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김 Nov 02. 2020

가르릉

 오늘은 비구름이 서성거려 노곤한 고양이처럼 퍼지는 저녁놀을 볼 수 없습니다. 해는 슬그머니 들어가고 어둠은 하늘을 조용히 안아줍니다. 무겁게 젖은 공기의 틈을 가르고 어딘가로 들어갑니다. 거뭇한 벽에 걸린 조명은 타인의 이야기에 낀 정적을 살라 먹습니다. 나는 의자에 앉아 끔뻑끔뻑 명암을 교차시킵니다.   

   

 차르릉 문이 울리며 볼과 입술에 연붉은 수국이 피어난 누군가 들어옵니다. 나는 누군가의 눈동자를 맞이합니다. 그 속에 햇빛 부스러기가 소담하게 반짝입니다. 나는 누군가의 목소리와 만납니다. 그 속에 숨어든 노을이 가르릉거립니다. 그동안 나는 반쯤 죽었고 반쯤 살았기에 반쯤 살고 반쯤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방금 떨어진 붉은 빛 한 조각. 내 안에 수많은 동심원을 만들며 소용돌이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