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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속 Aug 27. 2024

3. 갑자기 내 마음을 추모하고 싶은 거야

마음이 바닥을 쳤을 때 비로소 알게 되었던 것

 5년간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때가 내 나이 28살이었어. 이 글을 쓰는 지금이 2024년이고 그때가 아마 2015년일 거야. 딱 10년 전이네. 그때 나는 공무원을 2년 6개월째 준비하고 있었지. 사실 하고 싶어서 공무원을 준비한 것도 아니었어. 그냥 공무원이 되면 사람들이 칭찬해줄까 싶어서 아무 생각도 없이 공부한다고 직장을 그만뒀던 게 그렇게 긴 시간이 되었어. 그러니 공부가 손에 잡힐 리가 있나. 그때가 정말 내 인생 최악의 시기였어.

 

 다들 취직해서 재밌게 살고 있는데 나 혼자 방구석에서 대체 뭘 하는 것인지

 아빠도 백수, 동생도 백수인데 장녀인 나까지 엄마 등골을 빼먹으니 나는 이 집의 곰팡이가 아닌지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먼지가 나보다 더 쓸모 있지 않을까

 이대로 영원히 백수가 되면 어떡하지

 여기서 포기할까? 그러면 다들 나를 한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럼 이제 난 뭐 먹고살지? 하고 싶은 게 없는데


 이런 생각들을 2년 반동안 매일 하며 살았어. 그러다가 그 사람에게 이별 선고를 듣게 되었고 그나마 생명줄처럼 붙잡고 있었던 내 가느다란 끈마저 사라진 거야. 너무 지쳤고 더 이상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할 힘도 없었어. 진짜 말 그대로 힘이 쫙 빠지는 느낌이었어. 될 대로 돼라. 그런 마음이었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힘 빼고 사는 것이 인생은 더 잘 풀려. 이건 내가 곧 얘기해 줄게.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울고 불고 폐인처럼 지내다가 문득 바다가 너무 보고 싶더라고. 그 당시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소소한 수입이 있었는데 참 다행이었지. 당장 청량리역으로 갔어. 도착하니 저녁 6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고 정동진 행 열차를 탔지. 내가 정동진을 좋아했거든. 가장 큰 이유는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파도치는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거였어. 그 바다를 보면 내 마음이 뻥 뚫릴 것 같았거든. 6시간 달려서 도착하니 밤 12시더라. 밤이라 잘 안 보였지만 바닷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듯했어. 그렇게 2만 원짜리 아무 숙소에 들어가 대충 잠을 자고 해 뜨는 것을 보려고 아침 일찍 나갔지. 그때가 아마 초여름이었을 거야. 이른 아침에는 좀 쌀쌀하더라고. 몸을 한껏 웅크린 채 해가 뜨기만을 기다렸어. 일출을 보면 모든 게 해결될 것만 같은 나만의 억지지 뭐.

 운이 좋게도 일출을 볼 수 있었어. 그런데 내 마음은 무감각했어. 좋지도 설레지도 않았지. 나는 바다에 있는 작은 바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봤어.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던 것 같아

 그거 알아? 



사람은 평온한 상태일 때 비로소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어떤 사람은 정말 음성을 들을 수도 있지만 나 같은 보통의 사람에게는 흔히 말하는 영감으로 찾아오지.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 같은 거. 갑자기 내 마음을 추모하고 싶은 거야. 이 바다에 내 마음을 묻고 훌훌 털어버리자라고 생각했어. 백사장을 돌아다니면서 내 마음과 가장 비슷한 돌을 골랐지. 


 가장 뾰족하고 못 생긴 돌. 


 그리고 돌한테 얘기했어. 


 "그동안 정말 고생이 많았어. 너 할 만큼 했어. 고마워. 이제 여기서 편안히 쉬어."


 그렇게 느닷없이 배운 적도 없는 마음 치료 행위를 스스로 하게 됐던 거야. 그때 나는 바다 앞에서 펑펑 울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어. 그 뒤로 나는 슬픈 마음이 들 때마다 놀이터, 공원 가리지 않고 흙만 있으면 어디든지 가서 돌을 묻었어. 그러면 조금씩 조금씩 슬픈 마음이 정화됨을 느낄 수 있었어.


