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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그래 Jun 30. 2023

무한 리필까진 아니더라도

이미 한 번 우려진 티백을 다시 머그컵에 넣고 뜨거운 물을 받아 차를 더 우려내본다. 당연히 맛과 향이 처음 우렸을 때에 비해 약하지만 여전히 차를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이처럼 은은하게 즐길 수 있는 것도 좋고, 은은하게나마 한 번 더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하다. 사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까지도 즐긴다. 어찌 보면 궁상맞을 수도 있는 이것이 내가 차를 좋아하는 이유다.


마시는 거라면 다 좋아하는 내가 왜 많고 많은 음료 중에 차를 선택했을까. 이 부분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많은 생각을 거쳐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 그 이유가 썩 유쾌하진 않았다.


음료를 많이 여러 번 마시고 싶은데, 나에겐 넉넉한 돈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넉넉’이 아니라 그냥 없었다. 서른이 되기 전까지 있었던 적이 사실 거의 없었다.


단지 어린 시절뿐만이 아니라 성인이 돼서도 주머니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어릴 때도 가난했는데 성인이 됐다고 해서 갑자기 집안 환경이 나아진다거나 이럴 리는 없었다. 아직 돈을 벌 능력이랄 게 없는 학생이니 개인 주머니 상황 또한 나아질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오히려 성인이 되니 나가는 돈이 더 많아질 뿐이었다.


군 전역 후 복학을 하고 나서는 학교를 다니면서 적게는 두 개, 많게는 4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업을 병행했다. 앞에서 산업스파이 어쩌고 하며 말장난을 해댔지만, 사실 어쩌면 내가 대학시절 카페에서 알바를 한 이유는 일하면서 공짜 커피를 마실 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대학생 신분인데도 그걸 제외하고는 따로 커피샵에서 여유를 즐기기 위해 카페에 가거나 커피를 돈 주고 사 마신 기억이 많이 없기도 하다.


마시는 건 모두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단지 생수만 마시는 건 뭔가 고역인 기분이 든다. 억지로 마시는 느낌 때문에 선호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마시고 싶었던 나는 기숙사 편의점을 서성이다 그 고민을 해결해 줄 아이템을 하나  발견했다. 지금도 여전히 판매 중이긴 하지만 당시에는 조금 더 유명했던 17차였다. 액상차로 유명하지만 액상차 형태가 아닌 티백으로  판매하는 걸 발견했는데, 가격이 정말 저렴했다. 티백 80개가 들어있는 패키지였는데 커피 한잔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당시 금액이 기억나진 않지만 지금 인터넷에 검색만 해봐도 최저가가 4,450원이니 여전히 (스타벅스) 커피 한 잔 값이 채 되질 않는다. 수량이 80개니 티백 개당 단가를 계산하기 위해 4,450원에 80개 수량을 나눠보면 55.625원. 개당 56원을 넘지 않는다. 1원짜리는 없으니 6원을 반올림해도 60원, 100원이 안 넘는다.


유레카를 외치며 나는 2리터 짜리 페트병을 구해 기숙사 정수기에서 2리터 물을 받아두고 17차 티백을 두개씩 넣어 물처럼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답을 찾은 듯 했다. 티백이다! 가난한 나를 타는 목마름에서 구원해 줄 수 있는 존재가!


가격적인 부분에서 엄청난 칭찬을 해댔지만, 막상 그렇게 사두고 다 우려 마시진 못했다. 17차 관계자분들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이유라고 한다면 사실 맛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입맛엔 아니었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솔직히 맛있게 마시기엔 한계가 있었다. 보릿물같이 구수하기만 한, 말 그대로 17가지의 곡물이 섞여 우려난 그 맛은 물 대용으로는 그냥저냥 마실 수 있겠지만 더 향긋하고 맛있게 느끼기엔 부족해서 자주 손이 가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100원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나는 이때 티백을 보고 한 줄기 희망을 찾았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당시만 하더라도 100원으로 사 먹을 수 있는 군것질거리들이 굉장히 많았다. 요즘에야 천원 한 장으로도 살 수 있는 게 많이 없지만 당시엔 천원이면 먹고 싶은 걸 몇 개씩이나 고를 수 있었다. 천하장사 소세지와 맛은 비슷하지만 이름은 쓰여있지 않은 조그만 크기의 소세지도 100원, 아폴로라는 이름의 불량식품도 100원, 지금의 빠삐코와 같은 쵸키쵸키라는 이름의 아이스크림도 300원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달랑 백 원 한두 개씩 주머니에 짤랑짤랑 소리 내며 들고 다니던 시절이기에 이 가격은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위에서 말한 걸 하나씩 다 사도 500원이다. 무려 천원 한 장이면 친구와 간식을 충분히 나눠 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그래서 그 100원 한 닢을 아끼려 굉장히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 어릴 때부터 집이 가난함을 직감적으로 느꼈는지 어린애였던 나는 100원 한 장을 마음 놓고 쓰질 못 했다. 먹고 싶은 그 어린 마음을 꾹꾹 참으며 고사리 같은 손에 쥔 백원짜리를 주먹으로 꼭 쥐었다.


