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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되면 찾아오는 지병

마음속 아지랑이

추위나 더위와 싸우지 않고 오롯이 계절을 만끽하며 누릴 수 있는 봄이 되면 마음의 여유가 찾아온다.


태양의 가득함으로 만물이 소성하는 계절,

T.S. Eliot는 이 봄의 대표적인 달, 4월을 보고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가?


내게도 해마다 4월이 되면 찾아오는 지병이 있다.

가슴에서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마음이 간질간질하다.

마음이 간질간질할 때면 정확히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아련한 추억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봄꽃처럼 피어 올라 봄바람에 한들한들 마음을 간질이다 사라진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아련한 감정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면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말했던 시인의 시구를 떠올리곤 한다.


밝고 따뜻한 햇살 아래 때로는 꽃보다도 더 예쁜 새순이 순수한 빛깔로 자신을 드러낼 때면 사랑스러움과 경이로움에 미소 짓게 된다. 순백의 목련이 자태를 뽐내면 그 앞에서 한참을 서 동경의 눈빛을 보내다 간다. 길마다 노란 개나리가 손짓을 하면 개나리만큼 해맑은 미소를 흘리게 되고 봄바람 따라 벚꽃이 흩날릴 때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4월, 벅찬 감격이 차올라 감정의 사치가 일어난다.


달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마음을 간지럽히는 아지랑이가 필 때면 <메밀꽃 필 무렵>의 한 장면이 펼쳐지는 것도 갔다.

4월 봄꽃이 아닌 9월의 가을꽃이 눈앞에 펼쳐지는 건 아마도 이효석 작가의 표현이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 그런가 보다.


딸들은 가끔 어릴 때 들었던 자장가를 듣게 되거나 어릴 때 느꼈던 추억의 냄새를 맡으면 "아! 이 느낌 싫어. 마음이 이상해."라고 표현했었다. 아마도 그럴 때면 딸들의 마음속에도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나 보다. 아주 좋았던 때가 떠오르는데 딸들은 역설적으로 "이 느낌 싫어. 마음이 이상해."라고 표현한다. 아름다운 계절 4월을 보고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했던 시인의 시구를 떠올리게 되는 내 마음과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봄햇살, 봄바람, 봄 향기, 봄꽃

봄이 오면 추위와 더위와 싸우는 계절과 같이 싸우지 않고 계절과 화해의 시간이 찾아온다.

추위나 더위와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계절에 느끼지 못했던 여유가 찾아온다.


현실이 너무 치열하고 바쁘면 여행을 떠날 여유를 가질 수 없다. 추위와 싸우는 계절이 비껴가고 어느새 봄이 찾아와 온 세상을 행복으로 물들이면 마음이 여유를 타고 천방지축 과거로 여행을 다녀 오나보다. 순간이동을 하듯 순식간에 다녀와 재빠르게 눈치 채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이상하다.'라고 만 느끼게 발 빠르게 시간을 돌아 오나보다.


4월, 이 계절이 오면 나는 지병이 돋는다.

마음 한가운데서 간질간질 아지랑이가 핀다.

현실과 대항하지 않고 계절을 누리는 봄이 오면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다.

아련하게 하얀 메밀꽃 들판이 펼쳐지며 하늘하늘 흔들리는 것처럼 가슴에서 간질간질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지병을 앓고도, 가는 4월이 아쉽고 다시 올 4월을 기다리게 되는 건, 4월의 눈부신 계절만이 데려가 주는 여행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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