 지금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거 없어? 내가 버림받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살 때는 들을 수 없었던 마음의 소리가 몸과 마음에 힘이 풀리게 되니 더 잘 들을 수 있었고 그 목소리를 따라가니 자연스럽게 치유의 길로 인도된 거야. 이때 마음 치유의 맛을 살짝 보게 된 거지. 신기한 일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어. 그렇게 내 마음을 추모하고 또 추모하던 어느 날 밤 우연히 인터넷을 하다가 ASMR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거야. 보자마자 알았어. 내가 해야 할 게 바로 이거라는 것을. 그냥 알게 됐어. 그냥 알게 됐다는 게 내가 특별한 능력이 있거나 신기가 있어서가 아니야. 나는 예지몽을 꾼 적도 없고 촉도 그렇게 좋진 않아. 누구라도 마음 치유를 시작하면 이런 식으로 신의 안내를 받을 수 있어. ASMR을 알게 된 이후로 머릿속에 온통 빨리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어. 나중에 안 사실은 이 강한 충동과 설렘이 바로 삶을 순탄하게 만들어줄 [영감]이었지. 사람들은 영감이 찾아올 그것을 쉽게 무시해. 보통은 현실적으로 따르기 힘든 아이디어들이니까. 


 영감은 순간의 반짝임이라 그때 느끼지 못하면 희미해지거든. 


 나도 선뜻 유튜버를 하기엔 쉽지 않은 현실이었어. 집에서 장녀인 나, 동생, 아빠 모두 좋게 말하면 취준생, 현실적으로는 백수였거든. 엄마 혼자 재봉틀 공장을 다니며 아등바등 버티고 있었던 거야. 엄마는 너무나 힘에 부치는 날엔 내 앞에서 펑펑 울기도 했어. 돈 때문에 억지로 해야 했을 일도 많을 거고 더럽고 치사한 일도 있었겠지. 거기다가 집에 억 단위의 빚도 있었어. 나는 당장이라도 아무 데나 취직해서 돈을 벌어야 했어. 그 당시에 유튜버가 한 달에 얼마나 벌 수 있는지도 몰랐어. 지금처럼 유튜버가 많은 때가 아니었으니까. 2015년은 내 기억으로 초등학생 유튜버가 가장 많았던 것 같아. 원래도 못된 딸이었지만 그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엄마를 모른 척하자고 다짐했어. 누가 말려도 나는 유튜버를 꼭 해야 했으니까. 억만금을 벌 목적도 아니었고 보통 유튜버들이 얼마 버는지도 잘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왜 그렇게 하고 싶었는지 몰라. 근데 그때 때마침 엔지니어인 아빠에게 일이 들어온 거야. 내 앞에서 돈 자랑을 하길래 50만 원만 빌려 달라고 했어. 정말 개념 없는 딸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내가 너무 단호해 보였는지 아빠는 홀린 듯 50만 원을 빌려줬지. 그 점은 정말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해. 


  여기서 또 알 수 있는 사실! 


 영감을 따를 땐 모든 일이 막힘없이 물 흐르듯 순조롭게 진행돼. 


 2년 동안 줄곧 일이 없던 아빠가 어떻게 딱 때마침 그때 돈을 벌 수 있었을까? 내가 주문한 마이크가 일주일 만에 집에 도착했고 그날 바로 나는 방송을 시작했어. 그렇게 방송 10개월 만에 구독자 10만 명이 되었고 5년 만에 구독자 100만 명이 되었어. 나는 사실 한 달에 300만 원만 벌면 좋겠다 하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많게 버는 달은 광고 수익을 포함해 4000만 원도 벌게 됐던 거야. 물론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1000만 원 안팎을 유지하고 있어. 게다가 사실 나는 믿기지 않겠지만 유튜브를 키우려고 크게 노력하지 않았어. 그냥 계속해서 영감에 따라 영상을 만들었어.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는 날은 이러다 나중에 생각이 나겠지 하고 미래의 나에게 맡겨 놓다 보면 예외 없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애쓰지 않았다는 거야. 그리고 그저 맡기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은 필수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이렇게 영감을 따르며 내맡기는 식의 인생도 있어. 선택은 너의 몫이겠지. 


 그런데 과연 나의 고난은 여기서 끝이었을까? 이리하여 100만 명의 구독자를 가진 그녀는 풍요를 즐기며 행복하게 살았대요. 라고 끝내면 좋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어. 나의 상처 입은 어린 신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었거든. 본격적으로 그 아이를 찾아간 적이 없기에 그 아이는 또 한 번 나에게 버림받는 세상을 창조해 줘. 친절하게도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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