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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rilamb Jul 14. 2024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나는 화가 별로 없는 편이다 


살면서 분노가 폭발하거나, 크게 싸우거나, 누군가를 죽도록 싫어해본 적도 별로 없다. 아마도 어렸을 때 주변에서 그런 모습을 거의 못 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부모님께서 싸우는 모습을 본 적도 없고, 크게 혼나 본 적도 없었으니까. 부모의 가르침에 반하는 일을 굳이 하는 성격도 아니다. 사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긴 했다. 어렸을 때는 북한이 밤사이 핵폭탄을 쏠까 봐 걱정을 좀 하긴 했지만,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그런 근심도 사라졌다. 설마 쏘겠냐는 대범함을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삶은 더욱 심심해졌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이 없는 건 또 아니어서, 오늘은 그런 상황을 한번 이야기해 볼까?


나는 엘리베이터에 탈 때 가능하면 뒤쪽 벽에 붙는 편이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등이 엘리베이터에 닿아있으면 안도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사람이 계속 밀려들어올 때 앞사람이 거리를 확인하지 않은 채 점점 뒷걸음질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럴 때 화가 난다. 두 손으로 등을 확 밀고 싶어 진다. 가끔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뒤쪽에서 갑자기 대각선으로 내 앞을 가로막으며 나아가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내가 주춤하게 되면 마찬가지로 분노가 치민다. 발로 등짝을 걷어차고 싶어 진다. 그러고 보니 본능적으로 모르는 사람이 가까이 있는 걸 싫어하는 편인 건가?


셔츠의 소매 부분에 단추가 두 개 있는데 나는 위쪽에 있는 단추를 늘 잠그는 편이다. 소매를 적당히 걷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위쪽 단추는 이상하게도 어디나 깍두기처럼 작고 두꺼운 것을 사용한다. 끼우는 구멍도 마찬가지로 더럽게 좁다. 그런 이유로 옷을 입은 상태에서 한 손으로 그것을 잠그는 게 너무 어렵다. 입기 전에 잠그는 걸 잊으면 – 그것 때문에 다시 벗기는 싫기 때문에 – 그 상태로 어떻게든 해보려 하는데, 이게 죽어도 안 될 때가 있다. 이때 화가 머리끝까지 난다. 세상의 두껍고 작은 단추는 모조리 불태우고 싶어 진다. 이런 단추를 사용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도록 국민청원을 올려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아침에 준비를 할 때, 머리가 잘 만져지고 있다가 갑자기 순간적으로 이상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게 나만 그런 건지 정말 궁금한데, 마치 스위치를 켜듯 – 딸깍 – 책장을 넘기듯 – 사삭 – 머리가 촌스러워진다. 그리고는 아무리 만져도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수습 불가능 상태에서 나가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분노한다. 머리를 싹 밀고 가발을 쓰고 싶어 진다. 대체 내 머리는 인류 탄생 이후 어떤 존재의 유전자 때문에 이렇게 묘한 메커니즘으로 건조되는 걸까? BGM으로 HAVOK의 Point of No Return 외에는 다른 곡을 쓸 수 없는 순간이다.


신문사 연예부 기자를 하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엄청나게 부럽다. 일주일 내내 아이돌이나 연예인의 콘서트를 감상하고, 그 기사를 쓰는 게 직업이다. 직업이라기보다는 꿀 아닌가? 물론 힘든 것도 있겠지만 그걸 듣고 싶지도 않은 게, 그것 조차도 엄청 부러운 고민일 것만 같아서이다. 그 친구를 보고 있으면 내 삶이 너무 초라하고 재미없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 친구의 인스타 때문에 순간적으로 화나는 경우가 꽤 있다. 내 방구석에서 뉴진스의 도쿄돔 팬클럽 중 하니가 푸른 산호초를 부르는 영상을 보며 행복해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하니를 직접 찍은 사진을 실시간으로 올리는 꼴을 보며 나는 분노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투다리에서 효민 사와(새로 나온 술인가 봄)를 마시며 티아라의 효민과 사진을 찍어 올리고 앉았는 그 친구. 효민의 기분은 생각도 안 하는 그놈, 열받는다.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눈에 벌레가 들어가도 화가 나고, 플러그를 콘센트에 감으로만 끼워 넣을 때 일분 이상 걸려도 열이 받는다. usb-A 혹은 B 타입이나 hdmi 단자를 끼울 때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무슨 생각들을 하면서 설계를 한 거야? 폰과 태블릿으로 전자책을 볼 때 마지막으로 읽던 곳이 제대로 싱크 되지 않아 읽은 곳을 다시 읽게 될 때 짜증이 솟구친다. 음악 랜덤플레이에서 이무진 노래가 나와서 건너뛰려는데, 터치가 제대로 안 먹을 때 분통 터진다…


써놓고 보니 뭔가 화가 많은 사람이었던 건가 싶기도 한데, 사실 쥐어 짜내서 저 정도라는 것이니 오해 마시길. 물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거나, 단추가 채워지거나, 집을 나서거나, 인스타를 종료시키면 바로 평정심을 찾으며 심심한 상태로 돌아가 버린 답니다.


일주일 내내 비가 온다 안 온다 흐린 날들만 계속되더니,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아침부터 마요르카의 풍경 사진처럼 화창하다. 이런 날씨엔 Stacey Ryan의 Fall In Love Alone 같은 곡이 잘 어울린다. 자전거를 타면서 들으면 페달이 한층 가벼워진다. 물론 노래 속의 주인공은 애간장이 타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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