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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그래 Jul 07. 2023

나의 자기를 찾아서

자기에 대한 철학적 담론

- 자기 (自己)

1. (호칭) (연인을 부를 때) darling, (slng) honey;

    (너, 당신) you  

2. (자신) oneself  


- 자기 (瓷器/磁器)

3. [명사] 고령토 따위를 원료로 빚어서 아주 높은 온도로 구운 그릇.

    [유의어] 사그릇, 사기, 사기그릇


첫 번째 자기[darling]를 떠올려 본다. 아무래도 나를 스쳐간 자기들이 되겠다.

‘자기(혹은 자기야)’라는 말을 써본적이 있던가 문득 생각을 했다.


그 표현만이 사랑하는 사람을 표현하는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애칭을 쓰는 걸 선호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미리 밑밥을 깔고 이야기하자면 스스로는 애정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이 생각에는 크게 변함이 없다. 그러나 종종 표현이 부족하다는 말을 이미 나를 스쳐 지나간 자기들에게 들었던 것을 떠올리면 막상 내가 생각한 만큼의 충분한 표현을 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돌려서 말하는 버릇이었다. 영화 아바타에서 인사말과 사랑한다는 표현을 모두 “I see you(나는 당신을 봅니다)”라고 표현한 것처럼 내가 말하는 ‘밥 잘 챙겨먹었냐, 혹은 잠은 잘 잤냐’는 너에게만 하는 표현이 사랑한다는 말로 들리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수학적 표현으로 일종의 치환이었다.


수학은 지지리도 못하면서 치환이란 표현은 좋아했나 보다. 사실은 어쩌면 그 표현을 좋아했다기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나를 변호하는 핑계였을 수도 있다. 그렇게 몇 차례의 자기들을 떠나보냈다.


이어서 두 번째 자기(oneself)를 떠올려 본다. 자기 자신에 대한 애정이 그리 크지 않다. 일반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간혹 자기애가 넘치는 사람들 중에 본인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고 강요하는 면을 봤다. 사실 자기애라고 표현하기도 애매한 그런 안하무인적인 태도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건강하지 못한 자기애를 펼치는 사람을 종종 보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뇌리에 박혔을 수가 있다. 자기에게 애정이 큰 사람을 딱히 좋아하지 않던 것이 본인에 대한 애정도 조심스러웠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1)와 자기(2)를 다루는 법을 여전히 어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세 번째 자기가 눈에 들어온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차를 시작하고 세 번째 자기를 좋아하게 된 건 맞지만, 정확히 말하면 차를 좋아하고 나서도 자기(瓷器)를 좋아하게 되기까지의 시간은 무척이나 길었다.


차는 반드시 자기로 된 다구에 우려 마셔야 할 것 같은 어려운 이미지 때문에 차의 진입장벽이 높은 것이란 생각도 가지고 있었기에, 고집인 것처럼 다구세트를 들이진 않았다. 거기다 가격은 또 어떤가.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 또한 사람들이 차를 시작하기에 앞서 엄청난 진입장벽이라 생각해 사실은 못 마땅해했다.


그래서 자기로 된 다구보다 유리를 좋아했다. 현대적인 디자인과 함께 차 맛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은 유리의 큰 장점이다. 또한, 처음 찻잎이 우러나오는 과정부터 탕색을 밖에서 볼 수 있다는 점도 자기로 된 다구들과 구별되는 장점이었다. 거기서 비롯된 감각적인 느낌으로 젊은 세대에게 SNS로 어필하기 딱 좋은, 소위 말하는 인스타그래머블한 감성을 지닌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무엇보다 가격이 도자기에 비해 훨씬 저렴해서 입문용이나 연습용으로도 이만한 게 없다. 이러한 이유로 어쩌면 값비싼 도자기 다구를 사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하나 더 중요한 사실은 가격과 상관없이 나의 눈을 사로잡는 다구가 없다시피 했다. 물론 차의 향과 맛을 보다 잘 보존시켜 주는 역할을 하겠지만, 비싼 값에 비해 디자인적으로도 내 이목을 끌기에는 부족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더 고집스럽게 유리로 된 머그잔에 스트레이너를 가지고 잎차를 즐겨왔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자기에게 빠져버린 한 사건이 생겼다. 매해 코엑스에서 열리는 국제차문화대전 행사에 4일 중 3일을, 마치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 하는 참새처럼 발도장을 찍고, 이곳저곳을 누비고 있었다. 그곳에는 보통 차를 만드시는 분들과 차를 담는 도자기를 하시는 분들이 많이 오는데, 그날도 내 관심사는 다구보다는 차였다. 그러다 한 도자기 부스를 지나가다 발길을 멈춰 무언가에 홀린 듯 한참을 바라보았다.