중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용돈같은 건 없었고 집에 돌아오는 버스비가 700원이었는데, 하루 천원씩 버스비를 받으면 내가 쓸 수 있는 돈은 300원 남짓이었다. 여름철이면 각종 슬러시가 300원, 가공된 핫바 비스무리한 게 300원이었는데 그때도 꾹꾹 참다가 한 번씩 그걸 사먹고는 했고, 두 가지를 동시에 먹기 위해서는 하루는 차비만 쓰고 온전히 남겨둬야 했다. 그러다 버스비가 700원에서 800원으로 100원씩이나 인상된 이후부터는 그 소소한 낙 또한 사라지게 되었다. 물론 자식에게 하루 몇백원에서 몇천원 정도 용돈을 달라고 했으면 그 정도는 줬을 수 있겠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도 어려서부터 돈 달라는 소리를 못했다. 안 했다는 표현이 조금 더 어울리겠지만.


그러다 언젠가 초등학교 때는 그걸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아빠 엄마와 차를 타고 외할머니댁에 가는 길에 이런 말을 했다.


친구들은 학교 끝나고 문방구에서 다들 간식 사 먹는데
나는 돈 아끼려고 잘 안 사 먹어~!


그때까진 몰랐다. 초등학생이 백원 아낀 걸 자랑이라고 말하는 게, 부모에게 상처가 됐을 줄은. 혹은 큰 충격이 됐을줄은.


물론 우리 가족이 부자였다면 그런 걸 아꼈다고 했을 때, 당연히 잘했다고 했겠지. 작은 돈도 소중히 여기며, 참고 절약하는 모습에 칭찬해 줬겠지.


하지만 당시 나는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말을 들었을 때 엄마, 아빠의 비참한 마음까지 생각할 정도로 사고회로가 깊진 않았다. 그 순간은 그저 단순하게 칭찬받고 싶은 초등학생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내가 내뱉은 말은 작은 자가용 속 엄마, 아빠를 꼼짝 못 하게 가둬둔 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침묵을 지키게 했다.


그 말에 대한 대답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을까? 나는 그저 칭찬해 주길 바랐는데, 당신들은 마음이 아팠었나 보다. 어릴 때의 그 장면이 아직도 고스란히 기억나는 걸 보면 나도 그걸 말하고 나서 뭔가 잘못됨을 감지했을 거다.


차 안의 분위기마저 어색해 질 정도의 얼마간의 침묵이 흘렀고, 그걸 겨우 깬 것은 엄마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둘은 각자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마음껏 해주지 못함에 마음 아팠을까.  


이런 환경적인 이유 때문이었을까? 마시는 걸 좋아하지만 가난했던 내가 가장 부담 없이 오랫동안 많은 양을 마실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차였다.


고작 몇 그람의 찻잎, 그리고 갖가지 재료가 들어간 티백으로 수리터의 물을 우려낼 수 있다는 이유. 그 영향은 두 세번 우려도 여전히 맛있는 티를 직접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됐다. 왜냐, 내가 그렇게 계속 즐기고 싶어서. 그리고 또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나와 같은 제 2의 양그래는 여전히 많이 있을 테니. 우아한 취향을 가지되 없어 보이지 않도록.


보다 더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잎차가 아닌 티백으로 시작하여 차를 좋아하게 된 것은 가난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티백을 가지고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 또한 가난에서 탈피해 보고 싶은 나름의 발버둥이었는지도 모른다.


무한리필까진 아니지만 오늘도 여전히 책상 위에는 아침부터 3번 이상은 충분히 우려진 티백과 머그컵이 올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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