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아랍 7.
흩어진 자들의 기억

문명의 충돌과 국가의 운명-디아스포라

by 이안

소크라테스와 레비스트로스의 대화로 살펴보는 유대인의 디아스포라와 민족 형성의 구조


등 장 인 물


소크라테스 —존재와 공동체의 의미를 탐구하는 고대 철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
신화와 구조를 통해 인류의 상상체계를 분석하는 현대 인류학자


장소


지중해를 바라보는 어느 고대 항구 도시. 바람에 휘날리는 배들이 떠다닌다.
두 사람은 바닷가 절벽 위에 나란히 서 있다.


소크라테스:
레비스트로스여, 우리가 지난 대화에서 살핀 바에 따르면,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는 오랜 기억의 구조 속에서 탄생했네.
그렇다면 이제 나는 자네에게 묻고 싶네.
유대 민족은 어떻게 그렇게 오랜 시간 ‘하나의 민족’으로 남을 수 있었는가?


레비스트로스:
그 핵심에는 하나의 단어가 있습니다.
디아스포라.
이는 단지 흩어진 공동체가 아니라,
흩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연결되어 있었던 기억의 네트워크를 의미하지요.


소크라테스:
디아스포라라...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이는 본토를 잃고 전 세계로 흩어진 사람들을 뜻하는데,
어떻게 그런 조건에서 하나의 민족으로 결속될 수 있었는가?


레비스트로스:
그것이 바로 ‘구조’의 힘입니다.
유대인은 땅이 아니라 율법, 기억, 교육, 언어 위에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탈무드의 토론 문화, 히브리어의 복원, 안식일의 반복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 속의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지요.


소크라테스:
허면, 민족이란 꼭 같은 장소에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기억의 구조 속에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인가?


레비스트로스:
정확하십니다, 선생님.
유대인은 로마의 추방 이후에도,
스페인, 폴란드, 바그다드, 예멘 등
전 세계에 흩어졌지만,
그들이 나누는 _구조화된 기억_은 같았습니다.
→ 출애굽기, 바빌론 유수,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등은
단지 과거가 아니라, 매년 되풀이되는 현재였지요.


소크라테스:
이것은 대단한 사유로군.
보통 민족이란 국경과 언어로 정의된다고 생각하는데,
자네 말대로라면 민족이란 구조화된 서사이고,
그 서사를 반복하는 의례가 곧 국경을 대신하는 것이로군.


레비스트로스:
그렇습니다.
유대인은 국가 없는 국민이었지만,
기억 속의 국가는 그 어떤 제국보다 더 끈질기게 지속되었습니다.
→ 그리고 현대 이스라엘 국가는
그 기억이 현실로 귀환한 사건이라 할 수 있지요.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이나 아랍 민족도
이런 방식의 ‘기억 구조’를 가질 수 있는가?


레비스트로스: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억을 구성할 시간’과 ‘서사를 반복할 제도’가 필요합니다.
디아스포라는 고통의 경험이지만,
그 고통을 _의미 있는 이야기_로 변환하는 능력이 민족을 만들지요.


팔레스타인 역시 디아스포라의 상태에 있지만,
그 기억은 아직 ‘구조’로 승화되지 못하고
단절된 감정의 파편으로 흩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소크라테스:
그러므로 진정한 민족이란,
단지 고통을 겪은 자가 아니라,
그 고통을 의미로 번역한 자로 이루어진 것이로군.


레비스트로스:
예, 선생님.
흩어짐은 곧 해체가 아닙니다.
해체된 것조차 구조화할 수 있는 언어와 반복, 그리고 신화가 있을 때,
그 민족은 땅 없이도 영토를, 권력 없이도 역사를 가질 수 있습니다.


맺음말


디아스포라는 단순한 흩어짐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억의 지속 실험실이며,
고통이 구조가 되는 통로입니다.


이스라엘의 탄생은 그 실험의 집합적 귀환이었고,
팔레스타인의 오늘은 그 기억을 구조화하지 못한 상처의 현재형입니다.


다음 질문은 여기에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은 과연 ‘자기 기억의 언어’를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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