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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Jun 10. 2024

지친 일상과 다시 꿈꾸는 연애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아무래도 빨리 연애를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이제는 남자를 사귀지 않으려고 한다고 이야기한 지 아직 세 달이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세상에는 ‘내가 또 이걸 하나 봐라’ 했다가도 다시 시도하게 되는 게 한 둘이 아니니까. 어쨌든 그다지 오래된 것도 아닌데 번복을 하게 되었다면 명확한 이유는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친구랑 클럽에 갔거든요. 오랜만에 좀 꾸미고 나갔는데, 진짜 난리 났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난리 났어요. 그래도 별로 흥이 안 났다니까요.’


남자와 여자가 헤어지는 스토리야 밤하늘의 별처럼 넘쳐 나겠지만, 이후 한동안 힘든 건 어느 경우에나 비슷하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


‘요즘 너무 무기력하다고 할까? 재활용 쓰레기 분리도 잘 안 해요. 운동을 해야지, 재활용 쓰레기 분리를 해야지, 세수를 해야지 하고 생각했던 것들을 자꾸 미루고 안 하게 되는 그런 거 있잖아요?’


나는 모름.


‘예전 같지 않은, 뭐랄까 그런 저를 발견하게 되는 게 너무 낯설어요. 결국 피부 트러블까지 생겼다니까요?’


세수는 피곤해도 해야 한다. 초등학교 때 배운 게 꽤 많지만 평생 꾸준히 그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건 밥 먹고 이 닦는 것과 아침저녁으로 세수하기 정도다. 그런데 예전 같지 않다니, 옛날에는 부지런했다는 거잖아? 몰랐었다.


‘그럼요. 진짜 빠릿빠릿했죠. 생각한 것은 바로 실천에 옮기고…’




그녀의 말로는 남자친구와 헤어진 직후를 기점으로 성격이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만사가 귀찮고 집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청소도 하지 않고, 설거지도 그대로 둔다. 물론 쓰레기도 치우지 않는다. 입었던 옷도 그대로 쌓아두고, 당연히 씻지도 않는다. 심지어는 거실에 실먼지가 돌아다녀도 치우지 않고 사막의 텀블위드 Tumbleweed를 보듯 쳐다보기만 했다. 그 광경이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 뿐, 지저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귀가 시 길거리에서 종이 박스나 병 같은 것들을 안 집어온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그랬다면 그녀의 집은 쓰레기로 가득 찼겠지. 비슷한 상황을 방송에서 몇 번 본 기억이 있다. 주인공은 결국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집 청소를 하게 되었는데, 그의 집에서는 1.2톤 트럭에 가득 찰 만큼의 쓰레기가 나왔다. 깨끗해진 집을 보며 좋아하던 주인공의 모습이 떠오른다. ‘공간이 넓어졌으니 다시 쓰레기를 채울 수 있겠어!’ 하는 듯한 표정.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그 정도일 리가 없잖아요?’


그 정도라면 나도 – 생각보다 비위가 약하기 때문에 – 점심을 같이 먹기는 힘들 것 같음. 어쨌든 그렇게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은 무기력한 상태라면 집에서는 뭘 하게 될까?


‘넷플릭스를 켜고 ‘히라만디’를 봐요. 혹시 봤어요? 인도의 타와이프 Tawa’if 라고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기생 같은 건데, 그녀들의 이야기예요. 우선 색감이 너무 화사해서 맘에 들어요. 게다가 레이디들도 너무 예쁘다니까요? 그걸 보다가 문득 거울을 봤는데 그녀들과 내가 너무 차이가 나서 놀랐지 뭐예요.’


얼굴엔 트러블도 난 상태였으니 더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차이를 느끼게 되었다면 간극을 줄이기 위해 세수나 화장을 하던가….


‘아뇨. 그냥 거울을 안 봐요. 이거는 좀, 그러니까 비빌 수 있는 수준이 아니잖아요. 뭔지 아시죠? 차이가 심하지 않아야 경쟁심에 기분이 나쁘거나 할 텐데… 그리고 이 드라마가 좀 특이한 게, 발리우드 스타일은 원래 좀 깨잖아요. 갑자기 노래를 하질 않나, 떼로 춤을 추질 않나.’


이 드라마는 춤을 추지 않는다는 건가?


‘추긴 춰요. 그런데 다른 영화들은 ‘뭐야 여기에서 춤 왜 춰?’ 한다면, 이 드라마는 ‘그래 여기서 춤추는 거 그럴듯해.’ 이런 느낌이랄까? 이야기하다 보니 내가 너무 이상한 사람 같네. 그런데 부인이 두 명이래, 남편이 두 명이래 이렇게 도파민을 터트리는데 어떻게 안 봐요? 누구는 두 명이나 있는데 나는…’


다시 우울해지는 것 같아서, 화제를 바꾸기 위해 요즘 재미있는 게 뭐가 있냐고 물어봤다.


‘그거 본 적 있어요? 요즘 릴스에 엄청 뜨더라고요. ‘마라탕후루’ 챌린지. ‘선배! 마라탕 사주세요! 선배! 혹시… 탕후루도 같…이…?’ 하면서 이렇게 춤을 추는 건데요.’


하면서 살짝 춤을 추는 그녀. 


클럽에서 인기가 있었던 이유가 춤이 아니었던 것만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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