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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미 Mar 04. 2022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변화의 조건


세상의 모든 아이가 그렇듯 우리 집에 사는 두 아이는 지구에 관심이 많다. 지구가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 그 안엔 어떤 생명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지구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은 끝이 없다. 아이들이 지구에 관심이 많은 건 아마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물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발 딛고 서있는 땅에 대한 관심과 물음, 거기에 더하여 지구가 지니고 있는 경이로움에 대한 찬사가 아닐까. 바다의 푸른 빛깔과 아득히 먼 하늘에 대한 동경, 지구에서 숨 쉬며 살고 있는 모든 생명에 대한 놀라움. 아이들은 이 모든 마음들을 품고 지구를 좋아한다.


인간 본연이 지니고 있는 지구에 대한 동경과 궁금증은 아이가 자라며 지구에 대한 책임감으로 발전한다. 인간과 지구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고 지구에 사는 인간으로서 지구에 대한 책임은 무엇일까 하는 물음이 싹트기 시작한다.


한동안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의 반은 지구였다. 그날도 그랬다. 아이들과 지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호프 자런의 책을 읽고 쉽게 내던질 수 없었던 내면의 질문을 아이들과 나눠보기로 했다. (당시 나는 호프 자런의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를 읽고 있었다. 책을 읽으며 많은 물음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질문에 ‘나는 그래도 잘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얄팍한 위안과 ‘지구를 위해 애쓰는 삶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주도하는 대화의 흐름은 지구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생각들을 나누고 있는데 아이가 말했다.



“그런데 엄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지구는 변하지 않아. 해야 할 일을 할 때 변해. 그러니까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알아보는 게 아니라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아봐야 하는 게 아닐까?”



아이의 시선과 아이가 이끄는 대화의 흐름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었다.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는 어른 앞에서 아이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찾았다.




변화는 해야 할 일을 할 때 온다. 한 인간의 삶에서도 그렇고 전 인류적인 차원에서 봐도 그렇다. 자명한 사실이고 확실한 명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엔 범위가 ‘나’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생각의 범위는 ‘나’를 넘어설 수 없고 행동의 범위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제한된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나의 기준’이며 결국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결론을 낸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행할 때도 변화는 온다. 그것이 일상이 가진 힘이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확실한 생각의 기준을 붙잡고 꾸준히 걸어갈 때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변화시킬 수 있는 건 나다. 나를 변화시킬 수 있을 뿐이다.


(오늘의 글은 변화가 꼭 필요한가를 논하는 글도 아니며 나를 변화시키는 일의 가치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의 가치를 저울질하는 글도 아님을 꼭 기억해주길 바란다. 오늘의 글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에 관한 고찰이다. 나의 일상을 평온하게 유지하고 때론 익숙한 나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은 그 자체로 귀하며 서로 다른 변화의 가치를 저울질할 필요는 없다.)


너를 변화시키고 우리를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지구를 변화시키는 일은 나를 변화시키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두 걸음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 걸음을 내딛는 것, 한 번이면 되겠지 생각하며 베푸는 한 번의 호의에서 더 나아가 두 번, 세 번 꾸준히 시선을 주는 것, 손 한번 잡아주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서 손을 잡고 이끄는 것까지 나아갈 때 변화는 온다. 그 속도가 더딜지라도 언젠가는 온다.


해야 할 일을 아는 것은 깊은 관찰과 방향 전환이 동반되어야 한다. 관찰만 한다고 변하지 않고 방향만 전환한다고 옳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 애정이 담긴 눈으로 예민하고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관찰을 통해 내린 답이 나에게 맞추어진 답인지, 대상에 맞추어진 답인지를 되돌아볼 수도 있어야 한다. 방향도 중요하다. 결국 노력의 깊이를 판단하는 건 제대로 노력했는 지다. 잘못된 방향을 향한 노력은 결국 삽질이 될 뿐이다.


아이들과 함께 해야 할 일을 고민하고 실천한다. 조금 불편하고 조금 어렵고 조금 애쓰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선을 넘어서니 애씀이 되고 있지만 분명 그 애씀이 변화를 조금씩 앞당길 거라 확신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얻는 마음은 위안이지만 해야 할 일을 할 때 얻는 마음은 뿌듯함이다. 아이들 덕분에 매일 조금 뿌듯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진은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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