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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은희 Sep 01. 2023

산티아고일기(2023/01/07): 순례7일차

C와 함께 걷는길, 날씨요정이 된 날(에스텔라to로스아고스 21.2km

1. 늦은 출발


어제 저녁 문닫기 직전 극적으로 구매한 심카드가 문제가 있어 가게 영업시간(10시)에 맞춰 해결보고 나니 벌써 10시 40분. 날은 잔뜩 흐리고 비예보도 있는데 그냥 버스 탈까? 일주일에 치팅데이 두 번은 곤란한데. 게다가 버스를 탄다면 한 구간 아니라 두 구간 가서 다음 도시 로그로뇨(Logroño)까지 가는 게 맞을 듯 하고. 


한동안 망설이다 버스를 타더라도 좀 걷다가 타자는 생각에 순례 표식을 찾아 시내 외곽으로 발걸음을 내딛어 봅니다.


2. 새로운 길동무


그런데 막 도시를 벗어날 즈음 29살 한국청년 C가 짠하고 눈 앞에 나타나내요. 팜플로냐 숙소에서 떠나는 날 아침 잠시 스쳤던 인연입니다. C는 이미 아침 7시 반에 전전 마을에서 출발 15km를 혼자 걸어온 참이랍니다. 각종 운동으로 다져진 젊은 친구라 엄청 속도감 있게 걷는 사람인데, 지난 이틀 혼자 걸은데다 어젯밤 홀로 묵었던 숙소에서 가위도 눌렸다고 제 속도에 맞춰 줍니다.


경남 출신의 몸노동하는 청년인데 바르고 민첩하고 모험심이 남다르네요. 워홀 경험도 풍부하고, 일년에 두 나라 이상 찾아다니며 견문을 넓혀온 것도 인상적입니다. 이 여행 끝나면 기술 자격증 따는데 2년 정도 투자한 뒤, 진짜 자기가 살고 싶은 곳이 어딘지 찾인 다시 해외살이를 경험해 보겠다고 합니다. 서열 세우기 좋아하는 한국사회에 주눅들지 않고 자기길 찾아가는 모습이 고맙고 듬직해보였습니다.


그리 어려운 구간은 아니었지만 혼자 걸었으면 중간에 포기했을 수도 있는데, C군 덕분에 목적지까지 무사히 당도했습니다. 당신이 오늘 나의 귀인이다 말했더니, 자기 원래 날씨운 되게 없는데 제 덕분에 안개 걷혀 풍경 즐겼다고 저한테 날씨 요정이냐고 되묻습니다. 나만큼 사교성 있는 듬직한 친구. ㅎㅎ


3. 오늘의 풍광


오늘 걸은 길은 완만한 능선과 밭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곳이었어요. 땅빛도 흑색이 많아 언뜻 보기엔 제주와도 비슷하게 느껴지는. 서명숙 선생님이 이 길을 걸으며 왜 제주올레를 만들 생각을 했는지 막 이해가 되는 풍경들이었어요.


4. 오늘의 알베르게도 순례객으로 가득


로스아고스는 나바라자치주의 끝자락이고 앞에는 큰 도시가 자리하고 있어서인가 마을 간 이격거리가 넓고, 내일까지 문닫는 숙소도 많은가봅니다. 우리가 도착할 즈음엔 한산했는데, 저녁 7시 다 되어 비맞은 나의 두 벗 데이빗과 알렉스가 뒤늦게 숙소로 들어옵니다. 4km 떨어진 다음 마을까지 갔다가 문 연 알베르게가 없어 그 길을 다시 되짚어 왔다는.


어제의 동료들 모두 "웰컴"을 외치고 같이 나가 저녁과 와인 곁들이며 한참을 떠들고 즐기다 돌아왔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알차게 보내네요.


(아, 데이빗과 C군이 찍은 어제와 오늘의 제 뒷모습 사진을  올려봅니다. 어제와 오늘의 길동무는 아직은 여기까지만 친해진. 내일은 앞모습샷, 같이 찍은 사진 나눌 수 있을 만큼 더 가까워질 예정^^)


올리브나무 옆 포도밭
제주도를 닮은
로스아고스 마을입구. 온갖동물들이 가장 먼저 반겨줌

이영수Have a good day

김익배 새론 길동무네요. 건강하게 완주 하시길 기도합니다

김태완 풍광이 예술이네요

이진숙 새로운 길동무 멋지다!!!

Seok-Kyeong Hong C군같은 많은 한국의 젊은이가 많기를...1989에 유럽에서 만났던 경영대 89학번 학생 지금 어디서 뭐하는지 궁금해지네요. 가방에 여러나라 사전만 넣고 노르웨이행 원웨이티켙으로 한국떠났다가 (이때 나랑 김포-파리비행기 함께탐) 내가 그르노블대학으로 유학간다는것과 이름만 아는데, 1990년 1월 어느 추운날 내 숙소 계단에 앉아있었음. 하이제킹 과 온갖 사연 속에 남하.

Hiroshi Todoroki 계속 길만 걸으면, 혼자일땐 같은 풍경을 오래 보면서 평소 안 하던 깊은 생각을 하게 되고, 동반자가 있으면 평소 할 기회 없는 이야기들도 마저 하게 되고, 지리학적으로는 산 하나 마을 하나에 대해 여러 각도로 생각과 상상을 하게 되고, 그래서 저도 장거리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Jeoun Soon Lee 뒷모습이 경쾌합니다~ 이 나이에도 가능할까요??

  => 그럼요 선생님. 날 좋을 때 여유 가지고 천천히! ^^

홍수연 이 다국적 다정한 조합이 가능한 건 아마 울 어무니 때문일 게야. 암~ 화이팅이다.^^

나효우 오호. 산티아고 ~~ 발꼬락 관리 잘하세여~. 응원합니다. !!!

한도현 Laguardia 가 Logrono보다 훨씬 이쁘고 하루 숙박 권합니다. 에브라 강 양 옆으로 포도밭 멋진 광경이 펼쳐집니다. 포도밭길 트레킹도 있습니다. 유럽에선 Rioja 와인이 유명합니다. 바로 그 Rioja!

이명주  돌아오시면 책으로 출간하시기를 기대 해 봅니다. C군 ! 브라보~

한도현 시작이 반! 벌써 8일째시네요! 대단합니다. 피레네 출발지-스페인 나바라.....Basque땅이죠.... Basque 자역에서 나바라가 가장 큽니다. 귀국하시면 Basque의 역사지리에 대해 글 써보세요..

임순례 젤앞이 c군인가벼요~~ 침착하고 야무지게 생겼네요. 여행길에서 만나는 이들 하나하나가 선생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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