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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미 Mar 13. 2022

가장 힘이 센 것은.

생명의 힘.

힘이 세다는 건 무엇일까. 아이들이 자라면서 힘에 대해 관심이 많아진다. 가령 “00는 힘이 얼마나 셀까? 누가 가장 힘이 셀까?”와 같은 질문들이 시작된 것이다.





2년 전 일이다. 겨울이 지나가고 서서히 봄이 오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매주 월요일을 패밀리 데이로 지킨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우리만의 소중한 추억들을 쌓는다. 이 날의 목적지는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이었고 7살이 된 첫째는 여느 때처럼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3살이던 둘째의 손을 잡고 앞서서 걸어가는데 따라오던 첫째가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사진 찍는다. 대체 무엇을 저렇게 열심히 찍을까. “엄마! 드디어 힘이 가장 센 걸 발견했어!” 첫째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곳엔 새싹이 하나 있었다.

“이 작은 싹이 벽을 뚫고 나왔어. 그러니까 얘가 힘이 제일 세다. 그렇지? 이게 생명의 힘인가 봐”

정말 그곳엔 누구보다 힘이 세고 누구보다 푸르른 싹이 나고 있었다. 작고 말랑한 아이가 두껍고 단단한 벽을 가르고 빼꼼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어른에게 ‘힘’이란 가진 능력이며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무기이고 때론 자신을 과시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힘’은 생명 그 자체다. 어른은 힘이 가진 위력에 대해 생각하지만 아이는 힘 그 자체를 생각한다. 어른은 힘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지만 아이는 힘은 무엇일까를 고민한다. 정말 아이와 어른은 다르다.


아이의 눈에 싹은 아주 작지만 가지고 있는 힘은 아주 센 존재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이는 작은 싹 하나가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고 있다. “나 여기 있어요!” “내가 여기서 다시 살아나고 있어요!” 소리치며. 아이는 이 소리를 들은 것일까. 아이의 말대로 그건 분명 생명의 힘이다. 생명은 살아내는 힘이고 그 힘은 이렇게나 세다. ‘살아있음’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없다.


힘에 대해 골몰히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힘의 크기보다 힘의 방향을 본다. 가지고 있는 힘이 어떤 힘인지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다. 그래서 나는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보다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에 집중한다. 힘은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때로는 파괴하는 힘으로, 다시 세우는 힘으로 때로는 흩어지게 하는 힘으로, 협력하는 힘으로 때로는 분열시키는 힘으로, 연대하는 힘으로 자신을 내비친다. 힘을 가진 이가 무엇에 시선을 두고 무엇을 쫓아가는지에 따라 이렇게나 다른 모습을 보인다.


나는 세우는 힘, 연대하는 힘, 사랑의 힘, 희망의 힘, 살게 하는 힘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이런 힘이야말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이런 힘이라 믿는다. 파괴하고 굴복시키는 힘이 아니라 조건 없이 환대하며 품을 수 있는 힘, 서로의 손을 잡고 일어설 수 있는 연대의 힘, 일상을 사랑하며 오늘을 살아내려 애쓰는 힘.


아이가 발견한 생명의 힘이 이런 힘이 아닐까. 스쳐지나가는 일상에서 생명의 힘을 발견하는 아이와 같은 시선, 그리고 살아내려  강한 것을 뚫고 나오는 이런 생명의 힘만이 단단한 세상에 작은 균열을 만들고 변화를 일으킨.


*사진은 당시에 첫째가 찍은 사진이다. 아직도 이 사진을 보면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 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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