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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은희 Sep 01. 2023

산티아고일기(2023/01/08): 순례8일차

적응 단계로 (로스아고스 to 로그로뇨 29km)

1. 부지런히 시작된 하루


비 예보도 있는데다 오늘은 갈 길이 제법되어 오전 6시 반부터 다들 분주히 움직인다. 오전 10시, 그리고 오후 2시에 비가 온다고 하니 비 안 올 때 다들 빨리 움직여둘 생각인가 보다.

데이빗 왈 '멕시코 감옥' 같은 열악한 숙소(화장실, 샤워장 밖에 있고 그리 크지 않은 한 방에서 11명이 빽빽하게 잠)를 빨리 벗어나고 싶기도했을 듯 하다.


2. 안개와 빗 속에서 성큼성큼 걸어가기


일행보다 한 발 늦게 출발하긴 했는데, 오늘은 다들 바삐 움직이니 계속 앞 멤버들과 2~30분 거리 두고 혼자 걷는다. 나보다 여유 있게 출발한 C군이 곧 내 곁까지 좇아온다.

예보보다 비가 먼저 내리기 시작해 첫 우비를 개시할 참인데, C군이 도와줘서 선 채로 우비 입고 짐정비까지 마칠 수 있었다. 한 30 분 정도 같이 걷다가 C군은 앞으로 치고 나간다. 무사히 도착해 저녁은 같이 먹자 약속하며 먼저 보냈다.


그리고 오래 혼자 걷는다. 비가 좀 세차게 내려 바람막이 모자에 우비 모자까지 꽁꽁 싸매니 시야가 급 좁아진다. 김서림이 심하니 안경도 안 쓰는게 나을 정도고. 

겨울 까미노에서 이런 날씨를 오늘에야 처음 만난 게 오히려 행운이었던 게지. 사서하는 개고생. 오늘이 그날인 듯 하다. 다행히 속도감있게 걷다보니 비는 오지만 다행히 춥지는 않았다. 일주일 걸었다고 몸도 적응이 좀 되었는지 긴 거리를 걸었지만 발바닥~ 다리가 제법 잘 버텨준다.


3. 포도밭, 포도밭, 포도밭


나바라주에서 멀어져 라리오하(La Rioja)주에 다가갈수록 확실히 포도밭이 많이보인다.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산지. 제철에 온다면 눈과 입이 동시에 즐겁겠구나 싶은 마음. 뭐 그런데 시즌에는 사람에 치일 가능성도 높다니 이 겨울 한가한 여유를 누릴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해야지.


4. 새로운 주에 진입하다


걸어서 하나의 주(피레네 산맥권의 나바라자치주)를 넘었고, 오늘 도착한 곳은 라리오하라는 새로운 주(지역)의 주도 로그로뇨라는 곳이다. 로마시대부터 건설된 성곽도시로, 도로망, 주거지, 다수의 성당 등 볼거리가 많고, 와인과 섬유와 물류 산업도 제법 발달한 도시다. 


생각보다는 일찍(3시 40분대) 숙소까지 도착했으나 날이 궂어 도시 구경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내일도 갈길이 멀어(또다시 29km) 도시구경하며 여유부릴 시간은 없을 듯 하다. 하루 더 쉬어 볼까도 싶지만 걷기 페이스(pace)가 올라와있는 상황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내일까지 힘껏 걸어볼 생각.


5. 한국식 페어웰


축구 좋아하는 C군은 내일 빌바오로 올라가 축구경기 한 타임 보고 프렌치길 아닌 북부해안로를 걸어본다고 한다. 프렌치길보다 험하고 겨울 숙소사정 더 열악할 수 있을텐데 그걸 도전해 보고 싶다고. 오늘은 세탁과 건조를 같이 할 정도로까지 친해졌지만, 이런 게 까미노인 것을.

까르푸에서 장 봐다가 둘이 삼겹살파티를 하며 각자의 "Buen Camino" 빌어주었다. 어쩐지 또 만날 거 같지만 하나의 인연은 보내고, 새로운 인연이 다시 시작되길 기대해 봐야지.


비오기 전 빨리 걸어놓자고 해맑게 다짐했단 순간
출발 30분만에 본격 비 만남. 첫 우비 개시
오늘은 중간에 마을이 두 개 뿐. 첫 마을 산솔(sansol) 따뜻한 조명의 커피숍이 하나 문 열고 있었으나 갈 길이 바빠 그냥 패스
비아나마을의 성당
주일 미사 끄트머리에 잠시 참석
늦은 점심
미사 마치고 나온 말간 얼굴의 아이들.
순례객들 따 먹으라고 남겨둔 것들 (겨울이라 말라비틀어졌지만 당도가 제법 높음)
로그로뇨 알베르게 + 타파스 거리. 오늘까지는 연휴분위기라 문 연 알베르게는 공립 한 곳
로그로뇨는 타파스로 유명한 도시
길 위의 인연. 청년에게 고기 사먹이며 맘 편하게 보낼 준비~
 Albergue de Peregrinos Municipal de Logroño에서


Seok-Kyeong Hong 어느정도 체력이면 매일 20,30km를 걸을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다이어트 처럼 처음 적응기간이 힘들고 걷는 페이스가 생기면 쉬워지는지요? 순례가 끝나면 엄청 건강하고 체중도 빠지고 자신감 충전에...좋을것 같습니다. 이 계절에 혼자 대단하세요.

한도현 하루 30km ...대단합니다... 나바라,Rioja. 제철에 까미노가 붐빈다는 얘기같은데요. 제철에 바스크,Rioja여행 가보세요ㅡ 멋집니다. 날마다 밤 10시경 하루를 정리하시나봐요. 쉽지않은데 훌륭한 습관입니다. 다음 목적지는 Santo Domingo 인가요? 대성당 앞 Parador 호텔은 비싸지만 들어가셔서 실내 장식도 보시고 맛난 커피도 한잔 하세요.

이정범 다리 안아픈가? 처제

윤신원 아침에 일어나면 네 소식을 본다. 잠시나마 같이 걷는 기분~^^ 하루의 목표를 향해 내딛는 발걸음이 읽는 이에게도 힘을 주네. 홧팅!!

  => Jinyoung Kwak 윤신원 나도 나도. 그나저나 엄박 이제 아시아를 지나 유럽지역연구자로 거듭날듯. 응원!

Jeoun Soon Lee 체력 안배 잘 하시네요~ 혼자. 동행. 낯섬을 찾아.... 이것이 인생길이네요!

오윤홍 엄박 글 보면~~우리나라라도 걷고 싶어요~~^^

  => 산티아고 걸었으니 올 봄에 내처 제주 올레 일주도 해볼까 싶어요. 인생 다시 없을 기회. ㅎ

김태완 점심과 함께 하는 맥주맛이 너무 좋을 것 같네요

박명기  부엔 까미노....등산의 목표는 정상이 아니라 언제니 안전귀환!!!

  => 서울서 뵙겠습니다!

Jongmi Kim 사진 속 촉촉한 아침 안개비가 전해지는 것 같아요. 왠지 글을 읽다보면 흙냄새, 풀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하고요~^^ 나중에 이 소중한 기록들을 잘 엮어 꼭 책으로 세상에 끌어내주세용~^^

김현종 엄샘 도보여행기 묘한 중독성. 얼굴만 봐도 아 하루가 다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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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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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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