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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은희 Sep 01. 2023

산티아고일기(2023/01/06) : 순례6일차

안개속을 걷고걷고걷고(푸엔테라레이나 to 에스텔라 21.9km)

1. 하루 종일 안개 속을 걸은 날


어제의 날씨가 특별하게 좋았을 뿐 겨울 까미노는 눈비 오는 날 많다. 오늘은 비는 내리지는 않았지만 하루 종일 안개 속을 걸어야했다. 큰 강 끼고 있는 분지 마을들의 특성. 

기분이 우울해질 뻔했지만, 길동무 데이빗이 기다려주고 종종 사진도 찍어주고 해서 외롭지않게 오늘의 구간을 마칠 수 있었다.


2. 친절한 길동무와 함께 걷는다는 것


걷는 속도가 비슷해 오후부터 프렌치 순례객 데이빗 아저씨랑 둘이 보폭을 맞추며 같이 걸었다. 몽펠리에 출신의 데이빗은 그야말로 친절한 해결사. 꽃 사진찍는 거 좋아하고, 음악선곡 훌륭하고, 아는 거 많아 설명도 잘 해주시고(2천년 전 로만로드, 올리브 밭 한가운데 1천년 전 옛 교회 등등), 스페인어도 되시니 어제부터 나도 포함된 와츠앱 까미노 크루 그룹에서도 해결사(문 연 알베르게와 통화 담당)이고. 새 심카드가 말썽이라 길에 있는 동안 데이타접속이 안 되는데, 데이빗 아저씨만 따라다니면 결코 길을 잃을 이유도 그룹에서 낙오될 일도 없다. (내일은 커피 한잔 대접할 것!)


사실 출발할 때는 독일인 알렉스도 동행 그룹이었는데, 점심무렵 순례객들 휴식처로 만들어진 파라다이스라는 올리브 밭에서 알렉스는 괜히 혼자 삘 받아 어제 남긴 위스키 1/4병을 마신다고 먼저 가라고 손짓한다. (알렉스는 고독을 즐기겠다며 위스키 뚜겅을 열었고, 낭만파 데이빗도 "로사 날 좋을 때, 여름에 이곳이 얼마나 좋을지 상상해 봐"를 외쳤다. 응 그래 근데 나는 10분 쉬었으니 갈래~ 데이빗 아저씨 알렉스에게 같이 가자 달래다가 결국 나랑 같이 걷기를 선택. ㅋ) 그치만 1시간 동안 고독을 즐겼다는데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 우리보다 겨우 10분 뒤 숙소 도착함.


길동무라는 게 그렇다. 계속 나란히 걷는다기보다는 대체로 혼자 조용히 걷도록 서로가 서로를 배려한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할 때도 있고, 먼저 마을에 도착한 사람은 앉을 자리, 커피 마실 수 있는 곳 찾아서 뒷사람 보기 좋은 곳에 서 있다가 이름을 부르며 머물다 가라고 청한다. 그러다 체력이 고갈되는 오후 1~2시부터는 속도 맞는 이들끼리 자연스럽게 보폭을 맞추며 오늘의 구간을 무사히 마치도록 서로를 응원한다.


"Rosa, are you okay?" "How is today?" 와츠앱 크루 멤버 5명이 번갈아가며 묻는다. 이리 물어 봐 주는 이들 덕분에 무사히 한 구간을 넘겼다. 


3. 오래된 돌집, 골목, 마을


까미노가 지나는 마을길에는 1600~1800연대 지어진 돌집들이 많다. 마을 외곽에는 버려진 집들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구조와 외양은 유지한 채 말끔하게 새단장한 집들이 더 많다. 거주자 자신들을 위한 장식이지만, 까미노 옆에 있다는 이유로 순례객들을 위한 안내판이자 예술적인 장식을 달아놓은 집들도 꽤 있고. 시즌이 한창일 때는 하루 수백명이 왁자지껄 지나다닐 때도 있다는데, 이 곳 순례길의 마을에서는 주민과 순례객의 마찰은 없었을지. 


실내는 대체로 모던하게 고쳐산다지만, 그런 집과 골목과 마을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어떤 가치와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그런 집, 골목, 마을이 유지되는 비결이 갈수록 궁금해진다. 오늘의 숙소도 1706년에 지어진 강변 돌집. 지금은 솜씨 좋은 주인장에 의해 아주 근사한 알베르게로 변신해 있다. 날 밝으면 집 곳곳을 한 번 더 훑어봐야지 싶을 정도.


순례 계획할 때 자연경관 속의 걷기를 기대했던터라 도시는 대체로 패스하리라 생각했었는데, 팜플로냐에서 하루 더 체류하며 마음이 좀 바뀌었다. 결절지로 도시가 만들어지는데는 다 이유가 있으리라고. 오늘의 목적지 에스텔라도 인근에서는 제법 큰 도시다. 교회도 여럿이고, 석조 다리 등 문화재도 제법되고. 내일은 도시구경 좀 하다 여유있게 천천히 움직여야겠다.


출발지 푸엔테라레이나 (레이나 여왕의 다리)
스페인산 와인 중 Logroño산이 유명하다는데, 이 와인 만드는 포도는 이렇게 키작은 나무가 특징이라고.
올리브밭 파라다이스. 순례객 쉼터. 옆의 돌길은 roman way
알렉스를 달래는 데이빗 아저씨
토끼 순례객. 제가 바로 토끼띠 입니다. ㅎ
올리브 밭 한가운데 1천년 전 세워진 교회
강변 알베르게— Hostería de Curtidores에서
오늘의 길동무 데이빗 아저씨. ^^— Hostería de Curtidores 앞에서


김익배 데이빗아저씨 화이팅!

이진숙 안개속의 풍경 넘 멋지다. 엄박 계속 힘내고!!!

오윤홍 짐 너무 무겁게 들지 말아요~~ 짐 들어주는 사람들 있다고 하더라~~

이명주 감사합니다 ~♡ 로사~

Jeoun Soon Lee 응원~

Insook Chae 남편도 오는 4월 르비란 휴가때 산티아고 순례길 걸으러 가요. 전 한국에 계약된 일이 있어서 같이 못가는데… 사진 보니 넘 가고 싶네요.

이효정 회춘함. 귀국하면 회춘파티를 성대하게 개최합시다

Sunhwa Kim이효정 진짜 동감

Su Jin Lim 전혀 겨울 같은 느낌이 없어요. 한여름 같은 느낌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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