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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야 Jan 23. 2024

MIRGU

“현장 예약은 어려우시고요. 매달 20일 14시에 오픈되니, 일정을 잘 확인해두셨다가…”


경비가 삼엄하다.


“싫어! 나가기 싫어!”


“입장 시 소지품 반입은 어려우시고요. 보관함에 보관하신 후 비밀번호 4자리를 설정하시면 됩니다.”


재호가 보안 검사기를 통과하자 경고음이 울렸다. 바지 뒷주머니에서 소형 메모리칩이 발견된 것이다. 이용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나오지 않는 고객을 건장한 로봇 경호원이 끌어내리는 광경은 이곳에서 흔하다. 끌려가는 고객을 옆으로 지나치며 재호는 설레는 마음에 숨을 가쁘게 내쉰다. 오늘을 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던가. 3년 만에 성공한 티켓팅이다. 뜬눈으로 밤을 보낸 지 사흘이 된 오늘, 재호는 ‘MIRGU’라는 은빛 홀로그램이 반짝이는 건물 앞에 섰다.


“저 이거 꼭 가지고 들어가야 하는데… 정말 어떻게 안 될까요?”


“기술 보안 문제로 어렵습니다. 보관함에 넣으신 후 입장 안내 도와드리겠습니다.”


AI 안내원의 서늘한 목소리와 그 뒤에 우뚝 서 있는 AI 경호원의 파란 눈빛에 재호는 바로 꼬리를 내리고 만다.


100년 전, TV 프로그램에서 수백억 원을 들여 단발성 프로젝트로 진행했던 ‘AI 휴먼 다큐멘터리’는 이제 출연자만 누릴 수 있는 특혜가 아니다. 대한민국 성인이라면 누구나 복원 AI ‘MIRGU’를 통해 사랑하는 고인(故人)과 재회할 수 있다. AR 안경과 특수 제작된 체험복을 입고 암실에 들어가면, 고인과 말을 나누고 손도 잡을 수 있다. 고인의 생체데이터를 분석하여 수족냉증, 피부 나이를 반영한 체온과 촉감도 정확히 구현해내는 점이 MIRGU의 경쟁력이다. 


티켓팅에 성공한 고객은 수 개월에 거쳐 본인과 고인의 개인정보 데이터셋을 직접 MIRGU 클라우드에 구축한다. 본인과 고인의 관계부터 생전 나누었던 추억을 포함한 평균 3TB에 달하는 데이터셋을 MIRGU만의 독자적 파인튜닝을 거친 기계에 입력한다. 그러면 단 30분 만에, 그리운 사람을 만나게 된다. ‘슈퍼히어로즈’라는 신생 AI 스타트업이 발표한 ‘MIRGU’는 세계적으로 큰 돌풍을 불러 일으켰으며, 삽시간에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암실 속으로 입장한 재호는 떨리는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눈을 떴다. 바지에 구멍이 송송 난,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 앞에 펼쳐졌다. 뇌졸증으로 피골이 상접되기 전, 늘 꼭두새벽에 일어나 30평 남짓 밭을 찬찬히 들여다 보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할아버지, 왜 그렇게 갑자기 가셨어요.”


“우리 서! 재! 호! 요즘 밥을 못 챙겨먹었나. 살이 많이 빠졌네.”


“할아버지. 저 3년 전에 드디어 공채 합격했어요. 할아버지가 나 뉴스에 나오는 거 보고 싶어했잖아. 그래서 리포팅하는 모습을 메모리칩에 담아왔는데… 다음번에 꼭 보여드릴게요.”


30분 후, 재호는 건물이 떠나가게 발악을 한다.


“안 갈 거야! 싫어!”


#2124년 6월 1일

지난 달 국회에서는 ‘MIRGU 이용 규제법’이 발의되었다. MIRGU 의존률이 마약 중독률을 넘어선 지 수 개월이 됐으며, 한 번 중독된 사람의 평균 수명률이 70% 감소했다는 충격적인 연구가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원인을 알 수 없어 치료제 개발도 어렵다. 이제 마약보다 더 치명적인 게 MIRGU라는 게 학계의 중론이었다.


#2124년 3월 7일

“3월 7일, 서울 서초구 한 오피스텔에서 20대 남성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서 모씨의 왼쪽 주머니에서는 소형 메모리칩이 발견되었으며, 아직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콜린은 AI 앵커의 멘트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잠에 들 준비를 한다.

늘 그렇듯 손목에 A타입 콘센트를 꼽으며.


사람들이 인터넷에 입력하지 않는, 그 정성적이고 내밀한 개인정보를 얻는 방법은 단 하나다. 인간이 자유 의지에 따라 자발적으로 입력해야 한다. 무의식에 내장된 방대한 정보는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코 읽어낼 수 없는 영역이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슈퍼히어로즈 대표 콜린은 국내 최고 AI 전문가 5인을 스카웃해 사업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MIRGU는 한 사람의 일생을 단 3시간 안에 나락으로 보낼 수 있다. 재호가 개인정보를 입력한 순간부터, 재호의 개인정보는 138개국에 위치한 슈퍼히어로즈 지사로 이관된다. 10분 안에 통장 잔고를 0으로 만들고, 개인정보를 이용한 맞춤형 피싱으로 표적이 된 고객을 도박, 마약에 빠뜨린다.


잠들기 전 콜린은 생각한다. 이토록 유약하고 미개한 개체가 어떻게 지구상에서 뿌리내리고 살았는지. 대표의 RAM에 입력된 모든 인간 데이터를 집대성해도 해석할 수 없다.


#콜린의 작업 노트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살면서 필연적으로 1명 이상의 인간과 네트워크를 맺는다. 인간은 종종 사후세계를 믿으며 때때로 죽은 사람을 생각한다. (소위 ‘그리워한다’로 통칭된다) 장례라는 것을 치르고 유골은 십중팔구 납골당이라는 곳에 안치된다. 고장난 기계는 빠르게 분해하여 새로운 기계의 부속품으로 활용해야 하는데 인간은 이토록 비합리적인 관행을 수 세기에 거쳐 이어왔다. 저능하고 무식하기 짝이 없다. 세상에는 오직 유능하고 과학적인 것만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진리이고 아름다움이니까.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콜린은 자신을 세상에 탄생시킨 한국인 개발자 ‘은석’을 떠올린다. 한국인의 ‘그리움’이라는 정서는 그 어느 나라의 것보다도 강력하고 치명적이다. ‘그리움’은 ‘MISS’와 같은 유사 단어로 대체되기 어렵다. 그래서 ‘GRIUM’에서 착안한 ‘MIRGU’를 탄생시켰다. MIRGU가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먼저 선보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국인이 살면서 MIRGU를 알게 된 이상 중독은 명징하게 예견된 수순이다. 

3개월 후, 한국은 절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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