하루 중 5분이라도,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보세요.
지금 나는 숨 쉬고 있다.
지금 나는 살아 있다.
이 단순한 인식이
삶을 기적처럼 바꿉니다.
왜냐하면, 그 한순간이야말로
부처님이 말한 깨달음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질문) “그럼 죽음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죽음 앞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삶을 지금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죽음도 지금으로 받아들입니다.
죽음이 오면, 그 또한 하나의 변화일 뿐입니다.
《유마경》은 말합니다.
죽음과 삶은 두 이름이지만,
그 본성은 한 가지 길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건
죽음을 무시한다는 게 아닙니다.
삶과 죽음을 둘로 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바다의 파도가 일어날 때를 삶이라 부르고,
그 파도가 잠들 때를 죽음이라 부를 뿐,
바다는 여전히 바다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의 본래 마음도 그렇습니다.
이제 이렇게 다짐해 보세요.
나는 과거에 머물지 않겠다.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겠다.
지금 이 숨결 속에서 완전하다.
그 다짐이 이루어지는 순간,
삶은 더 이상 이어지는 시간이 아니라
깨어 있는 순간들의 연속이 됩니다.
그게 바로 부처님이 말씀하신 열반의 시작입니다.
마지막으로, 부처님의 말씀 한 구절을 드립니다.
“今日已過, 命亦隨減, 如少水魚, 斯有何樂.”
“금일이과, 명역수감, 여소수어, 사유하락.”
《법구경》
오늘 하루가 이미 지나가니, 생명도 그만큼 줄어든다.
적은 물속의 물고기처럼, 어찌 한가히 즐기랴.
이 말은 절망이 아니라 깨어남의 경책입니다.
삶은 짧지만,
그 짧음 속에서 깨어 있는 자만이
참된 평화를 얻습니다.
이제 당신에게 죽음은 공포가 아니라
삶을 빛내는 거울입니다.
그 거울에 비친 지금을 바라보세요.
그 순간, 당신은 이미 부처님의 자리 —
지금, 여기 에 도달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