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carlett Jang Apr 06. 2024

선거에 진심인 유치원생

그녀만의 후보자 선출방법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안내문과 선거 공보가 우편으로 도착하였다.

남편과 정치색이 비슷하여 마음속으로는 내정자(?)가 있었지만 두툼한 봉투 속 안내책자들을 보며  남편이 꼼꼼히 공보를 읽어봐야 한다고 하나씩 펼쳐서 꺼내 읽기 시작하였다.


작년부터 조금씩 한글을 배워 한 단어씩 읽기 시작한 어린 딸도 이제는 어느새 더듬더듬 문장을 읽게 되었다.

그래서 아빠옆에 앉아서 총천연색의 다양한 책자들을 보면서 신기한 듯 딸도 한 자 한 자 글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이게 뭐냐는 질문에 얼마 전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본 회장선거처럼 투표를 하는 건데 그 후보들이 자신을 뽑아달라고 글을 써놓은 책들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자 좀 더 본격적으로 책을 둘러보던 딸이 불현듯 나에게 물었다.


" 엄마, 엄마는 누구 뽑을 거야? 정했어? "

" 음.. 엄마는 OO번을 뽑을 거야."

" 왜?"

딸의 당연한 질문에 똑 부러지는 답을 못하고 어떻게 쉽게 설명할지를 고민하는 나에게 딸이 먼저 말을 꺼냈다.


" 엄마. 나는 7번을 뽑을 거야."

자신은 아직 투표자격이 없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딸이기에 웃음이 났지만 우선 이유를 물어보았다.

" 너는 왜 7번을 뽑을 건데?"

" 왜냐고? 내가 일곱 살이니까. 당연히 7번을 뽑아야지. 엄마도 그러니 7번을 뽑아죠."

너무 황당한 답변에 한참을 웃다가 다시 물었다.

" 근데 7살이라는 이유만으로 7번을 뽑는 거야? 다른 이유도 있어야지. 좀 더 엄마를 설득해 봐."

그러자 딸은 당연한 걸 엄마가 아직도 모른다는 듯 호기롭게 책자를 바닥에 쭉 펼치며 나에게 말했다.

" 엄마. 자 봐봐. 여기 7번이 제일 바탕색이 이쁘잖아. 맞지? 그러니까 이 사람을 뽑아야 하는 거야."

너무나도 딸다운 답변에 나는 웃음을 참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는 지역구 외에 비례대표 투표도 있었기에 나는 안내문을 두 묶음으로 나눈 뒤 다시 물었다.

" 여기에서는 7번을 뽑으면, 다른 쪽에서는 몇 번을 뽑아야 할까?"

비례대표 후보들이 나온 안내문들을 여러 번 보던 딸은 쉽다는 듯 나에게 다시 조언을 해주었다.

" 엄마. 봐봐. 여기 9번을 뽑아야지. 왜냐고? 엄마 생일이 9월이잖아!"

신기하게도 다시 새로운 이유를 찾아낸 딸에게 나는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질문을 했다.

" 이번엔 그 이유 하나뿐이야? 다른 이유는 없어?"

" 그리고 잘 봐. 이 사람 성이 나랑 똑같아. 그래서 9번을 뽑아야 하는 거야."

" 아. 그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딸의 단호한 설명과 당찬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신기하게도 그날 재미로 이야기한 줄 알았던 딸은 매일매일 나에게 묻는다.

" 엄마. 누구 뽑을 거야? 정했어?"

" 아... 아니, 아직."


처음 이야기를 할 때 OO번을 뽑을 거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는지 내가 7번과 9번으로 정했다고 말할 때까지 매일매일 나에게 물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자신의 의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삐칠 것이 뻔해서 우선은 거짓말을 해두고 실상은 다른 투표를 하겠지만 아직은 어린 딸에게 선거후보에 대한 정치이념을 어떤 식으로 설명해야 할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언제 가는 우리 딸도 정말 타당한 이유로 자신의 의견과 일치하는 누군가에게 투표하는 날이 오겠지.


그렇지만 지금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아주 천천히 자랐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깜짝 놀라게 하는 유전자의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