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3일 아버지 기일과 7월 14일 어머니 생일을 맞이하며 쓰는 글
1980년, 서른 살의 한 남자는 몇 차례의 선을 봤다. 선 자리에 나온 사람들이 도통 마음에 들지가 않는다. 그러다 스물세 살의 한 여자를 보곤 결혼을 해야겠단 생각을 한다.
그 남자의 이름은 양수현, 여자 이름은 윤남심.
수현이 남심을 보게 된 것은 아는 사람의 소개였다. 수현과 남심을 둘 다 알고 있는 주선자가 어떻게 소개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현은 남심을 꼭 만나보고 싶어 했고, 남심은 아예 관심이 없는 상태였다.
그렇게 수현은 직접 주선자와 함께 남심이 사는 마을로 향했다. 그러고 자신은 마을 어귀에서 기다렸고, 주선자는 남심의 집에 찾아가 수현의 마음을 전했다.
꼭 한번 봐야 집에 돌아가겠다고 했단다. 소개를 안 받아도 되니 한 번만 보겠다고, 그전까진 집에 안 가겠다는 꼬장 혹은 추태를 부렸더랬다. 그는 대체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자신의 외모를 믿은 것인가, 아니면 몇 차례나 마음에 들지 않은 선을 보았음에도 이번엔 만나기도 전에 놓치지 말아야 할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걸까.
역시나 남심에게 이야기를 더 듣고 보니 소개를 받기 전 모르는 상태로 몇 번 지나친 적은 있다고 했다. 수현은 그때부터 남심을 몰래 눈여겨보았거나 마음 한 켠에 두었을 것이고, 그러다 운명적이게도 주선자가 그녀를 알고 있자 그 소개를 명분으로 온 힘을 다해 꼬셨던 것이 아닐까 하는 수현 2세의 추측이다. 수현에게는 정확히 듣지 못했고 앞으로도 듣지 못할 일이라 이 사건은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을 테지만 수현의 DNA를 받고 자란 나의 직감으로 수현은 빅픽처를 가지고 아주 철저하게 빌드업 해나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해본다.
그렇게 상황이 귀찮아진 남심은 정말 한번 나가고 말겠다고 하며, 얼굴을 비춰주고는 곧장 돌아왔다. 그런데 한번 보고 난 뒤 수현은 거의 매일 남심을 찾아왔다. 자주 찾아와 심지어 남심의 아버지께 욕까지 먹었다고 한다.
- 결혼도 안 한 여자 집을 왜 자꾸 찾아오느냐고, 본인(남심의 아버지)은 그런 거 정말 싫어한다고. 앞으로 집에 찾아오지 말라고.
이 정도면 사실상 사형선고가 아닌가, 연애도 하기 전에 결혼을 반대 받은 입장이다. 어찌 보면 장인어른이 될 사람에게 미운털 박히고 욕까지 먹었으면 포기할 법도 한데, 그는 욕을 먹으면서도 계속 또 왔다. 이 말을 듣고는 진심으로 입이 쩍 벌어졌다. 대단하다는 말도 함께.
아빠에게 그런 승부사 기질이 있었다니. 그리고 아빠에게 배울 점은 다른 게 아니라 근성이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 근성으로 내가 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되었듯 결국 수현은 남심을 얻을 수 있었다.
얼굴은 희고, 머리는 작고 이쁘게 생겼다고 했다. 거기에 오토바이를 타고 삐삐를 차고 있었다고 한다.
자동차가 많이 없던 당시에 오토바이는 최고였다고 한다. 이게 남심이 바라 본 수현의 첫인상이었다.
대충 이런 말을 하는 걸 봐서는 남심도 외적으로는 호감이 갔던 모양이다. 그런데 확고한 게 하나 있었다고 했다. 당시 남심은 집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왔다. 그리고 서울에서 일을 하다 다시 고향으로 내려온 상황이었던 터라 시골 남자와 결혼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더란다. 특히나 농사를 짓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본인이 어린 시절 농사를 짓는 집안에 태어나서 농삿일을 거드는 게 어린나이에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수현은 실제로 남심의 온 가족이 밭에서 고추 농사를 할 때도 찾아왔다. 가족들이 다 있는데도 오토바이를 몰고 왔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생각나는 장면이다. 손석구의 섹시함을 당시 수현은 이미 보유하고 있었나보다.