매트한 질감에 따뜻함을 더해주는 약간의 상아색이 더해진 백자.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의 인테리어와도 잘 어울리는 분위기에 뭉툭하지 않고 날렵한 느낌이 있는 개완 뚜껑의 가장자리. 내가 그간 바라던 개완의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그렇게 처음 본 순간 이거다 느꼈다. 사람이 첫눈에 반하는 시간은 8.2초라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보고 나서 인지 단계로 넘어가는 순간, 이건 내꺼다 싶었다. 집으로 데려가지 않으면 며칠간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심지어는 해가 지나더라도 집으로 데려가지 못한 자기가 아른거릴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차 관련 부스가 아닌 도자기 부스에서 한참을 서성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여전히 잘 다룰 줄도 모르는 개완을 이리저리 만지고 직접 차를 따르는 시늉을 해가며, 똑같은 제품을 조금씩 비교해 가며 한참을 감상했다. 사지도 않으면서 심지어 같은 제품을 계속 번갈아 만지며 알짱거리는 내가 신경이 쓰였을 법도 한데, 작가님은 존중의 인사를 건네주었다.


무언가 대단한 결정을 할 때는 무의식이 충분히 고민할 정도의 시간을 주고 결정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 된다고 들었다. 그 무의식이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은 잠을 자고 일어난 뒤 다음 날을 뜻한다.


실제로도 일리 있는 말이라 생각하여, 그렇게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나는 일단 개완을 하나 먼저 질렀다(?). 그날 선택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가져가거나 혹은 내 마음이 다시 바뀌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사실 무의식까지 고민하게 할 만한 거창한 결정이라기엔 오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가 처음으로 들이는 다구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고, 엄청나게 비싼 금액은 아니었지만 당장의 생활비를 걱정하는 나에게 별생각없이 소비할 수 있는 정도의 가벼운 금액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마음에 드는 다구를 직접 사는 일이 한참동안은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바라볼수록 구입해야 한다는 의식에 확신이 차기 시작했다. 오히려 이건 무의식이 개입하게 내버려 두면 안 되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의식을 통해서만 충분히 고민하고 개완부터 데려오기로 결정했다. 이후 무려 이틀간이나 무의식에게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준 뒤 3일째 다시 방문하여, 달항아리처럼 생긴 퇴수기와 숙우, 문향배 두 개와 찻잔, 그리고 받침대까지 거의 세트 구성으로 지르기에 이르렀다.


이틀씩이나 무의식에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기 때문에 구입하고나서도 마음이 벅차오르고 매우 뿌듯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자기들을 집으로 데려와 통장에는 제법 출혈이 있었으나,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가격 따윈 이미 생각하지 않고 집에 놓인 다구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가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의 감정변화를 포착했을 때다.


역시나 행복은 자기만족에서 오는 거라고 했던가. 여전히 테이블에 놓인 이 친구들을 볼 때마다 미소가 만개한다. 차를 시작하고 도자기가 예뻐 보이고 욕심이 나기 시작한다면 그때부터는 본게임이 시작된다. 강제로 맥시멀리스트가 되는 삶이. 여러모로 큰일이다.


차 도구뿐만 아니라 실용성으로는 하등 쓸모없는 달항아리 같은 것들까지 예뻐보이고 사들이고 싶은 욕구가 뿜어져 나온다면 이미 돌이키기엔 너무 많은 강을 건넌거라고 말하고 싶다. 한평생 자기와 자기에게 빠지지 못한 내가 결국 자기에게 빠져버린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돈이 없어 한 번이라도 더 리필해 마시려고 시작한 차라고 떠들어댔지만, 아직 가보지도 못한 그 끝이 창대해 보인다. 거기다가 싱글 티의 방대한 세계에 발을 들이자 차(tea) 값으로 차(car) 값 날리게 생긴 격이었다.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차를 입문시켜주라는 말이 이해가 갔다. 그러나 그 말을 들었을 때 이미 난 늦었다. 돌이킬 수 없는 강 한 가운데에서 열심히 잔고를 탕진하고 있으면서도 즐거워하고 있는 본인을 발견했을 때란. 긍정을 너머 낙천적으로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 했던 기호의 취미를 내가 가질 수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랄까.


어쨌든 간에, 그간 아껴주지 못한 자기(oneself)와 자기야(darling)라고 불러보지는 못했던 자기들을 떠올리며 새로운 자기에게는 이 말을 아끼지 않고 미리 해줘야겠다.



자기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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