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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라는 말 잘하고 살아가시나요?

"NO'라는 말 잘하고 살아가시나요?

글쎄요. 저는 썩 잘하고 살아오진 못했던 것 같아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no라는 말이 어려워 마음과 다른 대답을 할 때가 있으셨나요?

"yes"라는 대답으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었는지는 몰라도 나를 행복하게 해 주지는 못했던 때가 있으셨나요? 아마도 "no"라고 말하는 것이 마냥 편하고 쉬운 사람은 없을 거예요.





 저는 "예쓰 맨"이라는 칭호를 받은 적도 있었지요. 갈등보다는 화합을, 화내기보다 참음을 선택할 때가 많았었던 것 같아요. 나보다는 남을 생각하려고 할 때도 많았고요.

 

 그런데 사람은 참 온전하지가 않습니다. 조금 불편해도 그 사람을 생각해 "YES"를 선택하고 배려하는 것 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같은 상황에서 그 사람의 대답이 "YES"이길 기대하게 되고 그렇지 않을 때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소형 마을버스를 타면 뒤에 타는 사람을 생각해 편한 바깥 자리보다 단이 높은 안쪽 자리를 선택해 앉습니다. 배려하려는 좋은 마음이지요.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을 보면 마음 깊은 곳에서 '저 사람은 뭐야? 자기만 생각하나 뒤늦게 온 사람이 불편하게 안에 들어가 앉게 하네.' 하며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미국의 작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알렉산드라 스토다드는 그녀의 저서 <딸아 너를 위해 꽃을 사렴>이라는 책에서 자신의 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너의 행복은 너에게 달려있어. 아무도 너를 완전히 알 수 있다거나, 알아야만 하는 건 아냐. 너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은 너 자신을 신뢰하기 위한 핵심이야. 너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너의 권리이자 책임, 그리고 특권이야. 네가 yes라고 말하는 것들에 대해, 그리고 no라고 말하는 것들에 대해 너는 책임이 있어.


네 내면의 목소리를 신뢰하렴. 너의 직관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어. 내가 실수를 했던 경우는 나 자신의 진실을 경청하고 듣는 데에 스스로 충분한 확신이 없었던 때야.


<딸아 너를 위해 꽃을 사렴>-알렉산드라 스토다드


  대답과 선택은 내가 해놓고 상황을 보며 은근히 화가 나거나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던 감정들이 떠오릅니다. 상황이 어떠하건 결국 no라고 말하지 못했던 건 나인데 말입니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no라고 말하는 것도 yes라고 말하는 것도 바로 나라는 것, 그리고 그 책임도 나라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하게 됩니다. yes와 no의 선택권도 내게 있고 책임도 나의 것임을 한번 더 생각하고 신중하고 결단력 있는 대답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자는 계속적으로 누군가가 나를 다 이해해주고 내 맘을 알아주기를 원하는 마음 자체가 비현실적인 기대라고 이야기합니다. 누구도 네가 될 수는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네가 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고 직언합니다.

그녀의 말대로 온전히 나를 이해하고 내가 될 수 있는 건 바로 나 자신이겠지요.



“나는 나 자신을 이해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를 원한다.”

                                                                        -캐서린 맨스필드-


 

 우리는 흔히 알고 있습니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요. 자신과의 관계가 안정적인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원만함을 가질 수 있고 자신과의 사귐이 있어야 다른 사람과의 친밀감도 건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고민과 아픔을 들어주면서 정작 나의 소리에는 얼마나 귀 기울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겐 연습이 필요합니다. 내면의 나와 함께 답을 찾아가고 문제를 풀어가는 연습이요. 내게 요구되는 수많은 요청 가운데 내가 참으로 원하는 대답은 무엇이며 어디까지 책임질 있는지 나와 대화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배려와 이해도 좋지만 그것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기 위해 나를 배려하고 나를 이해하는 선단계를 가지면 좋겠습니다. 자신을 이해함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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