어찌됐건간에 남심은 시골 남자와 결혼하고 싶지 않았다. 당시 시골에 살면 대부분이 농사를 지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현은 시골 남자였지만 은행에 다녔다. 그 점이 나름 플러스 점수이긴 했다.
더군다나 수현은 남심을 꼬실 수 있는 카드가 하나 더 있었다. 비록 장남이지만 부모를 모시지 않고 나와서 살 것이라는 것.
수현의 엄청난 노력과 근성으로 그렇게 둘은 연애를 시작했다. 수현이 없는 지금, 남심에게 기억에 남는 데이트를 물어보니 해수욕장에 갔던 것이라고 한다. 그럴만도 한 게 수현은 물을 싫어하는 건지 무게를 잡는건지 자녀들이 클 때까지 가족들을 데리고 바닷가를 가지 않았으며, 가끔 친척들과 함께 바다를 갈 때조차 물에 들어가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바다에 가도 그저 백사장을 거닐기만 했다. 그리고 발견 된 한 장의 사진. 남심과 함께 상반신까지 전부 젖은채로 물속에 않아 어깨동무를 하며 찍은 사진. 꼬시려고 정말 혼신의 힘을 다 했구나 싶다. 다른 한 편으로 존경의 마음이 솟았다.
또 계곡에 놀러 간 것, 친구들 집 마당에서 함께 버섯 부침개를 해 먹던 것이 기억에 남는 데이트라 한다. 그리고 그들은 가끔 커피숍에 가 녹차를 마시고,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서로를 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겠지.
그렇게 약 2년여 간의 연애를 끝으로 81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서른한 살의 수현과 스물네 살의 남심은 결혼을 한다. 그런데 남심이 결혼하고 나서 아차 싶었다고 한다. 남심은 수현이 은행에 다니니 그래도 돈이 어느정도 있을 줄 알았던 것이다. 큰 착각이었다.
수현은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었다. 그래서 돈을 버는 족족 집에다 갖다 보냈다. 수현은 어린 시절 공부가 하고 싶어 학교에 보내 달라고 울고 불며 애원했지만 끝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수현을 학교에 보내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집에 돈이 없어 중학교만 졸업한 채 사실상 가장노릇을 해가며 돈을 벌어 나머지 동생들을 대학까지 보내며 장남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남심의 몫이었다. 남심은 수현과 달리 좋은 집안에서 자랐다. 70년대에 넓은 마당이 있고 큰 채와 사랑채가 나뉘어 진 집이 있었고, 땅(지금으로치면 건물)도 있었으며, 집에는 소가 있었고 흑백 테레비죤이 있었다. 심지어 일꾼도 한 명 있었다.
그런데 결혼하고는 삶이 달라졌다. 그나마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던 수현은 막내 아들이 4살때 조합장 선거에 나가보겠다며 직장에서 나왔고, 그 덕에 없는 살림에 더 허덕이는 삶을 살게 됐다. 4년 임기인 선거에서 약 13년 동안 네 차례 출마하여 단 한 번 당선이 되었고, 빚은 약 4배 정도 늘었다. 그리고 4명의 자녀 중 한 명도 여의지 못한 채 수현은 막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말기 암을 발견하게 되었고, 여름방학이 시작하기 전 세상을 떠났다. 홀로 남겨진 남심은 더 악착같이 살았다. 그때 막내의 나이는 만 16세. 그 막내가 나다.
그 막내는 대학생이 되기 전 가족들끼리 모여서 외식을 해본 적이 없었고, 집집마다 붙어있는 가족사진을 사진관에서 찍어본 적이 없었다. 또래 친구들의 보통의 그걸 부러워 했다. 부자여야만 할 수 있는 대단한 것들이 아닌, 소소한 것들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말 그대로 먹고 살기 급급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기호라는 게 없었다. 본인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취향을 알 수 없었다. 그 결핍이 컴플렉스였던 막내는 열심히 본인을 탐구해 자신의 기호를 찾아나갔다. 그런데 이제는 몇 십년간 잃어버린 남심의 취향을 찾아줄 때다.
1981년 서른한 살의 젊은 사내인 수현은 무려 일곱살이나 어린 스물네 살의 예쁜 남심과 함께 차를 마시며 서로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속삭였을 것이다. 수현이 떠나간 지금 2023년 서른 한 살의 젊은 사내인 태영은 무려 서른 네살이 많지만 여전히 예쁜 남심과 함께 차를 마시며 앞으로 더 좋아질 미래에 대해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